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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141화
PAYLUA ORIGINAL · 제141화

141화. 백지 인쇄소는 주소도 인쇄하지 않습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823자

오프라인 책장
내가 이세계에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다. 비밀을 간직한 장소일수록 간판은 크다. 그런데 백지 인쇄소는 예외였다. 간판이 없었다. 주소도 없었다. 정확히는 주소를 알려 주는 안내지가 전부 백지였다. "저기, 이거 지도 맞습니까?" 나는 안내지를 뒤집어 보았다. 뒷면도 새하얬다. 로딘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백 년 전에도 이랬다! 아주 훌륭한 전통이지!" "찾아오지 말라는 전통이군요." "어리석은 인간! 진정한 길은 마음으로 찾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가신 곳이 지난번에 버섯 농장이었잖아요." 로딘이 헛기침했다. 그때 루루가 종이를 코앞까지 가져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시온 님, 종이에서 잉크 냄새는 나요. 글씨가 없는 게 아니라 잠든 것 같아요." 우리는 세계수 동쪽 기슭의 제지 마을에 와 있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냇가 옆으로 낮고 긴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공기에는 젖은 펄프와 마른 수액이 뒤섞인 냄새가 났다. 길바닥에는 종이 가루가 눈처럼 내려앉았다. 중앙의 붉은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지만 바람에는 재 냄새가 없었다. 진짜 불이 아니라 수증기였다. 아르웬은 출입 허가서를 다시 확인했다. "대조 범위는 제14 계정 해석문 초판과 정정판, 그리고 해당 인쇄 기록의 공개 가능한 메타정보입니다. 원본 계약 전체를 열람하는 허가는 아닙니다." "압니다. 이번에는 허가서도 길을 못 찾는 것 같아서 문제죠." 니아의 수신석에서 목소리가 흘렀다. '지도에 인쇄소가 없는 이유가 있어요. 건물의 정확한 위치를 고정하면 계약 당사자를 추적할 수도 있어서요. 인쇄소가 허가받은 방문자에게만 길을 보여 준대요.' 나는 종이를 들어 올렸다. "저희 방문 허가받았습니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문서가 좀 느린가?" 루루가 한숨을 쉬었다. "시온 님, 서류한테 말하지 마세요." "이 동네는 나무가 말을 하고 용이 온천 보상을 청구해. 종이 정도야 대화할 수 있지." 그때 종이 구석에 한 줄이 떠올랐다. [방문 목적을 직접 말씀하십시오. 신청서 문구를 그대로 읽지 마십시오.] 아르웬의 눈썹이 올라갔다. 나는 허가서를 접고 생각했다. 우리는 왜 여기 왔지? 증거를 찾으러. 누구에게 불리한 증거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남의 침묵을 동의로 바꿔 버린 문장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인해야 한다. "누가 비어 있는 자리에 멋대로 '예'를 적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진짜 당사자의 말처럼 쓴 일을 막고 싶습니다." 종이가 따뜻해졌다. 잉크가 물방울처럼 스며 나오더니 작은 화살표가 나타났다. [접수되었습니다. 길은 세 번째 물레방아 뒤편입니다.] 로딘이 가슴을 폈다. "보아라! 내 마음이 옳았지!" "고객님은 첫 번째 물레방아에서 버섯을 사 드셨잖아요." "맛있었다!" 세 번째 물레방아 뒤에는 창문 없는 작은 건물이 있었다. 정문은 종이 한 장으로 막혀 있었다. 도어락도 아니고 종이락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찢어지면 수리비 많이 나오겠죠?" "방문자가 종이를 찢으면 출입 거부입니다."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긴 종이띠를 어깨에 감은 작은 정령이 창문 위쪽에 매달려 있었다. 얼굴은 먹물을 떨어뜨린 듯 동그랗고 표정은 날카로웠다. "저는 보관 담당 면지입니다. 신청자 최시온, 동행자 루루와 아르웬, 외부 기술 자문 니아. 그리고……" 면지가 로딘을 올려다봤다. "대형 발열 물품 하나." "물품이 아니다! 나는 위대한 로딘이다!" "발열 물품이 발언했습니다. 화재 주의 표기 추가." 나는 로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객님, 여기선 저보다 등급이 낮으시네요." 정문이 스르르 접히며 통로가 열렸다. 안쪽에는 글씨 없는 종이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어느 종이도 똑같은 흰색이 아니었다. 누런 빛, 푸른 빛, 옅은 회색. 겉으로는 아무 말도 없는 것들이 저마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것 같았다. 면지는 제일 안쪽에 낡은 의자 하나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제14 계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빈 의자입니까?" "아닙니다. 쉬는 의자입니다. 직원들이 오래 서서 일하니까요." 의자 등받이에는 딱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일을 끝내지 못했어도 쉬어도 됩니다.] 나는 감탄했다. 공석인 관리자의 의자는 계약 전체를 바꾸려고 하더니, 여기는 의자 하나가 내 삶을 바꾸려 든다. "이 의자, 우리 고객센터에도 한 개 들여놔야겠습니다." "왜요?" "직원들이 쉬는 법부터 배우게요." 루루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시온 님부터 앉으세요." "나중에." "또 나중이래." 정령의 한숨은 점점 사람을 닮아 갔다. 면지가 말했다. "이곳의 첫 번째 규칙. 백지는 동의서가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회사 규정이네요." "두 번째 규칙. 원판은 복사할 수 있지만 소리는 함부로 재생할 수 없습니다. 남의 발언이 원판에 남아 있어도 보관 동의와 재생 동의는 별개입니다." "그것도 좋고요." "세 번째 규칙. 직원을 괴롭히면 즉시 퇴장입니다." 로딘이 시무룩한 얼굴로 날개를 접었다. 면지는 접수 장부를 펼쳤다. 초판과 정정판을 비교하는 신청 내용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맨 아래, 아직 아무도 적지 않은 칸에서 낡은 도장 자국 하나가 솟았다. [17년 전 정정 요청: 접수] [처리 상태: 인쇄 완료] [발송 상태: 수취 거부] 나는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이건 이상한데요. 인쇄가 됐는데 수취를 거부했다고요? 누가요?" 면지는 장부를 덮었다. "그걸 확인하러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아무래도 오늘 퇴근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제는 진짜 퇴근했으니, 나는 꽤 잘하고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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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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