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답장을 쓰지 않았다.
황제가 화친을 제안하면 군대를 보냈고, 신이 경고하면 하늘을 향해 불꽃을 날렸다. 말보다 힘이 빠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답장을 기다린다.
시각시 첫 번째 문에서 들려온 이름, 엘다.
그리고 일곱 번째 문에 남겨진 루멜의 질문.
‘먼저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봐 주세요.’
두 문장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하, 식사가 식습니다.”
미아가 말했다.
“생각 중이다.”
“아침부터 세 번째로 그러시는군요.”
“중요한 일이니까.”
“레온의 아침도 중요해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레온이 작은 숟가락을 들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그릇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 몫의 호박죽을 거의 다 먹고도 내 그릇에 남은 것을 탐내는 중이었다.
“너는 이미 먹었잖느냐.”
“아빠!”
“그 말로 모든 요구를 통과시킬 수는 없다.”
미아가 웃었다.
결국 나는 죽을 조금 덜어 주었다. 네가 내 앞에서 이렇게 평범한 요구를 한다는 사실이 기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첫 번째 문에서 연락해 온 엘다의 상태는 아직 확인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대피소 안내원의 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을 높은 길로 인도하고 돌아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실제 과거인지, 장치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는 조사해야 했다.
우리는 먼저 기록을 대조했다.
세브는 사고 당시의 안내원 명단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델리아’라는 여자가 있었다. 실종 당일 마지막으로 높은 곳으로 이동하라고 외쳤다는 증언도 남아 있었다.
“엘다와 관계가 있을 수 있겠군.”
“예. 하지만 이름만 같다고 가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세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잊지 마라. 우리가 실수하기 가장 쉬운 지점이다.”
라기스는 엘다에게 문 밖의 지금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설명했다. 그동안 시장과 도시가 바뀌었고, 아무도 예전의 삶을 그대로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엘다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러더니 한마디를 물었다.
“밖에 비가 와요?”
“아니요. 오늘은 맑습니다.”
“그럼 저는 조금 더 있다가 나갈래요.”
우리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선택을 서류에 적었다.
***
루멜에게는 질문을 하나만 보냈다.
‘왜 돌아가면 안 되는지, 네가 설명하고 싶은 범위에서만 말해 줄 수 있겠니?’
수신인이 누구인지 검증하기 위한 확인 문장도 함께 보냈다. 세라크가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 가운데 공개된 적 없는 내용을 질문하는 대신, 에데가 직접 기억하는 신발의 수선 위치를 물었다. 한쪽의 기억만으로 사람을 확정하지 않도록 여러 증거를 나눴다.
그 답을 기다리는 동안 마왕성에는 별일이 다 일어났다.
바르톨은 아기 식탁 의자를 튼튼하게 만들겠다고 철갑을 덧대려 했고, 미아에게 들켜 전부 떼어 내야 했다. 레온은 처음으로 문턱을 혼자 넘으려다가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 손잡이를 붙잡고 결국 건너갔다.
나는 박수를 쳤다.
그 순간 미아가 나를 돌아봤다.
“전하,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너무 급하게 잡으려 하지 마세요. 안전한 곳에서는 스스로 일어나 보게 해도 돼요.”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렇다.”
“알아요. 그래도 전하가 모든 걸 대신할 수는 없잖아요.”
나는 손을 내렸다.
레온은 문턱을 건넌 뒤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창가에 놓인 푸른 곰에게 곧장 걸어갔다.
“정말 저 곰이 나보다 좋으냐.”
녀석은 대답 대신 곰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았다.
내게도 함께 놀자는 뜻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
나흘째 밤, 루멜에게 보낸 질문에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종이 한 장뿐이었다.
‘신발의 왼쪽 뒤축은 한 번, 오른쪽 안쪽은 두 번 꿰맸어요.’
에데가 확인했다.
“맞아요. 제가 오른쪽을 두 번 꿰맸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누군가 기록을 훔쳐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그 답은 적어도 에데의 기억과 맞아떨어졌다.
이어 두 번째 종이가 나왔다.
‘아저씨가 문을 한꺼번에 열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우리가 들어온 날, 모든 문이 같은 집으로 이어지려 했어요.’
‘어떤 아이는 집을 기억했고, 어떤 아이는 집을 잃었어요. 그래서 서로의 이름을 빌려 쓰지 않으면 문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나는 호흡을 멈췄다.
이름을 빌려 썼다.
그 말이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힌 경고와 연결됐다.
