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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112화
PAYLUA ORIGINAL · 제112화

112화. 정숙! 드래곤은 화염도 속삭여야 합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038자

오프라인 책장
도서관 안내 담당 비브는 손바닥만 한 정령이었다. 종이로 접은 사서 모자, 수액으로 굳힌 안경, 엄지손톱 크기의 출입 장부. 생긴 것은 귀여웠는데 목소리는 사서실에서 이십 년을 근무한 사람 같았다. “이용자 명단을 확인하겠습니다.” 비브가 말했다. “최시온, 아르웬, 루루, 니아. 그리고……” “위대한 드래곤 로딘!” 로딘이 장엄하게 외쳤다. 비브가 손가락을 튕겼다. [소음 경고 1회] “아직 입장도 안 했는데?” 로딘이 억울해했다. “복도도 열람 시설입니다.” 사서가 딱 잘라 대답했다. 나는 로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객님, 오늘은 위대함을 소곤소곤 발휘해 주세요.” 수피문이 나무 결을 따라 양옆으로 벌어졌다. 안쪽은 동굴처럼 어둡지 않았다. 나무의 속살을 따라 투명한 관들이 그물처럼 이어졌고, 그 안을 흐르는 수액이 은은한 황금빛을 냈다. 층마다 둥근 책장이 돌고 있었다. 책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들이었다. 유리병에 든 한숨, 껍질 조각에 붙은 웃음, 끝이 묶인 은빛 실타래. 책등 대신 누군가의 마지막 말이 적힌 서가도 보였다. “와아. 나무 안이 이렇게 넓어요?” 루루가 감탄했다. “조용히 감탄해 주세요.” 비브가 말했다. “와아아…….” 루루가 입 모양만 움직였다. 내가 웃음을 참자 비브는 나를 노려봤다. 웃음도 소음으로 분류되는 모양이었다. 서가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나는 오래된 목소리 몇 개를 들었다. 어떤 병에서는 할머니가 손녀에게 비 오는 날 빨래를 거두라고 당부했고, 어떤 병에서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누군가 한참 울었다. 병마다 작은 꼬리표가 있었다. [소유자의 요청으로 일시 보관] [대리 열람 불가] [정해진 날 이후 자동 삭제하지 않음 — 소유자에게 재확인] 그 문구를 읽으며 나는 예전 직장이 떠올랐다. 고객 통화를 녹음한다는 안내는 늘 처음에 나왔지만, 실제로 어떤 자료가 얼마나 남는지 물어보는 고객에게 똑똑히 대답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 알 수 없도록 만든 회사가 문제였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더 자주 물어봐야 했다. “시온 님, 이 병은 왜 비어 있어요?” 루루가 가리킨 병에는 [어느 날 돌려받을 웃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브가 뒤에서 말했다. “주인이 대출해 갔습니다. 빈 병도 도서관 자료입니다. 돌려받은 자리가 남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러면 빈 병이 가장 좋은 책이네요.” 내가 말했다. “무사히 돌아갔다는 뜻이니까.” 로딘이 옆에서 코웃음을 치려다 목을 틀어막았다. 비브가 이미 그의 입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고 중앙에는 원형 안내대가 있었다. 비브는 그 위에 세 가지 규칙을 띄웠다. [첫째, 열람 권한은 자료마다 별도입니다.] [둘째, 저장된 목소리는 인격이나 동의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셋째, 대출과 반납에는 현재 당사자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좋은 규칙인데요.” 내가 말했다. “원래부터 있었습니까?” 비브가 안경을 고쳐 썼다. “첫째와 셋째는 원래부터 있었습니다. 둘째는 열일곱 해 전에 정리됐습니다.” 아르웬의 펜이 멈췄다. “열일곱 해 전이라면 라에가 재심사를 신청한 무렵이군요.” “신청인에 대한 정보는 열람 허가를 확인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정상적인 공무원이었다. 감격해서 초상화를 주문할 뻔했다. “부속 제3항을 보러 왔습니다.” 내가 용건을 밝혔다. 비브가 장부를 넘겼다. “조회는 가능합니다. 원본 계약의 부속 자료 중 무엇을 찾으십니까?” “정지 권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요. 신원을 보호한 채 권한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목적입니다. 다만 책장을 열면 자동으로 소리를 기록하는 구역이 있습니다. 이용자 목소리를 남기는 절차에는 동의하시겠습니까?” “아뇨.” 내가 대답했다. “필요한 정보는 읽고 싶지만, 제 음성을 저장할 이유는 아직 없으니까요.” 비브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음 열람석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루루가 내 팔을 툭 쳤다. “그냥 동의했으면 더 빨랐을 텐데요.” “더 빠른 길이 항상 좋은 길은 아니야. 특히 남의 목소리가 담보라면.” 우리는 서고 아래층의 무음 열람석으로 내려갔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수액 방울이 빗소리처럼 들렸다. 한쪽 벽에는 대출 기록이 커다란 금빛 나이테로 남아 있었다. 최근 기록 몇 줄이 유난히 짙었다. [17년 전: 제3항 안내 사본 열람] [대출물: 질문할 수 있는 자리의 설계도] [반납 상태: 임시 보류] “누가 빌렸는지 적혀 있나요?” 아르웬이 물었다. 비브가 답했다. “대출자 신원은 보호됩니다. 다만 자료 자체가 반납되지 않은 이유는 조사할 수 있습니다.” 로딘이 갑자기 책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깐. 저 병에서 내 목소리가 들린다.” 비브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만지지 마십시오!” 로딘의 손톱이 병을 스쳤다. 병 속에서 웅장한 울림이 터졌다. ‘위대한 내가 세상에 선언하노라!’ 정말 그의 목소리였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천장부터 끝까지 같은 대사가 반복됐다. ‘위대한 내가…… 위대한 내가…… 위대한 내가…….’ “제발.” 내가 중얼거렸다. “도서관 안에서 저것까지 틀면 지옥이 따로 없어요.” 비브가 안경을 벗었다. [소음 경고 2회] 로딘이 억울하게 속삭였다. “사백 년 전에 저장한 목소리까지 오늘 경고로 쳐 주는가?” “이용자가 재생을 유발했습니다.” 비브가 말했다. 나는 로딘을 조용히 구석으로 데려갔다. “고객님. 세 번째면 퇴실이래요.” “그럼 나는 이제 입도 열지 않겠다.”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기쁘네요.” 그런데 병 속에 갇혀 있던 웃음들이 잠잠해지자 서가의 나이테 아래에서 조그만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목소리 대출 장부 — 17년 전 이후 자동 연장 계속] [연장 요청 발신자: 본인 확인 불가] 비브의 표정이 굳었다. “이 장부는 원래 자동 연장이 안 되는데요.” 문득 내 머릿속에서 오래된 고객센터 알림음이 울리는 듯했다. 가장 위험한 사고는 고장 난 장치가 아니라, 고장 났는데도 정상이라고 써 붙인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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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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