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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89화
PAYLUA ORIGINAL · 제89화

89화. 미래의 서명을 거부하는 법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3,885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종말을 여러 번 보았다. 불타는 전장, 무너지는 성벽, 레온의 성검, 그리고 하늘에 뜬 붉은 별. 그런데 이번 종말은 깔끔한 서류 한 장으로 시작됐다. [제8경로 관리자 병합 절차 개시.] 나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행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마법이군.” *** 시각시의 물시계가 갑자기 두 번 울렸다. 우리가 정한 중단 신호와는 다른 소리였다. 동시에 외부 기록판에는 세 개의 서명란이 떠올랐다. 첫 번째, 마왕 카르딘. 두 번째, 레온. 세 번째, 미지정. “전하, 첫 번째 칸은 이미 승인된 것으로 표시됩니다!” 마렌이 외쳤다. “내가 승인한 적 없다.” “장치가 전하의 미래 서명을 불러왔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스무 해 뒤에 할지도 모르는 선택이 오늘의 내 손을 대신 움직였다. “첫 번째 칸을 지워라.” “지우면 다음 칸으로 권한이 넘어갑니다. 레온의 이름으로요.”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누군가 미리 만들어 놓은 계단이었다. 한 칸을 거부하면 다음 칸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도록. “승인을 지우지 말고 보류로 바꿔라. 그 문서가 누가 쓴 것인지 확정할 때까지.” 마렌이 펜을 움직였다. 하지만 기록판은 반응하지 않았다. [보류 불가. 긴급 집행 우선.] 나는 주먹으로 책상을 칠 뻔했다. 그리고 손을 멈췄다. 지난번에는 돌판을 부수지 않았다. 이번에도 같은 원칙을 지켜야 했다. *** 라기스가 금고에서 나사를 꺼냈다. “전하, 제8경로의 작동에는 외부 접속부가 필요합니다. 이 나사가 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끊으면?” “당장은 기록판이 멈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부에 들어온 명령까지 사라지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리 연결을 끊되, 기록은 지우지 않는다. 그리고 외부 증인들이 현재 시각을 다시 확인하게 하자.” 마렌은 즉시 시장으로 연락했다. 에데, 엘다, 세브, 그리고 제빵사까지 증인석에 섰다. 엘다가 물었다. “또 누가 사라지나요?” 나는 숨기지 않았다. “그럴 위험이 있다. 그래서 막고 있다.” “제가 할 일 있어요?” “네가 원하면 너 자신의 귀환 기록을 확인해 주면 된다. 다른 사람 대신 서명할 필요는 없어.” 엘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할 수 있어요.” *** 제8경로의 관찰창이 저절로 켜졌다. 그 안에 내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시간이 없다, 카르딘.” “시간이 없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네가 버티면 관리자 권한은 레온에게 넘어간다.” “그걸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서 내가 대신 받으려고 한다.” 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진짜 감정인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환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받으면 누가 사라지지?” “아무도.” “확인할 수 있나?”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 말대로라면 너는 내 미래의 일부다. 하지만 네가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을 내가 믿을 수는 없어.” “네가 그토록 싫어하던 무력함을 견디겠다는 건가?” “그래.”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보다 낫다.” *** 갑자기 모든 시계가 멈췄다. 시각시에서는 여덟 번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실제로 열리지 않았다. 대신 그 앞에 있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마렌의 그림자는 두 개가 되었고, 로잘린의 그림자는 서명판 쪽으로 끌려갔다. “전하, 기억이 분리되고 있어요!” 라기스가 소리쳤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바닥에 검은 결계를 펼쳤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목을 묶지 않았다. 결계의 바깥에 단단한 선을 긋고, 누구든 원하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내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해라. 각자 자신의 이름과 지금 있는 곳을 말해!” 마렌이 먼저 말했다. “마렌. 시각시 기록실. 제 뜻으로 여기 있습니다.” “로잘린. 시각시 기록실. 중단 요청합니다.” “라기스. 서명판 앞. 외부 연결 차단을 진행합니다.” 바르톨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바르톨! 전하를 섬깁니다!” 나는 바로 대꾸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너 자신의 이름을 먼저 지켜라!” 바르톨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바르톨. 내 의지로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두렵습니다!” 나는 웃음이 날 뻔했다. 그가 두렵다고 말하는 장면을 처음 보았다. 그래도 그 말은 다른 사람의 명령보다 정확했다. *** 시장에서도 목소리가 왔다. “엘다. 회색다리 시장. 저는 오늘 빵을 먹고, 내일도 여기 있고 싶어요.” 에데가 이어 말했다. “에데. 증인석. 제 이름은 엘다의 귀환 때문에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세브가 기록을 읽었다. “시장 주민의 현시각 생존자 명부, 변동 없습니다.” 그 소리들이 겹치자 관찰창의 그림자가 희미해졌다. 마렌이 외쳤다. “전하! 현재의 당사자 확인이 미래 서명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억지로 서명하지 말고 지금 상태를 유지해라!” 여덟 번째 문 안쪽에서 내 얼굴을 한 남자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그러면 너도 사라질 수 있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가능성이 있겠지. 하지만 네가 나 대신 선택한다고 해서 내가 살아남는다는 증거도 없다.”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시계가 다시 움직였다. 한 칸. 또 한 칸. 그리고 서명판에 처음 보는 문장이 떠올랐다. [현시점 당사자 이의 확인. 관리자 병합 일시 정지.] 나는 눈을 감았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누군가의 이름이 지워지는 일은 막았다. 우리는 곧바로 귀환 문들의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엘다가 나온 첫 번째 문은 닫힌 채 안정돼 있었다. 그녀가 원하면 연락할 수 있는 관찰 경로는 그대로 남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에서는 노크가 없었고, 일곱 번째 문의 루멜은 잠시 관찰창을 가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로잘린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누구도 사라졌다는 보고가 없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하지 마라.” 라기스가 시계 두 개를 가리켰다. “전하, 방금 멈춘 시간은 실측으로는 열두 호흡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시각시 장부에는 열두 시간이 지난 것으로 적혀 있어요.” 마렌이 곧바로 이의를 남겼다. [현실 시간과 기록 시간 불일치. 시간 이동 여부 미확정.]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안도했다. 예전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결과가 나오면 바로 승리를 선포했다. 적이 쓰러졌다는 사실과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열두 호흡이 열두 시간으로 적히는 세상에서는, 기록 한 줄이 거대한 함정이 될 수 있었다. “현재의 시계는 외부 시장과 마왕성에서도 대조해라. 우연히 같은 시간이 찍혔다고 원인이 같다고 단정하지 말고.” 세브가 보고서를 보냈다. '시장 물시계 정상. 귀환 당사자 엘다, 현재 위치 확인. 외부 기록 훼손 흔적 없음.'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확인한 사실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마왕의 방식처럼 무언가를 크게 부수고 싶었다. 대신 기록판 앞에 잠시 서서 손가락을 폈다. 문을 부수지 않은 손이 오늘도 누군가를 지켜 냈을지도 모른다. 그때 마왕성에서 긴급 연락이 왔다. 미아의 목소리였다. “전하. 레온이 갑자기 아빠를 찾고 있어요.” “바로 가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어요.” 나는 숨을 멈췄다. “무슨 일이지?” “아이가 서명판도 본 적 없는데, 문을 향해 같은 말을 세 번 했어요.” “뭐라고?” 미아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싫어. 내 거야.'라고요.” 나는 그 말이 동의인지, 우연한 옹알이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서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보기로 했다.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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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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