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험한 문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 '영구', '이의 없음'. 그리고 '고객 사정으로 반품 불가'.
전생에서 저 단어가 붙은 상품은 대개 사진과 달랐다.
이번에 우리가 받은 상품은 계약 해석문이었다. 이것도 사진이랑 달랐다. 아니, 사백 년 전 원문이랑 달랐다.
면지는 봉인된 기계를 지켜볼 직원을 남겨 두고 보존 서고로 안내했다. 우리는 새 교정 지시를 취소하지 않고 실행만 보류했다. 취소해 버리면 지시를 누가, 어떤 경로로 보냈는지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시온 님, 자정까지 여덟 시간 남았어요." 루루가 작은 모래시계를 들었다.
"알아. 근데 무턱대고 장치를 부수면 그만큼 빨리 해결되는 건 아니야."
"그럼 뭐부터 해요?"
"예약된 배포 범위 확인. 원본과 사본 분리. 해당 지역에 사전 공지. 순서대로."
아르웬은 이미 열세 지역의 공급 담당자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새 해석문을 아직 법적 계약 변경으로 인정하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런 결정을 내릴 권한은 우리에게 없었다. 대신 자정에 문서가 도착하더라도 기존 난방·식수·저장 설비의 설정을 함부로 바꾸지 말고, 문서의 버전과 출처부터 확인하도록 요청했다.
북방 미레가 대답했다.
'확인했습니다. 저희는 기존 열원 상태를 유지할게요. 그런데 오늘 밤 정말 새 안내문이 올까요?'
"배포 지시가 대기 중입니다. 실제 발송 여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확인된 대로 알려 드릴게요."
'시온 님 목소리가 또 야근할 때 같네요.'
"제 목소리는 원래 이렇습니다."
'거짓말도 참 성실하시네요.'
연락이 끊기자 루루가 웃었다. 내 평판이 고향 밖까지 퍼진 모양이다.
보존 서고에는 인쇄 발주서가 쌓여 있었다. 면지는 발주자의 신원을 가린 상태로 발주 종류와 전달 경로만 보여 주었다. 열일곱 해 전 들어온 정정 지시는 한 장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제2 서명인의 이름을 가리는 익명화 요청. 두 번째는 제14 계정의 기능 설명 변경. 세 번째는 이 설명을 열세 지역 표준 문서에 일괄 반영하라는 배포 주문이었다.
"요청 세 개가 따로 들어왔군요." 나는 말했다.
"네. 하지만 회계 시스템에는 하나의 묶음으로 등록됐어요." 면지가 답했다.
"익명화는 보호를 위한 것일 수 있어요. 그게 곧바로 대리 승인 권한을 주라는 뜻은 아니죠."
"저희도 그 부분 때문에 첫 번째 교정을 거부했습니다."
세 주문서에는 서로 다른 시각이 있었다. 처음 보호 요청이 접수된 뒤 열아홉 분 후 기능 변경이 들어왔고, 배포 주문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였다. 서류에는 시간이 짧은 만큼 많은 의심이 들어 있었다.
니아가 특이한 부분을 찾아냈다.
'세 발주서의 표지에 같은 심부름 번호가 찍혀 있어요. 그런데 서명은 각각 다르네요. 첫 번째는 보호 요청 담당란, 두 번째는 갱신실 직무란, 세 번째는 전력청 표준배포란.'
"한 장의 보호 요청이 여러 부서에서 권한 변경 주문으로 불어났다는 거네."
'정확히 말하면 그 가능성이 있어요. 신청자의 원래 의사가 무엇이었는지는 별도 확인해야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가 이어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속셈이었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다만 누가 어느 구간에서 다른 뜻을 끼워 넣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그때 로딘이 보존 서고 구석에서 묵직한 책을 발견했다.
"인간! 아주 흥미로운 물건이 있다!"
"그거 손대지 마세요."
"제목이 '반품 규정'이다!"
"고객님이 제일 싫어할 책이네요."
로딘은 책을 펼쳤다. 종이가 펄럭이더니 거대한 도장이 날아와 그의 이마에 찍혔다.
[사전 열람 동의 미확인]
"크아악! 누가 내 이마에 글자를 찍었느냐!"
"책이 고객님을 반품한 것 같습니다."
면지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웃음을 참는 듯했다. 로딘은 화가 나 도장을 떼려 했지만 자꾸 손바닥에 다른 글자가 묻었다.
그 틈에 루루가 서고 뒤편의 반품함을 발견했다. 겉에는 '인쇄 주문 취소 통보'라고 적혀 있었다. 자물쇠는 없었다. 대신 신청권자가 아닌 사람은 내용물을 만질 수 없도록 보호 막이 둘러져 있었다.
루루가 손을 대려다 멈췄다.
"시온 님, 이건 열어도 돼요?"
"우리가 신청권자인지부터 확인해야지."
면지는 허가서를 대조한 뒤, 통보문의 존재와 발송 일자만 열람하도록 허가했다. 반품함에서 작은 표식이 떴다.
[17년 전 정정 지시 철회 요청: 1건]
[철회 요청 수신 경로: 정령 직접 접수]
[처리 상태: 당사자 확인 불가]
루루는 손을 꼭 쥐었다.
"라에일까요?"
"그럴 수는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모르지."
나는 말을 골라 했다. 열일곱 해 전 라에가 이 문제를 법정에 올리려 했다는 사실은 확인돼 있었다. 그러나 이 철회 요청의 발신자가 라에인지, 혹은 다른 누군지는 아직 검증하지 않았다.
면지가 조용히 말했다.
"취소 요청은 반품 대상이 아니라 보류 대상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인쇄 완료된 문서는 반품할 수 없다는 이유였죠."
"틀린 문장인데도요?"
"네. 당시 규정은 그랬습니다."
나는 반품함에 붙은 안내문을 다시 읽었다.
[인쇄 완료 상품은 철회 불가]
"이상하네요. 잘못된 상품이라면 인쇄 완료가 오히려 수정할 이유가 되는데."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 님, 저희가 고객센터잖아요. 이건 민원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웃었다.
"당연하지. 그리고 반품 처리보다 중요한 게 있어. 잘못된 물건을 받고 있는 열세 마을에 진짜로 무엇이 배달되는지 알려 줘야 해."
그때 면지의 수신석에 새 통보가 왔다.
[자정 배포 지시 검증 완료]
[출력본에 '당사자 이의 미제출' 문구 자동 삽입 예정]
"이의 미제출이라." 나는 손가락으로 반품함을 두드렸다. "여기 철회 요청이 있는데?"
적어도 누군가 반대했다는 사실만큼은 종이에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글씨를 다른 종이가 읽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제14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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