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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72화
PAYLUA ORIGINAL · 제72화

72화. 성검이 멈춘 일곱 분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4,101자

오프라인 책장
죽은 날의 기억을 다시 본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예쁘게 포장해서 상영하려는 장치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수정판을 검은 천으로 감싼 채 기다렸다. 열람을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화면 가장자리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저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가?” “감응 현상일 수 있어요.” 라기스가 얇은 은판을 사이에 끼웠다. “하지만 감정에 직접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은 장면을 보여 주겠다는 장치일수록 조심해야 해요.” “나도 안다.” 나는 과거에 적국 왕에게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정작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성을 공격 중이었다. 약속은 문자 그대로 지켰다. 왕은 살았다. 그의 도시는 무너졌지만. 그때의 내가 바로 이런 종류의 장치를 좋아했다. *** 우리는 기록실 창문을 열고 네 개의 독립 시계를 설치했다. 하나는 마계의 일반 태엽시계, 하나는 시장 조합의 물시계, 하나는 신전의 모래시계, 마지막 하나는 바르톨이 직접 움직이는 종이었다. “왜 마지막은 나입니까?” 그가 물었다. “네가 스스로 멈출 수 있으니까.” “제가 시계보다 우수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시계보다 말이 많다는 뜻이다.” 바르톨은 기뻐했다. 역시 내 부하는 가끔 이해하기 어렵다. 시작 전에 모두가 철수 경로를 확인했다. 마렌은 바깥의 관찰실에 머물렀고, 로잘린은 열람 중지용 봉인을 들고 있었다. 나는 관측판 앞에 혼자 섰다. “언제라도 멈출 수 있죠?” 마렌이 물었다. “그럴 수 있어야 시작한다.” 나는 열람란을 눌렀다. 바람이 불었다. 무너진 마왕성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피, 먼지, 타 버린 돌. 익숙하면서도 몸이 저절로 경직되는 냄새였다. 기록 속의 나는 왕좌 앞에 서 있었다. 가슴에는 성검이 꽂혀 있었다. 레온이 입술을 달싹였다. “끝났습니다, 마왕.” 나는 영상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죽었다.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영상 바깥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렸다. [입회자 접근. 두 번째 승인 서명 대기.] “누가 말하는 거지?” 나는 돌아보았다. 대전의 부서진 기둥 뒤에 흰 문 하나가 있었다. 기억 속에는 없던 문이었다. *** 문 쪽으로 다가가자 시간이 느려졌다. 검에서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 흰 문 위에는 일곱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첫 번째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마지막에는 어린아이의 삐뚤어진 별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나를 부른 것이 누구냐?”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문 아래로 종이가 한 장 밀려 나왔다. [귀환 대상 전체에 대한 보호 입회 서명 요청.] [미서명 시, 현재 발생한 손실을 확정합니다.] 아아. 이제 알겠군. 저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여 준 뒤, 서명하지 않으면 죄인이 될 것처럼 문장을 꾸몄다. 선택지를 두 개만 남기는 오래된 방법이었다. 나는 웃었다. “이런 장난을 신탁이라고 부른 건가?” 문 뒤에서 낡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음성이 내게 말했다. [미래의 보호자가 되기를 거부하십니까?]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승낙을 기록하려면 서명하십시오.] “누구를, 어디로 돌려보낼지부터 알려라.” [수신 경로 일부 미확정.] “그럼 서명할 수 없지.” 기계음이 거칠어졌다. [열람 시각 종료 임박.] 나는 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이것이었다. 기록 속에서 죽어 가는 나의 몸은 문을 본 적이 없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입회자는 나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장면을 보는 나를 서명자로 취급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 순간 흰 문이 내 손바닥을 향해 종이를 밀어 올렸다. 나는 검을 들어 종이가 아니라 문과 나 사이의 바닥을 그었다. “동의하지 않는다.” *** “전하! 중단 신호입니다!” 바르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즉시 현실의 기록실로 돌아왔다. 땀이 등줄기를 적시고 있었다. 