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방 안에 가두면 정상적인 반응은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두 번 두드리고, 소리치고, 구조를 기다린다.
우리 일행에는 그런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비켜라. 벽을 녹이겠다.”
로딘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에서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잠깐! 이 건물에 병원 전력이 연결돼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럼 문만 태우면 되겠군.”
“문에도 배선이 있을 수 있죠!”
“그럼 손잡이만?”
내가 대답하기 전에 바스가 외쳤다.
“안 돼! 쇠 손잡이가 자동 잠금 접지선이오!”
드래곤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하란 말이냐!”
“힘센 분이야말로 참는 게 가장 힘든 법이죠.”
“……그럴듯한 말로 날 일 시키지 마라.”
문은 이미 봉쇄됐다. 천장에서는 파란 구름이 내려오고 있었다. 루루가 코를 킁킁거렸다.
“망각 안개예요. 오래 마시면 마지막 한 시간을 잊어요.”
“헐. 악덕 회사의 꿈의 제품인데.”
어쩌다 야근을 강제로 시킨 뒤 기억까지 지우면, 다음 날 또 신입사원처럼 출근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나는 바스의 옷자락을 잡았다.
“여기 진짜 환기구는 없어요?”
“있지만 정비용으로 사람이 못 지나다니오.”
“사람 기준으로요?”
바스가 루루를 보았다. 루루도 나를 보았다.
“싫어요.”
“아직 부탁 안 했는데.”
“눈빛이 이미 굴뚝 청소 시키는 눈빛이었어요.”
“정령의 공식 업무에 '틈새로 지나가기'가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제가 우편물이냐고요!”
“이번만 특급배송.”
루루는 욕을 한마디 중얼거리고 작은 날개를 접었다. 평소 손바닥보다 작던 몸이 빛 조각처럼 가늘어지더니 환기구 사이로 쏙 사라졌다.
잠시 후 먼 쪽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환기 장치가 역방향으로 돌면서 망각 안개가 천장 위로 빨려 올라갔다.
“돌아왔어요!”
구멍에서 루루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볼에 검은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정령인데!”
“귀한 정령이니까 부탁한 거지.”
“……그 말은 좀 마음에 드네요.”
나는 정령의 자존심이 의외로 관리하기 쉽다는 걸 깨달았다. 단, 간식을 빼먹으면 모든 신뢰가 초기화된다.
바스는 비상 유지 보수 잠금 장치를 열었다. 문이 풀리자 우리 앞에 검은 제복의 보안관리자가 나타났다. 그가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아르웬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직무 정지 상태의 공무원 아르웬입니다. 안전 위협 행위로 현장 보전을 실시합니다.”
“직무 정지라며!”
“그래서 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제압하겠습니다.”
나무뿌리가 관리자의 팔을 묶었다. 법적 논리와 물리적 논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엘프라니. 무서워졌다.
보안관리자는 저항하다가 문득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세계수 한 그루 때문에?”
“한 그루라면서 전력을 뽑아 먹기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요.”
내 질문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복도로 나서자 바스가 정비실 출입 기록을 한 장 떼어 내려고 했다. 나는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원본은 두세요.”
“왜? 저 안에 불법 감금 기록이 들어 있을 텐데.”
“뜯어 가면 전력청이 우리가 훼손했다고 주장합니다. 복제하고 봉인해 두죠.”
루루가 작은 수정구슬을 열었다. 출입 기록의 빛이 그대로 복사돼 안에 들어갔다. 나는 사본 세 개를 만들도록 했다. 하나는 에델에게, 하나는 아르웬에게, 하나는 포그의 사백 년 서류함에 보관하기로 했다.
“포그한테 맡겨도 될까요?”
루루가 물었다.
“그 정령은 사백 년 동안 밀린 급여 명세서도 안 버렸어. 보관 실력만큼은 검증됐지.”
통신망 한편에서 에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4층 폐쇄 사유: 일반 설비 안전 점검]
[현장 인원 기록: 미기재]
기록에서 사람을 빼 버리면 그 사람이 사라진 걸로 칠 수 있다. 나는 화가 나서 화면을 세게 누를 뻔했다. 하지만 루루가 내 손을 붙잡았다.
“흔적 남아요, 시온 님.”
“알아. 그래서 안 누른 거야.”
“방금 누르려고 했잖아요.”
“내 손이 잠깐 실수한 거지.”
루루는 피식 웃었다. 그 덕분에 나도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우리는 작은 유리관 속 안내 정령도 함께 데려왔다. 몸이 약해 조그만 병 안에서만 안정되는 아이였다. 이름은 '모아'. 사백 년 전에 제14 장치의 경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럼 우리한테 '살리지 말라'고 보낸 정령은 누구지?”
모아가 몸을 움츠렸다.
“그 애 이름은 니아예요. 원래 장치가 무서운 걸 알려 주는 애였는데, 어느 날부터 말을 바꾸라고 명령받았어요.”
“누구한테?”
