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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119화
PAYLUA ORIGINAL · 제119화

119화. 계약서에서 쉼표를 빼면 나무가 쓰러집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272자

오프라인 책장
침묵의 법정에 제출한 보고서는 생각보다 얇았다. 원본 계약 전문을 공개할 수 없어서였다. 우리는 세계수가 허락한 부속 제3항의 외부 해석문, 현장 대출 장부의 오기재, 제4 보정실에서 사용한 자동 음성 토큰의 작동 방식만 제출했다. 하모의 어머니 목소리는 제출하지 않았다. 루루의 목소리도 녹음하지 않았다. 둘 다 자기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남의 귀에 영원히 남을 필요는 없으니까. 모은은 보고서를 읽고 잠깐 눈을 감았다. “열일곱 해 전 라에가 요구한 절차와 닮았습니다.” “어떤 절차요?” “누군가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그 사람의 권리를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요.” 나는 법정 서류 표지에 적힌 사건 번호를 살폈다. [024 — 정지 신호 말소 재심사] [025 — 미수령 음성의 수령 처리 조사] 두 사건이 한 페이지에 올라 있었다. 400년 전의 약속과 며칠 전 아이의 자장가가 같은 규칙에서 걸려 넘어졌다는 게 기묘했다. 헤이든은 바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중앙 정산관 리넬과 도서관 사서 비브를 불러 실제로 어떤 처리가 이뤄졌는지 확인했다. “원본을 수정했습니까?” 헤이든이 물었다. “아닙니다. 원본은 현 위치에 보존했고, 외부 운영 지침과 자동 승인 절차를 분리했습니다.” 리넬이 대답했다. “자동 연장을 중지한 자료는 얼마나 됩니까?” “현장 위험이 확인된 열세 묶음입니다. 다른 구역에 같은 문제가 있는지는 추가 조사할 예정입니다.” 헤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바르셀도 참석했다. 그는 이전처럼 아르웬과 다투지 않고 검증 기록을 넘겨받았다. “중앙 교정서고 제4 보정실을 폐쇄한 결정서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전원 차단 기록은 없습니다.” “문을 닫고 기계는 계속 돌렸군요.” 내가 말했다. “그렇게 정리해도 되겠네요.” 바르셀이 대답했다. 법정은 제4 보정실의 남은 자동 권한을 잠정 중지하고, 과거 음성을 현재 동의로 간주하지 말라는 임시 지침을 내렸다. 새 규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조사하는 동안 잘못된 도장이 또 찍히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됐다. 그 뒤 모은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시온 님. 부속 제3항을 읽으셨죠?” “읽을 수 있는 부분만요.” “그중에 가장 중요한 문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잠깐 고민했다. “정지할 수 있다는 문장도 중요하지만, 정지했을 때 다른 생명들을 돌봐야 한다는 문장이요.” 모은이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그래서 권리는 명령 버튼이 아니에요.” 법정 복도를 나오는데 모은이 내게 낡은 나무 장갑을 건넸다. “라에가 남긴 물건은 아닙니다. 법정 직원들이 쓰는 문서 취급 장갑이에요. 허락되지 않은 글씨를 손으로 건드리지 않게 하려는 물건입니다.”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합니까?” “사백 년 전에는 글씨를 한 줄 바꿔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겠죠. 지금은 적어도 왜 바꿨는지 흔적을 남겨야 해요.” 나는 장갑을 끼고 손바닥을 펼쳤다. 작은 줄무늬가 여러 개 새겨져 있었다. 그걸 보자 갑자기 어릴 적 학교에서 받던 알림장이 떠올랐다. 보호자 서명 칸에 내 이름을 대신 적었다가 걸렸던 기억이었다. 열 살짜리 아이도 혼났던 일을 천계의 어른들은 사백 년 동안 이어 온 모양이었다. “모은 님, 라에가 남긴 기록을 지금 열 수는 없겠죠?” “그 기록은 아직 보호 중입니다.” “알아요. 다만 언젠가 본인이 허락하면, 그때는 우리가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면 합니다.” 모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그날 저녁 우리는 세계수 고객센터로 돌아와 마을 공급망 지도를 펼쳤다. 서쪽 어업 마을은 세계수의 온기로 물을 데우고, 북부 얼음밭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온기를 얼음다리 아래로 보내고 있었다. 동부 물안개 숲에서는 빛나는 곰팡이가 어린 나무를 보호했다. 공급을 무턱대고 끊으면 다친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될 터였다. “그러니 쉬는 방법도 만들어야죠.” 내가 말했다. 아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마다 대체 수단이 다릅니다. 기존 완충 설비가 어느 정도 작동하는지 조사부터 하겠습니다.” “세계수에 지금 당장 멈추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당연하죠. 선택은 세계수의 몫이고, 우리가 할 일은 안전한 선택지를 준비하는 겁니다.” 루루는 지도 위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 [북부 얼음밭: 대체 열원 확인 필요] [동부 물안개 숲: 습도 유지 장치 점검] [서쪽 어업 마을: 저장 온수 장치 점검] “열세 지역 전부 하려면 엄청 오래 걸리겠어요.” 루루가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할 건 하나씩 가능한지 확인하는 거야.” 그때 세계수의 창문에 잎사귀가 닿았다. 아주 작은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긴 질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물어볼 준비가 되어 있던 질문을 접었다. “그럼 짧게 물을게요. 내일 대체 공급 시험 결과를 공유해도 될까요?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잎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보여 주세요.] 루루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곧바로 공급망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실험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보조 장치를 쓰고, 주민 동의가 있는 안전한 범위에서만 진행하기로 했다. 세계수의 힘을 실제로 끊는 시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부하가 얼마나 줄어들지 계산하는 모의 시험만 하기로 했다. 아르웬이 수첩에 적었다. [시험 목표: 정지 신호를 존중하면서도 주민 안전을 해치지 않는 대안 확인] “이게 계약서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겠죠.” 내가 말했다. “네.” 아르웬이 대답했다. “쉼표 뒤의 문장까지 읽는 것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원본 계약에서 생략한 건 불과 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한 문장을 되돌리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다음 날 시험 계획을 인쇄하려는데 루루가 급히 뛰어왔다. “시온 님! 새 우편이에요!” 봉투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중앙 전력청 통보] [부속 제3항의 독립 검증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이유: 기존 공급의 안정성을 위협할 가능성] 나는 서류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실험이 위험하다는 근거가 있다면 같이 검토합시다.” “협박인데요?” 루루가 말했다. “이유가 있으면 의견이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막으면 방해지. 일단 설명부터 요구하자.” 나는 답신을 적었다. [실제 공급 중단 없음. 지역 주민 동의 아래 대체 설비만 점검 예정.] [구체적인 위험 자료를 보내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답신을 보내고 시계를 봤다. 야근까지 네 시간. 내일도 길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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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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