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생에서 가장 끔찍한 날은 레온에게 죽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끔찍한 날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책상에는 어제 마시다 만 차가 놓여 있었다. 시계는 평소처럼 움직였고, 창문 밖의 까마귀들도 제때 울었다.
문제는 달력이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하루가 없었다.
“바르톨.”
내가 부르자 놈이 달려왔다.
“어제 내가 무엇을 했지?”
“전하께서는 아이와 정원에서 놀고, 저녁에 전술 회의를 하셨습니다.”
“그건 그저께다.”
“그런가요?”
놈은 수첩을 뒤졌다.
마지막 기록 다음 장이 비어 있었다.
“종이를 뜯어 갔군.”
“아닙니다. 종이가 사라진 흔적이 없습니다. 하루 분량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붉은 별이 조금 더 커져 있었다.
***
마왕성의 모두가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성밖 농부들은 하루를 정상적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시장의 물시계와 신전의 모래시계도 날짜가 바뀐 흔적을 남겼다. 다만 성 안의 기록실과 육아실, 그 둘을 연결하는 회랑에서만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나는 먼저 미아를 찾았다.
“레온은?”
“안전합니다. 지금은 아침을 먹고 있어요.”
그녀가 아이를 보여 주었다.
레온은 어제보다 조금 큰 듯도 했고 아닌 듯도 했다. 이런 판단은 믿을 수 없었다. 아기는 하루만 지나도 옷이 작아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가 레온의 장난감 상자를 열었다.
푸른 곰 곁에 없던 물건이 들어 있었다.
작은 회중시계였다.
시계 뚜껑에는 일곱 개의 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걸 누가 가져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즉시 장난감을 다른 방으로 옮기게 했다. 시계가 위험한지 확인할 때까지 레온을 가까이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녀석은 곰을 가져가자 항의했다.
“아빠!”
“곰은 돌려준다. 시계만 잠시 조사하는 거다.”
나는 푸른 곰을 건넸다. 아이는 나를 노려보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 아들은 협상 능력이 비상하다.
***
라기스는 회중시계를 조사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전하, 이 시계는 실제 시간이 아니라 기록되는 시간을 재고 있어요.”
“무슨 차이지?”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지 않아도 바깥 세상은 흘러갑니다. 이 장치는 특정 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에서 빼놓을 수 있을 뿐, 실제로 그 하루를 없애지는 못해요.”
“그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관찰 경로가 끊긴 탓일 수 있습니다. 아직 다른 가능성도 살펴야 해요.”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하루를 없앴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살아간 하루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성의 모든 출입구와 식량 창고를 조사해라. 기록이 아니라 손에 남은 일부터 확인하자.”
미아는 부엌에 밀가루를 더 많이 쓴 흔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정원사들은 새로 심은 꽃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경비병들은 북쪽 계단에 낯선 발자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발자국은 작은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성인 한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
나는 북쪽 계단으로 갔다.
마른 흙이 발끝에 묻어 있었고 벽에는 작은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긁힌 자국은 일곱 개였다.
문 앞에서 바르톨이 말했다.
“전하, 어제 제가 이곳에서 누군가를 막아섰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돌아왔나?”
“아닙니다. 갑옷에 균열이 있습니다. 검을 막았을 때 생기는 자국이지요.”
나는 그의 팔을 살폈다.
금속 끝에 희미한 흰빛이 남아 있었다.
“신성 검기인가?”
“그렇게 보입니다. 다만 누구의 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이 왔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 성에 들어왔고 바르톨이 막았다는 흔적은 남았다.
나는 갑옷을 수거하게 했다. 정찰대를 내보내고 모든 출입로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사람을 무작정 붙잡거나 강제로 기억을 되찾게 하는 마법은 금했다.
“왜 그러십니까?”
바르톨이 물었다.
“누군가 우리의 기억을 훔쳤다면, 되찾겠다고 남은 기억까지 깨뜨릴 수는 없으니까.”
***
사라진 하루를 복원하려는 작업은 예상보다 고됐다.