“몰라요. 항상 검은 유리 너머에서 말했거든요.”
유리 너머의 목소리라. 흔한 수법이다. 책임자의 얼굴을 숨기는 건 이세계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천계를 벗어나며 나는 에델에게 통신을 보냈다. 그는 짧게 답했다.
“동력실 확인 결과, 해당 정비사는 퇴직 서명 시각에 거기에 없었습니다. 퇴직 처리는 무효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공식적인 정보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요. 공식적으로 고맙습니다.”
에델은 통신을 끊기 전에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열두 시간짜리 정지는 조만간 무효가 됩니다. 벨리안 본부장이 복구 긴급 명령을 신청했습니다.”
“언제까지요?”
“일곱 시간.”
그의 통신이 끊겼다. 남은 시간은 더 짧아졌다.
베르나로 돌아왔을 때, 강변에는 임시 발전 시설이 한창 세워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구리관을 나르고 물통에 온수를 담았다. 대장장이 던트는 팔뚝에 검댕을 묻힌 채 쇳조각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온 씨! 오셨소? 열관을 세 개 더 깔았소!”
“열관이라고요?”
“드래곤의 온천열을 돌려서 치료소로 보낼 거요. 그런데 딱 하나가 부족하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뭔데요?”
“온천열을 조금만 더 올려야 하오.”
모두가 동시에 로딘을 바라봤다.
드래곤은 두 팔을 모았다.
“너희 인간은 나를 움직이는 화덕으로 아는 것이냐?”
“온천 광고도 같이 해드릴게요.”
“이미 약속했지 않느냐!”
“고객 후기까지요.”
“후기가 무엇이냐?”
“실제 이용자가 만족했다고 남기는 평가입니다.”
로딘이 잠깐 생각했다.
“별 다섯 개를 주면 무엇을 얻지?”
“다음 고객이 더 많이 오죠.”
“내 온천을 인간들이 잔뜩 찾아온다고?”
나는 상황이 역효과라는 걸 깨닫고 급히 말을 바꿨다.
“예약제로 받으면 됩니다. 하루 최대 다섯 명.”
“하루 두 명.”
“세 명.”
“한 명.”
“좋습니다, 세 명으로 합의하죠.”
“어째서!”
계약서는 이미 루루가 쓰고 있었다. 무서운 협상 능력이었다.
로딘이 날갯짓으로 온천 밑의 화맥을 깨웠다. 끓는 열기가 산 아래로 전해졌고, 던트가 급히 밸브를 열었다. 붉게 달아오른 열관이 마을을 지나 치료소로 향했다.
그런데 정작 내 눈은 수정등보다 치료소 안쪽 창문에 붙어 있었다. 어린 환자 미로가 그 안에 누워 있었다. 앞서 전력 제한 때문에 치료 수정의 빛이 약해졌던 아이였다.
미로의 어머니는 손바닥만 한 종이학 하나를 문틈에 끼워 두었다. 종이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있었다.
'오늘도 불이 켜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괜히 목이 메었다. 이곳에 온 뒤 온갖 숫자와 계약 조항을 들여다봤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고작 작은 불빛이었다.
“왜 멍하니 서 있어요?”
아르웬이 물었다.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좀 생각했어요.”
“세계수가 살려 달라고 했기 때문 아닌가요?”
“맞죠. 그런데 이제는 저 아이도 있으니까.”
아르웬이 창문 안쪽을 바라봤다. 그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앞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전력관에서 굉음이 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누군가는 기도를 했고,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사이를 지나며 비상 대피 출구를 다시 확인했다. 혹시 불이 꺼지더라도 적어도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는 알아야 했다.
잠시 뒤 치료소의 수정등이 안정적으로 켜졌다.
문 밖에 서 있던 어머니들이 손뼉을 쳤다. 환자들을 돌보던 치료사가 창문을 열고 외쳤다.
“동력 변동이 멈췄어요!”
그제야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루루는 온천 광고판을 그렸다.
[불평 많은 드래곤이 직접 데웁니다.]
로딘이 글씨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불평이 많다고?”
“사실이잖아요.”
“과장 광고로 신고하겠다!”
“직접 민원 넣으시면 됩니다.”
나는 한쪽에서 웃다가 모아의 병이 떨리는 걸 발견했다. 푸른 빛이 붉게 바뀌었다.
“무슨 일이야?”
“니아가 무서워하고 있어요.”
모아는 세계수 뿌리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제14 장치가…… 사람 목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와 동시에 내 통신판에 문장이 떠올랐다.
[긴급 안내]
[제14 장치 준비율: 19%]
[모의 구동 시작]
[피해 예상 지역: 베르나를 포함한 7개 마을]
나는 방금 완성한 열관을 바라봤다.
살려 둔 사람들을 다시 위험에 빠뜨릴 생각은 없었다.
“루루.”
“네.”
“광고판 뒤집어.”
“왜요?”
“이제 온천 홍보가 아니라 재난 대책 회의 공지 붙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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