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종 수도원에서 돌아온 날, 마왕성은 하루 종일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수상했다.
대전에는 보통 병사들의 발소리와 보고를 기다리는 관리들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가 문 앞에서 발끝으로 걸었다. 회랑의 갑옷 장식에는 천을 씌웠고, 철문에는 기름을 발라 삐걱대는 소리를 없앴다.
“무슨 일이지?”
나는 바르톨에게 물었다.
그는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전하께서 어젯밤 내리신 '깨우지 마라' 작전 때문입니다.”
“그건 아이 방 주변에만 해당하는 명령이었다.”
“군사회의에서 전역 확대가 필요하다고 결의했습니다.”
“왜?”
“지난번 아이 울음으로 전하께서 성벽을 떠나신 것을 본 장군들이, 레온 님의 숙면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그날 오후 나는 비밀 회의의 의사록 첫 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기의 수면은 국경 방어와 별도 관리한다.'
바르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두 번째 문장을 적었다.
'필요시 상호 지원.'
이놈은 정말 훌륭한 장군이지만 육아에서는 지나치게 군사적이다.
***
나는 수도원에서 데려온 아이들을 위한 방을 마련하게 했다.
유진을 포함해 네 명이었다. 나이는 제각각이었고, 가장 어린 아이는 여덟 살이었다. 모두 손목에 은고리가 있었고, 누구도 큰 소리로 웃지 않았다.
엘라가 유진을 보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진……?”
소년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이름을 불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은 것처럼.
그러다가 엘라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눈이 커졌다.
“아…….”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달려가 노파에게 매달렸다.
엘라는 소년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나는 문가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수백 번의 승전식을 치렀지만, 누군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울어 본 적은 없다.
내가 돌아갈 집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엘라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고맙다고 해야겠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 말도 마왕답지는 않구먼.”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유진의 손목을 보았다. 은고리가 살을 파고들 만큼 조여 있었다.
“그걸 벗겨 줄 수 있겠느냐?”
소년이 겁에 질려 고개를 저었다.
엘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 저 사람은 네가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 그런 믿음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유진은 머뭇거리다가 손목을 내밀었다.
나는 은고리를 잘라 내지 않았다. 먼저 마법의 결을 살펴보고, 안쪽에 연결된 통증 술식을 풀었다. 고리가 힘없이 열려 바닥에 떨어졌다.
유진이 제 손목을 문질렀다.
그 뒤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
아이들이 처음으로 함께 식탁에 앉은 날,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미아는 죽을 큰 그릇에 담아 왔다. 따뜻한 빵도 준비했다. 네 아이는 처음에는 누구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먹어도 돼요.”
미아가 말했다.
가장 어린 여자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종이 울리기 전인데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미아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맞췄다.
“여기에서는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있어요. 기다리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아이는 여전히 믿지 못했다.
그때 유진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죽 한 입을 먹고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하나둘 손이 움직였다.
식당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빵을 조금 더 달라고 했고, 미아가 기쁘게 한 덩이를 더 놓아 주었다.
나는 문가에서 팔짱을 낀 채 보고 있었다.
“전하.”
바르톨이 속삭였다.
“신성 추적대의 식량 공급을 끊어 놓으면 앞으로도 이런 아이들이…….”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식량을 끊으면 아이들이 먼저 굶는다. 적의 일을 망치는 것과 아이들의 삶을 망치는 것을 구분해라.”
바르톨은 당황했지만 곧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들의 식탁을 잠시 더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위엄이 아니었다.
그릇을 비우고도 혼나지 않는 하루, 그리고 내일도 밥이 있다는 확신이었다.
밤이 되자 레온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평소보다 더 많이 뒤척였다. 간신히 눈을 감았다가도 갑자기 몸을 움츠리고 울었다. 미아가 안아도, 내가 흔들 의자를 밀어도 오래가지 못했다.
엘라가 아이를 살폈다.
“낮보다 열은 내려갔어. 그런데 잠드는 순간 어깨 문양이 약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나는 레온의 흉터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달이 은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잠든 순간에만.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 옆에 손을 가져갔다. 미세한 신성의 실이 하늘을 향해 뻗고 있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이레브.”
나는 수도원 문서에 있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천계 기록관.
그놈이 무엇을 꾸미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깨어 있는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다. 하지만 잠든 아이는 외부의 명령에 저항하기 어렵다.
그들은 레온이 자는 동안에도 명령을 심으려는 것이다.
나는 작은 결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결계가 완성되자 레온이 더 크게 울었다. 아이의 숨이 가빠졌다.
“멈추세요!”
미아가 외쳤다.
나는 즉시 마력을 거두었다.
“왜?”
“아기 몸은 가둬 놓는다고 편해지지 않아요. 불편하면 무서워하죠.”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공격을 막는 것과 잠을 지키는 것은 달랐다.
또다시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
새벽 무렵, 유진이 아이 방 앞에 나타났다.
엘라가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소년은 얇은 종이를 내밀었다.
'제가 도울 수 있어요.'
“무엇을?”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글을 썼다.
'우리가 어릴 때마다 들은 노래가 있어요. 울지 않게 하는 노래라고 했어요.'
나는 그 글을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수도원에서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들려주던 노래라니. 함부로 믿을 수 없었다.
유진이 다시 적었다.
'그 노래가 들리면 꿈속에서 종이 울렸어요. 그런데 저는 가사를 거꾸로 외워요. 그러면 소리가 멈췄어요.'
나는 소년을 보았다.
“왜 거꾸로 외웠지?”
그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썼다.
