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아이를 처음 만날 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마왕에게 예법을 가르치는 책은 많다. 사신의 앞에서는 어느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적장의 목은 어느 높이에 걸어야 위엄이 서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낯선 아이가 내 망토를 잡아당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책은 없었다.
동쪽 관문의 산파 나딘은 내게 말했다.
“그 아이를 만나시려면 무기를 두고 들어오셔야 해요.”
바르톨이 당장 항의했다.
“마왕 전하께 검을 내려놓으라니!”
“괜찮다.”
나는 검집을 그에게 건넸다.
“칼은 방 밖에 두고, 너는 아이에게 보이지 않게 대기해라.”
그는 마치 마왕성이 무너진다는 명령을 들은 얼굴이 됐다.
“전하. 혹시 위험한 자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니 네가 밖을 지켜야지.”
나딘이 안내한 곳은 관문에서 두 골목 떨어진 제빵소였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골목에 맴돌았고, 문 옆에는 작은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식탁 옆의 창문에는 천으로 만든 별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안쪽에는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다리아입니다.”
“카르딘이다.”
“압니다. 다들 전하가 어떤 분인지 말해 줬어요.”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었겠군.”
“별로요.”
나는 웃지 않았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리아는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은빛이 도는 눈, 작은 볼, 낡은 천 조끼. 녀석은 내 망토에 달린 검은 깃털을 발견하자 손을 뻗었다.
“아!”
나는 무심코 깃털을 감췄다. 아이가 놀라자 손을 멈추고 다시 보여 주었다.
“이걸 원하나?”
아이는 대답 대신 다리아의 목을 껴안았다.
나딘이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 이름은 이안이에요. 아직 두 돌은 안 됐습니다.”
이안.
장부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다리아가 급히 덧붙였다.
“제가 붙인 이름이에요. 친부모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혹시…… 이름을 붙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 아니다.”
내 대답은 예상보다 빨랐다.
“누가 먼저 붙였든 지금 아이를 부르는 이름이 있지 않나. 그 이름은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다.”
다리아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어졌다.
***
나는 아이의 어깨를 당장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딘은 진료 기록을 가져왔고, 다리아는 아이를 맡게 된 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겨울 관문 근처 임시 숙소에서 아이를 발견했으며, 그 뒤로 함께 지냈다고 했다. 기록이 불완전했고, 연락처도 없는 사람이 두고 갔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어깨의 자국은 처음부터 있었나?”
“네. 하지만 상처처럼 보였어요. 처음엔 붉었고, 시간이 지나며 색이 옅어졌습니다.”
“보호자께서 의료진에게 보여 준 적은?”
“나딘 선생님이 봐 주셨어요. 다른 검사는 아이가 너무 무서워해서 하지 않았고요.”
나딘이 진료장을 펼쳤다. 나는 읽는 대신 먼저 물었다.
“다리아.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오늘은 더 조사하지 않겠다. 아이를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이 집을 들쑤시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또 오면요?”
“그때를 위한 경계와 대피 계획은 당신이 아이를 보여 주지 않아도 세울 수 있다.”
다리아는 오래 생각했다.
“자국은 확인해 주세요. 대신 이안을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결정은 하지 마세요.”
“약속한다.”
이안은 빵 부스러기를 쥔 채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리아가 아이를 조심히 돌려 세우자 왼쪽 어깨에 희미한 초승달 모양이 보였다.
레온의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똑같지는 않았다.
레온의 자국은 안쪽으로 파인 흉터였다. 이안의 것은 표면에 색이 남은 듯했고, 양 끝이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상처의 모양만으로 무엇이 원인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
“확인했다.”
나는 그 이상 손을 뻗지 않았다.
그때 이안이 내 옷자락을 붙들었다.
“응.”
아이가 가리킨 것은 내 망토였다.
나는 깃털 장식을 떼어 주고 싶었지만, 날카로운 금속 고리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쳤다.
“이건 다칠 수 있다.”
아이 얼굴이 찌푸려졌다.
“잠시만 기다려라.”
나는 망토의 안쪽에서 검은 천 조각 하나를 떼어 말랑한 새 모양으로 접었다. 미아에게 배운 서투른 손놀림이었다. 이안은 조잡한 새를 받더니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다리아가 처음으로 웃었다.
“전하께서 그런 걸 만드실 줄은 몰랐어요.”
“나도 최근까지 몰랐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
이안이 낮잠에 들자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나딘은 장부가 붉게 변하기 전에도 낯선 사람들이 몇 차례 찾아왔다고 했다. 출생일을 묻고, 은빛 눈을 가진 아기를 찾았으며, 마지막에는 그들이 데려갈 수 있는 정식 문서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문서를 직접 본 사람이 있나?”
“다리아가 봤습니다.”
다리아는 서랍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
[성왕국 신탁 보호자 이전 명령. 제2후보.]
하단에는 금빛 태양 문양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로잘린이 전해 준 진짜 신전 인장과는 미세하게 달랐다. 태양 가운데 있어야 할 작은 점이 없었다.
나는 종이를 불태우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가짜인가요?”
“위조 가능성이 크다. 확정하려면 로잘린이 원본 인장과 대조해야 한다.”
“그럼 이안을 데려가려는 사람들은 누구죠?”
“아직 모른다.”
다리아는 눈을 감았다.
“전하도 모르는 게 있군요.”
“많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무슨 죽을 먹여야 하는지도 아직 가끔 헷갈린다.”
나딘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나는 다리아에게 종이 세 장을 건넸다. 하나는 집에 둘 경고용, 하나는 나딘에게 보낼 비상 연락용, 마지막은 본인이 원할 때 임시 보호를 요청하는 서식이었다. 어디로 이동하든 다리아의 결정을 먼저 확인하게 했다.
“마왕성으로 오라는 겁니까?”
“원한다면 그곳도 선택지다. 하지만 당신이 이곳에서 살고 싶다면 이곳을 지키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다리아는 서식의 빈칸을 오래 보았다.
“저는 여기 빵 냄새가 좋아요. 이안도요.”
“그렇다면 그 냄새가 계속 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일이지.”
집을 나설 때 이안이 잠에서 깨어 작은 천 새를 흔들었다.
다리아가 대문에 걸어 둔 빵집 간판은 빛이 바래 있었다. 간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오늘 만든 빵은 오늘 먹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평범한 약속이 마음에 들었다. 신탁처럼 스무 해 뒤까지 사람을 묶어 두지 않았다.
“혹시 누가 찾아오면 먼저 어떤 말을 해야 하죠?”
다리아가 물었다.
“바로 문을 열지 말고, 왜 왔는지 확인해라. 그리고 나딘에게 연락하라.”
“마왕성에 가야 하나요?”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다. 급히 대피해야 할 위험이 확인되면 위험을 설명하고 선택지를 주겠다. 하지만 무서우니까 무조건 숨으라는 말로 끝내고 싶지 않다.”
나는 빵집의 뒷문과 피난 골목을 확인하고, 다리아가 원한 위치에만 연락용 통신석을 놓았다. 통신석이 아이의 움직임을 감시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라기스에게 확인받았다.
다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가 이렇게 많은 걸 설명할 줄 몰랐어요.”
“나도 한때는 설명이 군주의 위엄을 떨어뜨린다고 믿었다.”
“지금은요?”
“설명을 못 하는 명령은 대개 내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명령이더군.”
나는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저 아이가 장차 용사가 될지는 모른다. 레온과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내가 확인하러 온 것은 '두 번째 달'이었지만, 내가 만나고 돌아가는 이는 이름을 가진 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 사실만은 어떤 예언에도 빼앗기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제9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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