오르셀은 이번에도 정시보다 두 분 먼저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얼굴이 지쳐 보였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인쇄소에서 옷깃에 종이 가루가 묻어 있었다. 완벽주의자에게는 치명적인 상태다.
"조정관님, 왜 그러십니까?"
"수십 건의 긴급 공문을 검토했습니다."
"저 때문에요?"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나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상담 품질 향상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르셀은 정말로 한 번 나를 노려봤다.
그는 레벤의 명령서와 면지의 설비 안전 기록, 니아가 확보한 세 교정 시도 기록을 각각 받아 들었다. 한 묶음으로 제출하지 않도록 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원본 손상 여부, 정정의 법적 효력, 재배포 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은 서로 다른 문제였으니까.
"현재 인쇄소의 봉인된 기계가 실제로 움직였습니까?"
"예. 안전 절차에 따라 정지했고 현장 접근을 제한했습니다." 면지가 말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활자 정령 하나가 구조됐습니다."
"이름은?"
"류입니다." 픽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저는 보이고요. 둘이 합쳐 보류입니다."
오르셀이 정적 속에서 장부를 펼쳤다.
"……두 분을 별개의 현장 증인으로 적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저 정도면 세상에서 가장 건전한 농담이다.
레벤이 먼저 반론했다.
"현장 안전 문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 표준 정정 명령을 중단할 사유는 아닙니다. 현재 유효한 표준 문구를 정리하는 업무일 뿐입니다."
"그 표준 정정이 누군가의 계약 의사를 대체합니까?" 오르셀이 물었다.
"문서 수령 확인에 따라 이의가 없음을 기재합니다."
"수령 확인을 동의로 바꾸는 부분을 별도로 표시하십시오."
레벤이 가방을 뒤적였다.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열세 마을에서 편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승낙했다고 기록되는 순간을, 오늘만큼은 반드시 막고 싶었다.
오르셀은 인쇄소에 설치된 판을 보았다. 초판과 정정판의 이름 가림 부분은 공개하지 않고, 변경된 '대신 적을 수 없다'와 '대신 처리할 수 있다' 문구만 나란히 놓았다. 그 옆에 열일곱 해 전 철회 요청의 존재 기록을 붙였다. 발신자의 이름은 없었다.
"결론을 말씀드리지요." 그가 말했다. "공식 인장이 있다고 해서 그 문구가 당사자의 실제 의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정판이 적법하게 승인됐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레벤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지만 현행 행정을 중지하면—"
"공급 설비는 중지하지 않습니다. 이미 승인된 필수 운용은 유지합니다. 정정판을 종전부터 배포했다는 사실도 지우지 않습니다. 다만 그 문서를 받은 사람의 침묵을 신규 동의로 취급하는 조치는 검증이 끝날 때까지 보류를 권고합니다."
"권고입니까? 명령입니까?"
"제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권고와 증거보전 지시입니다. 강제적인 효력 중지는 관할 심리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오르셀의 말은 답답할 만큼 정확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안심됐다. 자기 권한을 넘어서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 레벤이 금빛 인장을 꺼냈다.
"그렇다면 제가 제 권한으로 표준 재배포를 집행하겠습니다."
그는 문서 끝에 인장을 눌렀다.
탁.
도장에는 글자가 찍히지 않았다. 대신 붉은 빛이 잠깐 번쩍였다.
[출력 불가: 현장 원본 대조 중]
[대조 대상에 미완료 이의 기록 존재]
레벤이 인장을 다시 눌렀다. 또 같은 표시였다.
"왜 작동하지 않지?"
면지는 기계 뒤의 작은 봉인판을 가리켰다.
"이 인쇄소의 원판을 근거로 하는 명령은 원판 대조 중에 강제 덮어쓰기를 할 수 없습니다. 오래된 안전 규칙입니다."
"그런 권한이 아직 살아 있었습니까?"
"네. 작업자가 살아 있는 한은요."
픽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나왔다.
"저희도 작업자입니다."
처음에는 레벤이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도장을 내려다본 뒤 장부를 다시 읽었다. 조정관과 달리 실무 규정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어떤 조항이 적용됐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의 기록을 대조하려면 수신 기록이 필요하겠군요."
"네."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대조 절차가 끝나도 당사자의 의사를 대신 결정하면 안 됩니다."
오르셀은 레벤의 원래 배포 명령을 취소하지 않았다. 대신 면지의 봉인, 미완료 이의 기록, 현장 안전 상태를 시각별로 보전했다. 이 자료를 근거로 긴급 효력 심리를 요청하기로 했다.
시간은 밤 열 시 삼십 분이었다.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았다.
그때 니아에게서 짧은 연락이 왔다.
'시온, 지역 사본을 비교해 봤어요. 큰 문제가 있어요.'
"뭔데?"
'열세 마을에 현재 보관된 해석문이 모두 같은 판본이 아니에요. 자정에 하나로 맞추면 일부 마을에서는 새 권한이 생기고, 일부 마을에서는 있던 항의 기록이 사라질 수 있어요.'
나는 시계를 봤다.
나는 인쇄소 창밖을 보았다. 골목의 야간 배달원이 작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사방에 펼쳐진 세계수의 가지 끝에서는 먼 마을들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저 불빛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만든 계약이 저 불빛을 겁주고 있다니 우스웠다.
인쇄소 창가에는 아무 이름도 적히지 않은 오래된 배달 상자가 있었다. 면지가 말했다.
"이 상자는 반송된 문서만 모아 둔 거예요. 열세 마을에서 돌아온 종이도 이 안에 있을 겁니다."
"그럼 이번에는 실제로 받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죠. 새 문서를 찍기 전에 옛 문서를 어떻게 받았는지부터요."
"그럼 문서부터 열세 장을 모아야겠네."
루루가 물었다.
"지금부터요?"
"응. 늦었지만, 다들 자기 손에 쥔 종이를 확인할 권리는 있으니까."
제14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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