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에게 명령할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신들은 명령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대부분 듣지 않는다. 바르톨은 감히 명령하지 못한다. 미아는 내게 명령하지 않는 척하면서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으라고 시킨다.
그리고 레온.
아직 글씨도 못 쓰는 내 아들은 놀랍게도 내 하루를 가장 많이 지배한다.
“아빠! 빠!”
녀석은 내 망토를 붙잡고 흔들었다.
“또 놀자고?”
“응!”
나는 문서에 이름을 쓰려다 펜을 놓았다.
“좋아. 잠깐만이다.”
그때 마렌이 뛰어 들어왔다.
“전하, 레온의 이름으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나는 장난감을 떨어뜨렸다.
***
명령은 시각시 중앙 기록판에서 발행됐다.
[예언의 유아 레온. 임시 수신자 동의권 행사.]
[제1경로 수신지 교체 승인.]
[반대 의사는 보호자 카르딘의 미래 입회 기록으로 대체.]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레온은 아직 문장을 읽지 못한다.”
로잘린이 답했다.
“그걸 몰라서 발행한 명령은 아닐 거예요. 아이의 미래 선택을 현재의 권한처럼 쓰려는 겁니다.”
“미래의 레온도 지금 여기에 없는데?”
“바로 그 점이 문제죠.”
나는 기록판 아래에 주먹을 내려놓았다. 돌판이 살짝 금이 갔다.
마렌이 나를 보았다.
“전하, 판을 부수면 증거도 사라져요.”
나는 손을 거뒀다.
“알고 있다.”
이제 힘을 쓰고 싶을수록 힘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전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이었다.
***
우리는 레온의 이름이 어떻게 등록됐는지 확인했다.
기록판에는 아이의 출생 정보와 미래의 용사 신탁이 연결돼 있었다. 첫 번째 명령서에는 그 아이가 성검을 쥐게 되는 미래의 장면이 첨부돼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미 완료했다고 적었군.”
라기스가 불쾌해했다.
“예언을 서명으로, 장면을 사실로 쓰는 방식입니다.”
“그럼 멈추자.”
“어떻게요?”
나는 서류를 펼쳤다.
“현재의 레온은 동의한 적이 없다. 미래의 레온도 직접 대답한 적이 없다. 지금 확인할 수 없는 동의는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고 적어라.”
마렌은 공식 이의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녀가 물었다.
“보호자인 전하가 대신 거부하시는 겁니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의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책임은 내게 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른이 돼서 무엇을 선택할지 내가 영원히 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를 적어라.”
마렌은 긴 문장을 지우고 짧게 다시 썼다.
[현재 미성년 대상의 안전을 위한 대리 이의 제기. 미래 당사자의 선택권은 유보.]
나는 그 문장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 손으로.
***
기록판은 곧바로 반응했다.
[이의 제기 접수. 미래 집행관 심사로 이관.]
이관.
나는 그 단어가 싫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서류는 언젠가 누군가의 책임을 없애는 데 쓰인다.
“심사하는 자의 이름을 요구해라.”
세브가 공문을 작성했다.
잠시 뒤 답이 왔다.
[심사 담당: 오르세.]
“역시 네놈이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오르세는 이름이면서도 이름이 아니었다. 누가 그 자리에 앉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라기스가 회중시계를 가져왔다.
“전하, 여덟 번째 관찰 경로가 열리는 순간을 역추적해 보겠습니다. 특정 장소에서만 가능한 방식이에요.”
“위험은?”
“그 경로가 우리에게도 열린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먼저 볼 수도 있어요.”
나는 생각했다.
“그럼 시간을 정해 짧게 확인하고 즉시 닫자. 나 혼자 보는 방식은 금지다.”
마렌과 로잘린이 동의했다.
***
여덟 번째 경로가 켜졌다.
관찰창 너머에는 서류가 쌓인 방이 있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수백 개의 작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이상한 표어가 쓰여 있었다.
[미래의 오류는 현재의 동의로 수정한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웃었다.
“거꾸로 됐군. 현재를 먼저 고정해 놓고 미래의 선택이라고 부르는 자들 아닌가.”
방 안쪽에 누군가 있었다.
검은 장갑을 낀 인물이었다. 얼굴은 가면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작은 금속 인장을 들고 서류를 찍고 있었다.
오르세.
그자가 우리를 본 모양이었다.
“마왕 카르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앞으로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그 미래를 막기 위한 서명 하나가 그토록 아깝나?”
나는 대답했다.
“죽지 않을 길을 찾는 일과 남의 이름을 훔치는 일은 다르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누가 낼지 선택하지 못한다면, 그건 선택이 아니지.”
가면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스무 해 뒤 너는 다른 말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내게 직접 물어라.”
나는 관찰 경로를 닫으라고 신호했다.
상대는 마지막으로 봉투 하나를 들어 보였다.
봉투에는 레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종 배송 예정일: 성검의 날.]
경로가 닫혔다.
***
여덟 번째 관찰창을 닫은 뒤 우리는 서로가 본 내용을 따로 적었다.
나는 가면 쓴 인물의 목소리와 손짓을 기록했다. 마렌은 탁자 위에 놓인 봉투의 숫자를 세었다. 로잘린은 벽의 문장을 기억해 적었고, 라기스는 관찰경로가 닫히는 속도를 측정했다.
네 사람의 기록은 일부 달랐다.
“저는 가면 아래의 눈을 보지 못했어요.”
마렌이 말했다.
“나는 눈이 아니라 가면의 옆면을 보았다.”
“그러면 그자가 정말 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표시한 뒤, 무엇이 겹치는지 비교했다. 가장 분명한 사실은 오르세라는 직책의 인장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여전히 문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자가 어느 시간에 살고 있는지조차 확정할 수는 없었다.
로잘린이 조용히 말했다.
“적이 전하의 미래를 말할 때마다, 전하께서 그 말에 맞추어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말을 확인할 때까지 일상을 지키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나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적국의 대신관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군.”
“저도 마왕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떠난 뒤 바르톨이 물었다.
“전하, 오르세가 실제로 성에 들어오면 죽이실 겁니까?”
“필요하면 막겠다. 그러나 먼저 누구인지 확인할 거다.”
“과거의 전하라면…….”
“목부터 베었겠지.”
바르톨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검집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너무 많은 대답을 잃었다. 이번에는 질문할 시간이 필요하다.”
말을 마쳤을 때 아이 방에서 작은 울음이 들렸다. 나는 기록실을 나와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 걸음이 전보다 빨랐다. 지금 내게 진짜로 급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나는 돌아와 레온을 품에 안았다.
아이의 머리에서는 막 목욕을 마친 비누 냄새가 났다. 레온은 내 옷깃을 잡더니 작은 손으로 내 턱을 만졌다.
“빠.”
“알고 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네가 자라서 어떤 길을 가든, 나는 그 길을 네 이름으로 누군가 미리 결정하게 두지 않을 거다.”
레온은 그런 거창한 선언에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였다.
대신 하품을 했다.
미아가 다가와 물었다.
“전하, 아이가 졸려요. 침대에 눕힐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먼저…….”
“먼저요?”
“푸른 곰을 찾아라. 그게 없으면 잠들지 않는다.”
미아가 웃었다.
마왕이 지켜야 할 세계는 지금도 의외로 작은 곳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첫 번째 문 앞의 임시 귀환 시험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다.
제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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