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 열람석은 조금 불친절한 장소였다.
입구에 [발언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는 안내가 써 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문의는 안내 담당에게 하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말을 하라는 거예요, 하지 말라는 거예요?”
루루가 물었다.
“선택하라는 거겠지. 문의도 손으로 쓰면 되고.”
우리는 조그만 나무판을 하나씩 받았다. 글자를 적으면 표면이 물결쳤다가 지워지는 판이었다. 비브는 목소리 장부를 가져오면서 이유부터 설명했다.
“이곳에는 병든 나무의 울음을 잠시 보관했다 돌려주는 치료 기록도 있고, 사라질 듯한 가족의 목소리를 자발적으로 맡긴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관했다고 해서 도서관이 주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녹음 파일을 보관하는 업체가 녹음된 사람의 입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장부의 일부가 이상했다.
[대출자: 미상]
[자료: 정지 요청 수신음]
[상태: 계속 연장]
[동의 방식: 보관 음성의 재생]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비브가 작은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줄을 짚었다.
“예전에는 음성이 재생되면 본인 요청으로 처리하던 장치가 있었습니다. 지금 규칙에선 금지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대출 대기열 한 곳에 예전 판정기가 남아 있었군요.”
“누가 가져다 쓴 건지는요?”
“그건 장부 외부의 처리 기록을 봐야 합니다.”
그때 옆 좌석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렸다.
“제 엄마 목소리도 여기 있나요?”
어린 소년이 서 있었다. 어깨에는 얇은 빛줄기로 짠 망토를 걸치고, 손에는 장난감 피리 하나를 쥐고 있었다. 비브가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하모. 오늘은 반환 문의를 하러 왔구나.”
소년은 그 자리에 서 있기까지 두 번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처음엔 자기 표가 잘못됐다는 걸 증명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고, 다음엔 누군가 또 안 된다고 할까 봐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비브가 어린 손님용 의자를 가져다주자 하모는 조용히 앉았다.
“저번에 왔을 땐 안내받은 종이가 다섯 장이었어요.”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보호자 확인서, 본인 확인서, 수령 확인서, 재발급 신청서, 그리고 신청 취소서요.”
“신청을 취소하는 서류까지 미리 줬다고?”
“네. 다들 보통 마지막 걸 쓴대요.”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행정의 진화란 무엇인가. 포기하는 법을 안내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걸까.
“오늘은 여섯 번째 종이를 줄게.”
“또요?”
“아니.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우리가 제대로 들었다는 접수증.”
루루가 재빨리 작은 나뭇잎을 가져왔다. 나는 그 위에 [현장 진술 수신, 사실 관계 확인 예정]이라고 적어 하모에게 건넸다.
아이는 오랫동안 그 나뭇잎을 바라봤다.
“이 종이는 신청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네요.”
“당연하지. 계속 묻고 싶으면 계속 물어도 돼.”
하모는 열두 살쯤 돼 보였다. 동쪽 물안개 숲에서 온 소리장인의 아들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오래전 병으로 목소리를 잃기 전에 자장가 한 곡을 맡겼다는 사연이었다.
“엄마는 제가 크면 돌려받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처음엔 제가 미성년자라서 못 찾는다고 하더니, 이제는 이미 제가 받아 갔다고 하네요.”
나는 하모를 바라봤다.
“네가 받았다고?”
“전 오늘이 처음인데요.”
소년은 대출표를 내밀었다. [수령 완료]라는 도장이 새겨져 있었다. 도장 아래는 희미한 불꽃처럼 흔들렸다.
[수령 시각: 13일 전]
[확인 음성: ‘네, 제가 받았습니다.’]
하모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저 이런 말 한 적 없어요.”
“나도 네가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 기록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려면 네 말 외에도 어떤 절차에서 이런 도장이 찍혔는지 살펴봐야 해. 같이 조사해도 되겠니?”
하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브가 장부의 바깥쪽 항목만 비췄다. 수령 당시 사용된 음성은 하모의 현재 목소리가 아니라, 그가 어릴 때 등록한 인사말의 재생이었다. 발신 위치는 도서관 안이 아니었다.
[외부 연계: 중앙 교정서고]
[인증 형식: 이전 음성 토큰]
“어릴 때 인사만 했는데 자장가를 받은 걸로 처리했다고요?”
내가 물었다.
“그런 셈입니다.”
비브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 순간 로딘이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세 번째 경고를 피하려고 나무판에 커다란 글씨를 썼다.
[사기다!!!]
글씨가 너무 커서 앞줄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비브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야 방해 경고 1회]
“말도 안 했는데!”
로딘이 결국 소리를 질렀다.
[소음 경고 3회]
도서관 바닥에서 부드러운 덩굴이 솟아 그를 출입문 쪽으로 돌려세웠다. 덩굴은 거칠게 잡아당기지 않고 그가 직접 걸어 나가도록 통로만 만들었다.
“내가 이 도서관에 바친 문화적 기여가 얼만데!”
“앞으로는 밖에서 기여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로딘이 나가자 서가가 놀랄 만큼 조용해졌다. 하모가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을 듣고 나니 전부 장난으로 넘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우리가 찾아온 건 사백 년 된 서류다. 지금 눈앞에서 열두 살짜리 아이가 자기 엄마의 자장가를 ‘이미 받았다’는 거짓 도장 때문에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저 도장이 틀렸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됐을까.
나는 하모의 표를 다시 보았다.
“비브 님. 이 사건부터 별도 접수하겠습니다. 원본 음성은 재생하지 말고, 승인 경로만 보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민원 025 — 미수령 음성의 수령 처리 조사]
그 아래 작은 글씨가 하나 더 나타났다.
[승인 경로가 계약 부속 제3항 대출 대기열과 동일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백 년 된 계약을 찾다가 아이의 자장가를 찾게 됐군.”
루루가 내 어깨에 앉았다.
“둘 다 찾아주면 되잖아요.”
그 말이 옳아서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제1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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