그녀는 계속 적었다.
‘제가 마지막 문을 닫았어요. 열어 두면 아직 주소를 찾지 못한 아이들이 엉뚱한 집으로 보내지니까요.’
‘아빠에게는 제가 살아 있다고만 말해 주세요. 제 이름으로 다른 아이를 끌어내지 말라고도 해 주세요.’
문장의 끝에는 작은 별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세라크의 옛 영상에서 보았던 태엽 문양과는 달랐다. 삐뚤빼뚤하고 모서리도 다섯 개가 아니라 여섯 개였다. 어린아이가 멋대로 그린 별이었다.
나는 편지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루멜이 직접 보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편지의 요구는 분명했다.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
이름을 바꿔 달아 억지로 귀환시키지 말 것.
***
나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 라기스에게 물었다.
“일곱 번째 문이 다른 문들과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있나?”
“문 사이의 공통 경로는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각각의 수신지가 어디인지 확인해야 해요.”
“루멜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뜻인가?”
“예전 장치에서는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브는 편지에 담긴 여러 아이의 이름을 찾는 일을 도맡겠다고 했다. 에데도 조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며칠씩 쉬면서 하라고 했다.
“왜 쉬라는 말씀부터 하십니까?”
세브가 물었다.
“피곤하면 누군가의 이름을 잘못 적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정말 큰일이겠네요.”
그날 우리는 작은 장부를 새로 만들었다. 첫 장에는 이름이 확인된 사람, 두 번째 장에는 이름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람, 세 번째 장에는 돌아올 의사를 물어본 사람을 따로 적었다.
기록위원회의 거대한 장부와 달리 이 장부의 빈칸은 잘못이 아니었다. 확인하지 못했다는 표시였다.
나는 장부 앞표지에 글을 하나 적었다.
‘빈칸을 영으로 채우지 말 것.’
마렌이 그 글을 보고 웃었다.
“전하,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규칙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아주 오랫동안 지켜야겠군.”
나는 세라크에게 편지를 전했다.
다만 루멜이 원하지 않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전달해 달라고 한 문장과 생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조사 상태만 알렸다.
그는 오래 침묵했다.
“살아 있단 말인가?”
“그렇게 주장하는 응답이 왔다. 에데의 기억과 일치하는 내용도 있었지. 하지만 아직 실제로 만나 확인한 건 아니다.”
“그럼 당장 문을 열어야…….”
그가 말을 멈췄다.
나는 기다렸다.
한참 뒤 세라크가 낮게 물었다.
“그 아이는 원하나?”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지금은 다른 아이들의 수신지를 먼저 찾으라고 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렇군.”
잠시 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난 그 애가 돌아오면 모든 일이 끝나는 줄 알았다.”
“아닐 수도 있지.”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그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그 아이가 기다려 달라고 하면, 기다릴 수 있겠나?”
세라크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날 밤, 나는 일기를 썼다.
‘돌아오는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과 열어도 된다는 사실은 다르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었다.
‘레온이 나중에 길을 떠나겠다고 하면, 나는 그 길의 문턱에서 손을 놓을 수 있을까?’
나는 펜을 멈췄다.
창밖에서는 붉은 별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세라크와 내가 다른 길을 걸으려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검이 아니다. 아이들이 대답할 시간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때 일기장 옆에 놓아 둔 미래의 편지 유리판이 혼자 빛났다.
은빛 글씨가 다시 정렬되었다.
이번에는 여러 조각이 뒤섞이지 않았다.
문장 하나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버지. 성검을 들었던 날, 제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그 아래에 아주 작은 문장이 덧붙었다.
[원본의 후반부는 미발송 상태.]
나는 숨을 고르고 유리판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기다려 주지.”
그 순간 다른 기록판에서 경보가 울렸다.
라기스의 긴급 통신이었다.
“전하! 첫 번째 복귀 승인서의 두 번째 서명란이 나타났습니다!”
“누구지?”
“이름은 카르딘입니다.”
내 손이 굳었다.
“뭐라고?”
“서명 시각이…… 지금보다 스무 해 뒤로 돼 있습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스무 해 뒤.
레온이 성검을 들었던 바로 그날.
내가 죽었다고 믿었던 그날이었다.
누군가 내가 아직 하지 않은 서명을, 수백 년 전의 과거에 남겨 두었다.
그리고 그 서명은, 오래전 루멜의 이름이 지워진 바로 그 문서 아래 붙어 있었다.
제7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