부엌의 식량 소비량은 하루치가 더 있었고, 세탁실에서는 레온의 작은 옷이 한 벌 더 더러워져 있었다. 정원에서 새로 심은 꽃은 흙이 충분히 눌려 있었다. 누군가는 분명 흙을 파고 물을 주었다.
“그럼 하루가 실제로 지나긴 했군.”
“네. 외부 시계도 그렇게 말해요.”
마렌이 답했다.
“그렇다고 잊힌 하루를 전부 되살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증언이 없는 부분은 비워 둬야 해요.”
나는 남쪽 경비소의 외부 목격자를 불렀다. 그는 어제 마왕성이 조용했다고 말했다. 다만 새벽 무렵 성벽에서 흰빛이 한 번 번쩍였고, 멀리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오는 건 보았나?”
“못 봤습니다.”
“그럼 못 봤다고 기록한다.”
목격자는 어쩐지 안도한 표정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본 적 없는 적의 얼굴까지 떠올리라고 협박했을 것이다.
밤에는 미아가 레온의 작은 손에 묻은 녹색 물감을 발견했다. 정원에서 쓰는 안료였다.
“레온이 꽃을 그린 걸까요?”
“모르지. 그러나 놀이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단서일 수 있다.”
우리는 아이가 잊힌 하루 동안에도 평범한 놀이를 했을 가능성을 기록했다. 모든 흔적을 적의 공격으로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잠든 레온에게 말했다.
“하루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네가 보낸 그 하루의 가치를 잃은 건 아니다.”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녀석은 잠결에 내 손가락만 잡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손을 쥐며 다짐했다. 잊힌 부분을 거짓 기억으로 채워 넣지 않겠다고. 그것 또한 아이의 하루를 빼앗는 일이 될 테니까.
그날 밤 나는 마렌과 함께 회중시계의 뚜껑을 열었다.
시계 안쪽에는 작고 낡은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다.
[임시 집행관 방문 확인. 보호 대상 상태 점검 완료.]
[서명: 카르딘.]
나는 종이를 덮었다.
이번에도 내 이름이었다.
그러나 서명 아래에는 미세하게 다른 잉크 자국이 있었다. 앞서 보았던 스무 해 뒤의 서명과는 다른 흔적이었다.
“전하. 이건 글씨가 아니라 복제된 인장입니다.”
마렌이 말했다.
“원본의 이름을 찍어 내는 장치에 가까워요.”
“그럼 누군가 내 이름을 빌려 우리 성을 드나들었군.”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회중시계 안의 얇은 톱니를 살폈다. 일곱 문 사이에 하나 더 작은 구멍이 있었다.
여덟 번째.
하지만 문이라 부르기엔 너무 작았다. 열쇠구멍만 남겨 놓은 자국이었다.
“이건 뭐지?”
라기스가 숨을 들이켰다.
“귀환 경로가 아니라 관찰 경로입니다. 일곱 문을 감시하기 위해 따로 만들어 놓은 통로일 수 있어요.”
그럼 적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길을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조사하려고 열어 둔 관찰의 틈을 이용했을 것이다.
나는 시계를 닫았다.
“내일부터는 누구도 하나의 기록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사람의 증언과 사물의 흔적, 외부 시각을 반드시 따로 남겨라.”
그때 미아가 나를 불렀다.
“전하, 레온이 오늘 처음으로 새 말을 했어요.”
내 심장이 덜컥했다.
“무슨 말이지?”
“아빠 말고 ‘싫어’요.”
나는 한참 입을 다물었다.
“왜 하필 그 단어지?”
미아는 웃었다.
“오늘 아침 우유가 너무 뜨겁다고 하셨잖아요. 전하가 계속 ‘안 된다, 싫다’고 말씀하셔서요.”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적에게 하루를 빼앗겨도 아이는 자라고 있다.
그 사실이 안심되면서도 조금 무서웠다.
기억나지 않는 하루 동안 레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찾아내야 한다.
제7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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