관측판은 스스로 꺼져 있었고, 네 개의 시계가 모두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중 두 개는 뒤로 움직인 흔적까지 남겼다. 마렌이 내 손목을 살폈다. “살아 계시네요.” “죽은 날을 보고 왔으니 죽어 있을 거라 생각했나?” “전하께서 웃으실 줄은 알았는데 농담부터 하실 줄은 몰랐죠.” 나는 지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화면 속 장면을 설명하자 로잘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성왕국의 옛 공증술에도 비슷한 방식이 있습니다. 계약서를 읽는 행위 자체를 ‘참여’로 바꾸는 저주가 있었죠. 오래전에 금지됐습니다.” “왜 금지했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명을 강요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이지 인간들은 나만큼이나 비열한 기술을 많이 발명했다. 라기스가 서명란을 다시 살폈다. 내 이름 아래에 작은 불규칙한 흔적이 생겨 있었다. [입회자 열람 감지. 서명 진행 실패.] 나는 안도하기보다 불쾌해졌다. 미래의 서명이라는 것이, 어쩌면 오늘 나를 유도하려고 미리 만들어 둔 빈 그릇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원본에 찍힌 이름은 증거가 아니다.” 마렌이 말했다. “적어도 현재 단계에서는 그렇습니다. 원본이 미래의 선택을 확정했다고 주장할 수 없어요.” *** 우리는 열람 장치가 남긴 흔적을 정리했다. 내가 보았던 흰 문은 다른 관찰자들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같은 장치를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장면을 보여 줬을 가능성이 있었다. 로잘린이 내게 물었다. “전하, 그 문에 손을 대셨습니까?” “아니. 서류가 내 손으로 올라올 때 바닥에 선을 그었다.” “그 순간 어떤 감각이 있었나요?” “자꾸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의 문을 열지 않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로잘린은 기록했다. “그 압박 자체가 장치의 기능일 수도 있겠어요. 결정을 미루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방식이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내가 누군가를 설득할 때 쓰던 방법과 놀랍도록 닮았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성이 무너진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가족이 죽는다. 그렇게 말하면 상대는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걸어왔다. “다음에는 누구도 혼자 이 장면을 보지 않는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열람을 거절해도 누군가 처벌받거나 손해 보지 않는지 반드시 확인하자.” 마렌은 그 조건을 공식 절차에 추가했다. 바르톨이 수첩을 펴고 중얼거렸다. “결정을 늦추는 것이 승리의 일부일 수도 있다…….” “뭐라고?” “전하께서 새로운 병법을 발견하신 듯해서요.” 나는 웃었다. “아마 그 병법은 오래전부터 있었을 거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저녁에는 레온을 안고 정원으로 나갔다. 놈은 내 손등에 손바닥을 얹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네가 스무 해 뒤에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구나.” “아빠.” “그래. 지금은 그 정도면 된다.” 레온이 내 손가락을 잡더니 검집을 두드렸다. “안 돼. 그건 장난감이 아니다.” 녀석이 실망했다. 나는 허리춤에서 나무로 만든 작은 칼을 꺼냈다. 날을 둥글게 깎아 놓은 장난감이었다. 그것을 건네려다 문득 생각했다. 왜 하필 칼을 준비했을까. 내가 아는 미래에서 이 아이는 칼을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쥐여 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나무 칼을 내려놓고 푸른 곰을 건넸다. 레온은 잠시 고민하더니 둘 다 바닥에 놓고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오래 웃었다. 그때 마렌에게서 보고가 왔다. “전하, 열람 중 장치가 측정한 시각이 이상합니다. 스무 해 뒤가 아니라 ‘스무 해 뒤의 장면을 본 지금’을 입회 시각으로 처리하려 했어요.” “역시 그렇군.”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외부에서 기록을 수정하려고 했습니다.” “세라크인가?” “모릅니다. 하지만 수정 요청에 서명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승인 관리자의 이름이 지워져 있어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직책만 남았습니다.” [미래 교정국. 임시 집행관.] 나는 레온을 품에 안았다. 기록위원회의 낡은 장부 뒤에 또 다른 관리자가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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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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