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법정은 소리가 없는 곳에 있었다.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소리가 없었다.
우리는 세계수 북쪽 가지에서 연결된 오래된 돌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에는 흰 바위 절벽이 있었고, 바위 한복판에는 귀 모양을 뒤집어 놓은 듯한 검은 문이 있었다. 문 앞에 서자 새소리와 바람 소리까지 끊겼다.
“와.”
내가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입술은 움직였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루루가 양손을 휘저었다. 그녀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대충 읽어 보니 ‘배고파요’였다. 이 정령은 정말 일관된 친구다.
아르웬이 안내판을 가리켰다.
[입장 전 삼 분간 묵음 구역]
[타인의 발언·침묵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예비 보호 단계]
[신체 접촉과 마법 구속은 허용되지 않음]
[구역을 떠나는 것은 자유]
“삼 분이면 참을 만하지.”
당연히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입으로만 말하는 습관이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이는지 깨달았다.
로딘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나를 따르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요?’
로딘이 가슴을 쳤다.
‘나는 침묵에서도 위엄이 있다.’
확실히 있었다. 금색 망토가 뒤에서 펄럭이는 게 문제지만.
잠시 뒤 누군가 문 옆에서 나왔다. 짙은 회색 옷을 입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귀 끝에는 낡은 은제 고리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문자판 네 개를 건넸다.
[나는 입장을 원합니다]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돌아가겠습니다]
[안내가 더 필요합니다]
좋다. 최소한 처음부터 강제 선택은 없다.
나는 마지막 판을 들었다. 여성이 내 앞에 작은 수첩을 펼쳤다.
[무슨 안내를 원하십니까?]
나는 펜을 받아 적었다.
[출장비는 어디서 지급됩니까?]
그녀가 잠시 멈췄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아르웬이 이마를 감쌌다. 침묵 구역이 아니어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여성은 다시 썼다.
[소속 기관에서 지급합니다. 법정은 교통비 영수증을 발행합니다.]
나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안내가 정확하다. 합격.
세 번째 종이 모래시계가 비워졌을 때, 주변으로 소리가 돌아왔다. 바람이 돌틈을 스쳤고 루루가 참았던 말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시온 님! 저 아까부터 배고팠어요! 그리고 침묵이 이렇게 답답한 건 줄 몰랐어요! 아, 또 하나요, 드래곤 님 망토에 붙은 금가루가 제 코에 들어갔어요!”
“공기 좋다가 갑자기 나빠졌네.”
“왜요?”
“아무것도 아니야.”
안내 여성이 입을 열었다.
“방문자 여러분. 저는 예비 접수관 모은입니다.”
모은.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제로가 확인한 법정 접수인의 등록명은 공란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으려다가 말을 고쳤다.
“직접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접수 기록을 확인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합니까?”
모은은 잠깐 내 얼굴을 살폈다.
“오늘 동행하신 분이 최시온 상담원인가요?”
“네.”
“검은 우편선에서 봉투를 열지 않으셨다는 보고를 봤습니다.”
“열면 혼날 것 같아서요.”
“그건 좋은 이유입니다.”
“처음으로 인정받았어.”
아르웬이 작게 기침했다.
법정 내부는 예상보다 평범했다. 큰 법대도 황금 왕좌도 없었다. 둥근 대기실에 의자 열두 개, 물병 몇 개, 기록함 두 개가 전부였다. 벽에는 오래된 종이들이 층층이 붙어 있었다.
[증언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존중할 것]
[말하지 않는다고 동의한 것으로 기록하지 말 것]
[위협 아래의 침묵은 자유로운 선택으로 추정하지 말 것]
나는 세 번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와. 사백 년 전 사람이 이런 걸 적었다고요?”
모은은 대답 대신 벽 위쪽을 가리켰다. 글씨의 일부가 새겨져 있었다.
[최초 설립: 세계수 계약 직후]
[최근 규정 갱신: 17년 전]
“사백 년 전부터 모두 저렇게 생각한 건 아닙니다. 지금 문장은 여러 번의 실패를 거쳐 남았습니다.”
역시. 제도라는 건 실수의 화석이기도 하다.
모은은 의자 세 개를 옮겼다.
“면담에서는 발언, 기록 전달, 침묵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질문은 건너뛰셔도 됩니다. 다만 예비 면담 결과만으로 제2 서명인의 신원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내 대답에 모은이 처음으로 안심한 듯 웃었다.
그러다 법정 안쪽 문이 열렸다.
검은 제복을 입은 남성이 들어왔다. 뻣뻣한 옷깃과 광택 없는 안경, 그리고 손에는 도장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문턱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중앙 기록국 특별 이관관 바르셀입니다. 법정 보전 기록의 즉시 인계를 요청합니다.”
또 중앙 기록국이다.
도대체 이곳에는 기록국 말고 출퇴근하는 기관이 없나?
모은은 한 걸음 물러섰다.
“이관 신청은 별도 심사 중입니다. 오늘은 예비 면담이 먼저 예정돼 있습니다.”
바르셀이 나를 훑어봤다.
“최시온. 당신은 계약 당사자도 아니면서 자꾸 옛 기록에 개입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민원 접수 담당인데요.”
“그게 특별한 권한을 주지는 않습니다.”
“네. 그래서 매번 허락을 구합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권한 없는 이에게 기록을 건넬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러자고 한 적 없습니다.”
로딘이 옆에서 소곤거렸다.
“저놈을 태울까?”
“아뇨.”
“조금만?”
“고객님, '조금 탄 법원'이라는 건 없습니다.”
바르셀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렇다면 즉시 이 자리를 떠나십시오. 아무 말도 안 하면 동의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모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르웬도 펜을 멈췄다.
나는 벽의 두 번째 문장을 가리켰다.
“저기요. 벽에 써 있는 거 읽으셨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말하지 않는다고 동의한 것으로 기록하지 말 것.”
바르셀의 안경이 삐딱하게 내려갔다.
“그건 증언 대상자에게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 중 증언 대상자가 누군지 확인부터 해보죠. 그전까지는 함부로 대답을 강요하지 마시고요.”
모은이 들고 있던 수첩을 닫았다.
“이관관님. 오늘 방금 하신 발언은 예비 절차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바르셀이 얼굴을 굳혔다.
서류에 적힌 한 줄이 드래곤의 불꽃보다 강해지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데 그때 법정 가장 안쪽의 문 위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땡.
[사건 024 예비 증인 출석]
[증인 이름: 등록 말소]
[선택 상태: 발언 보류]
나는 모은을 돌아봤다.
“지금 누가 들어온 겁니까?”
모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아니요.”
그녀가 대답했다.
“이 법정은 아직 아무도 부르지 않았어요.”
제10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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