'할머니가 어릴 때 말했어요. 무서운 꿈을 꾸면 노래를 거꾸로 불러서 악몽을 놀려 주라고.'
엘라가 코끝을 문질렀다.
“어릴 때 장난삼아 가르친 말이었는데…….”
나는 유진의 손목을 다시 보았다.
말을 못 하게 만든 은고리. 꿈속의 종. 명령을 주입하는 자장가.
그 속에서 아이가 기억해 낸 건 할머니의 장난스러운 노래였다.
“좋아.”
나는 말했다.
“가르쳐 다오. 단, 내가 먼저 검증하겠다.”
유진은 빛의 판 위에 음계를 적었다. 소리를 낼 수 없으니 손가락으로 박자를 쳤다. 엘라가 그것을 보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놀랍게도 곡조는 평범했다.
나는 음의 순서를 뒤집어 마력의 파장으로 바꾸었다. 마법진에는 공격 명령도, 강제 수면 명령도 없었다. 다만 종의 일정한 반복을 무너뜨리는 불규칙한 간격이 생겼다.
“이건 결계를 깨는 방식이 아니군.”
“그럼 뭔데요?”
미아가 물었다.
“상대의 명령을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이다. 목소리는 남아 있지만 뜻이 사라지는 거지.”
나는 레온을 안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엘라가 가르쳐 준 가락을 낮게 흥얼거렸다.
내 목소리는 원래 노래에 어울리지 않았다. 전장에서 수천 명에게 명령을 내리도록 단련된 목소리였다.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있었지만 아이를 재우는 데 쓸 줄은 몰랐다.
첫 소절은 틀렸다.
둘째 소절에서는 바르톨이 문밖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전하. 적이 침입했습니까?”
“나가라.”
세 번째 소절에서 레온이 하품을 했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불렀다.
아이의 손이 내 옷깃을 놓았다.
어깨의 문양이 더 이상 깜빡이지 않았다.
“……잠들었군.”
미아가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한참 동안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마계의 검은 성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진 자장가였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의자에 앉아 잠깐 눈을 감았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미아가 의자 옆에 앉았다.
“전하, 이상한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나는 레온을 깨우지 않으려 고개만 끄덕였다.
“제가 어릴 때 우리 집이 참 가난했어요. 동생이 여섯이나 있었고, 겨울에는 장작도 모자랐죠. 그래서 저는 동생들한테 없는 장난감을 만들어 줬어요.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말려서 구슬처럼 쓰기도 했고요.”
“그렇게 가난했는데 웃을 일이 있었나?”
“있었죠. 누가 제일 못생긴 반죽 구슬을 만들었나 겨루기도 했거든요.”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미아는 웃었다.
“행복은 가진 물건 숫자로 정해지지 않아요. 누가 옆에 있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죠.”
나는 품속의 레온을 내려다봤다.
그 아이는 나를 죽일 운명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아이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넌 내가 이 아이를 끝까지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 입에서 불쑥 질문이 나왔다.
미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전하께서 혼자 다 하려고 하시면 어려울 거예요.”
“…….”
“하지만 사람들 얘기를 들으시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도 유진한테 노래를 배우셨잖아요.”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나는 제국을 다스렸고 군대를 지휘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배우는 일을 이렇게 어려워할 줄은 몰랐다.
그녀가 계속 말했다.
“실수하실 거예요. 그래도 다시 물어보고 고치시면 돼요. 육아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노래를 한 번 더 부르고 나자 레온의 숨이 일정해졌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불타는 왕좌.
부서진 검.
내 앞에 서 있는 레온.
미래의 그 청년이었다. 나는 죽어 가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성검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이전과 다른 말을 했다.
“당신은 또 저를 찾아냈군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이번에도 구해 주셨네요.”
“이번에도?”
그는 슬프게 웃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구하려고 할수록, 저들은 세상을 다시 씁니다.”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찢어졌다.
붉은 별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거대한 종소리가 땅 전체를 흔들었다. 나는 꿈속에서 손을 뻗었다.
“레온! 무슨 뜻이냐!”
청년은 대답하기 전에 사라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레온은 내 품에서 자고 있었다.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성검이 심장을 찌르던 순간의 냉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 품에는 레온이 있었다. 스무 해 뒤 나를 죽였던 청년이 지금은 손바닥으로 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꿈은 기록인가, 경고인가.
그리고 내가 보고 온 미래는 유일한 미래였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답을 내리려 할수록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때 레온이 몸을 뒤척였다.
“아…….”
나는 반사적으로 자장가의 첫 소절을 흥얼거렸다. 미아와 엘라가 알려 준 가락이었다.
아이는 잠깐 눈을 떴다가 이내 다시 감았다.
나는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어쩌면 모든 답을 오늘 알아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밤 아이가 잠들었고, 내일 다시 눈을 뜬다면 그 하루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이다.
그 생각을 마치자 조금 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내 손목에 희미한 은빛 문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기록 불일치.'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누군가 꿈을 통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레온은 스무 해 뒤의 미래를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방에 남아 유진이 적어 준 음계를 다시 펼쳤다.
어떤 음은 짧고 어떤 음은 길었다. 일반적인 자장가의 규칙이라면 틀린 소리였다. 하지만 그 불규칙함 덕분에 종의 마법은 아이에게 닿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자에게는, 한 사람의 엉뚱한 노래가 가장 성가신 저항일 수도 있었다.
나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품에 넣었다.
그날 새벽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신의 예언을 부수는 검만이 아니다.
이 아이가 악몽 없이 잠들 수 있는 밤을 계속 만드는 일이다.
그 일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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