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예 없던 일을 있었다고 말하는 거짓말. 그리고 있었던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만 빼는 거짓말.
나는 전자에 익숙하다. 적국의 사신들은 언제나 군대가 없다고 말하면서 성벽 뒤에 병력을 숨겨 두곤 했다.
후자는 훨씬 다루기 어렵다.
여덟 번째 문에서 본 남자는 내가 기억하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찾기로 했다.
***
나는 아침부터 마렌을 불렀다.
“그자의 말 중 확인 가능한 사실만 추려라.”
그녀가 문서를 펼쳤다.
“오르세가 한 사람이 아니라 직책일 수 있다는 주장. 여덟 번째 공간에 분기된 기억들이 쌓여 있다는 주장. 그리고 전하가 언젠가 그 직책을 맡았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
“네. 다른 두 가지도 독립적인 증거가 필요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시각시 기록위원회의 낡은 직인장을 조사했다. 인장에는 관리자 이름 대신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언뜻 같아 보이는 서류도 홈의 방향이 미세하게 달랐다.
“같은 인장으로 찍은 게 아니군.”
세브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시대마다 금속을 다시 깎은 흔적이 있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서류를 일곱 묶음으로 나눴다. 각 묶음에는 서로 다른 필체와 도장 자국이 섞여 있었다.
“오르세가 일곱 사람입니까?”
바르톨이 물었다.
“적어도 일곱 시기에서 다른 손이 사용했다는 뜻이다. 사람 수도 일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그렇게 신중하게 말씀하시면 보고서가 길어집니다.”
“마왕국의 종이가 모자라느냐?”
“아닙니다. 다만 보급 장부에 이미 기저귀와 젖병 항목이 늘어서…….”
“왜 수사와 육아가 같은 장부에 있지?”
바르톨은 눈을 피했다.
나는 그를 잠깐 노려보다가 웃었다. 어쩌면 내 성을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마력이 아니라, 이런 엉성한 장부일지도 모른다.
***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인장을 보여 준 사람은 로잘린이었다.
그녀는 성왕국의 폐쇄된 신전에서 사본을 가져왔다. 신전이 숨긴 기록을 사본으로만 내놓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우선 다른 문서와 대조할 수 있었다.
“이쪽은 예언을 승인한 날의 인장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그런데 이 서류에는 '마왕 카르딘 최종 승인'이라고 적혀 있군.”
나는 날짜를 확인했다.
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재미있군.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서류를 잘 쓰는 사람이었나 봐.”
마렌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누군가 미래의 전하를 승인자로 등록했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혹은 카르딘이라는 이름을 아예 직책처럼 쓰는 거겠지.”
“그렇다면 출생 기록이 지워진 이유도…….”
마렌이 말을 멈췄다.
나는 그 뜻을 알았다.
내가 태어난 존재이기 전에, 누군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 놓은 역할이었을 가능성.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주 잠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아르헨의 손에 매달려 시장을 건너던 날. 그녀가 머리끈을 내게 쥐여 주던 날. 배고파 울다가도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어 이를 악물던 날.
그 기억이 모두 가짜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설령 누군가 기록을 조작했더라도, 내가 느낀 배고픔과 외로움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름의 시작이 어디든, 내가 걸어온 날들은 내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말했다.
로잘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날 저녁, 시각시의 외부 보관실에서 오래된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영상 속에는 세라크와 아르헨이 서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작은 아이 하나가 있었다. 얼굴은 흐릿했지만 아르헨의 손을 잡고 있었다.
기록 아래에는 날짜가 있었다.
나는 그 날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태어나기 세 해 전.
“이건 누군가 날짜를 잘못 적은 것 아닐까?”
라기스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다른 시계와 대조해 보자.”
문제는 당시 기록한 세 개의 시계가 서로 다른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과거, 하나는 현재, 하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세라크가 시간을 조작했을 때의 기록 같습니다.”
라기스가 말했다.
나는 영상 속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나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르헨이 아이를 감싸는 모습은 분명했다.
나는 보관실에 기록을 남겼다.
'영상 속 아동의 신원 미확인. 보호 행위 확인. 날짜 정보 충돌.'
예전 같았으면 내 출생의 증거라고 선포했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 선포를 이용했을 것이다.
***
우리는 영상의 사본을 세 장 만들었다.
원본은 라기스가 봉인했고, 두 번째 사본은 로잘린에게 맡겼다. 세 번째는 아르헨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과 함께 보관하기로 했다.
나는 그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에 직접 참석했다.
한 노인은 아르헨이 비 오는 날마다 남의 아이에게 자기 외투를 벗어 주던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노인은 그녀가 늘 흰 머리끈을 지녔다고 했다. 두 사람의 기억은 대체로 비슷했지만, 아르헨이 떠난 연도는 서로 달랐다.
“둘 중 누가 맞지?”
내가 묻자 노인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전하, 그때는 마을 시계가 멈췄습니다.”
한 노인이 말했다.
“홍수 뒤로 날짜를 다시 세었거든요.”
“그래서 연도가 달라졌다는 건가?”
“어쩌면요. 하지만 우리가 잘못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나는 이런 대답을 싫어했다. 확실한 날짜가 없으면 군대를 움직이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틀린 날짜라도 정확한 것처럼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남기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날짜에 표시를 해 두었다.
아르헨에 관한 사실은 여전히 부족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 출생을 관리하려고 기록을 옮겼다 하더라도, 시장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친절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돌아오는 길에 엘다가 내게 작은 종이를 건넸다.
그녀가 시장에서 배운 글씨로 쓴 것이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 첫 번째 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의 첫 번째 날은 태어난 날 아니냐?”
엘다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날짜는 여러 개 가질 수 있다고 했어요. 태어난 날, 처음 빵을 구운 날, 무서운 곳에서 나와서 햇빛을 본 날.”
“그렇군.”
“마왕님은 어떤 날이 가장 좋아요?”
나는 생각했다.
왕좌에 처음 오른 날. 천사들을 몰아낸 날.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
그 어떤 날보다 선명한 기억이 있었다.
숲에서 처음 레온이 웃던 날.
“아주 작은 놈이 내 얼굴을 보고 웃은 날이다.”
엘다는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럼 그날도 첫 번째 날로 적으세요.”
나는 종이를 받았다.
그때 내 주머니 속 회중시계가 진동했다.
[역할 귀속 정정 요구.]
[카르딘의 신원 확정 기한: 삼 일.]
[미확정 시, 여덟 번째 문의 후보 자동 병합.]
나는 종이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이번에는 고르지 않으면 억지로 합쳐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종이를 다시 펴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엇으로 태어났든, 지금의 나는 이 아이들에게 그런 협박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마렌.”
“네, 전하.”
“사흘이면 충분한지 모르겠군. 하지만 시간을 정한 건 저쪽이다. 우리는 저쪽의 시계를 믿지 말자. 우리 시간부터 따로 기록해.”
이 싸움은 이제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내 이름을 누가 쓰도록 허락할 것인지, 그 권한을 되찾는 싸움이었다.
제8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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