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세라크가 내 성문을 두드렸다.
하늘에 거대한 눈동자를 띄우지도 않았고, 빛의 병사를 보내지도 않았다.
늙은 남자 하나가 낡은 외투를 걸친 채 성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어라, 카르딘.”
나는 성벽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초대받은 적 없는 손님이군.”
“루멜의 신발을 네가 갖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어디서 들었지?”
“그 아이와 연결된 기록이 움직이면 내가 알 수 있다.”
“감시하는 것이 자랑인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문은 열겠다. 하지만 무기를 내려놓고, 이 성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대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내가 거절하면?”
“돌아가면 된다.”
세라크는 나를 오래 바라보다가 외투 안에서 작은 수정구 하나를 꺼냈다. 바닥에 내려놓자 수정구가 스스로 금이 갔다.
“이 장치는 껐다.”
라기스가 내려가 확인했다. 여전히 어떤 능력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록 전송 신호는 없었다.
그제야 나는 성문을 열었다.
***
세라크를 대전에 들이지 않았다.
대신 성문 안쪽의 손님 응접실로 데려갔다. 군사 회의실이나 레온이 머무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공간이었다.
미아가 차를 가져오자 세라크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독을 넣지 않았나?”
“차에?”
“과거의 너라면 그랬을 텐데.”
“과거의 나는 그런 낭비를 싫어했다. 독은 비싸고 차는 더 비싸지.”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얼굴이 내게는 오히려 낯설었다.
나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루멜에 관해 확인된 사실부터 말해라.”
“무엇을 알고 싶지?”
“신발을 왜 보냈나. 그녀가 일곱 번째 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그리고 문을 여는 게 왜 위험한가.”
세라크는 손을 모았다.
“신발은 내가 보내지 않았다. 에데가 다시 밖으로 나오리라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럼 네 딸이 보냈겠군.”
“모른다.”
그가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아이가 아직 그곳에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
그는 아주 오래전 홍수 날의 일을 설명했다.
제2대피소로 향하는 다리는 예상보다 먼저 무너졌다. 세라크는 루멜을 안고 구조 회의실로 달려왔다. 시간 복귀 장치를 켰고, 사고 직전으로 돌아간 듯한 순간에 딸이 사라졌다.
그 부분은 우리가 본 영상과 같았다.
“네가 서명한 것도 보았다.”
내가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첫 번째 승인을 했다.”
“두 번째 서명은?”
그는 갑자기 손을 움켜쥐었다.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기록을 만드는 사람이 기록을 모르나?”
“그날 이후 원본의 일부가 봉인됐다. 내가 다시 열려고 할 때마다 다른 날짜의 서명만 나타났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적어도 그 이야기가 그에게 편안한 기억은 아니었다.
“왜 사람들의 이름을 영으로 바꾸었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 뒤의 일을 멈추지 않았지.”
그의 어깨가 굳었다.
“그건…….”
“네가 직접 지운 것이 아니라면, 누가 지우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넌 그 장치를 계속 사용했다.”
세라크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맞다.”
그 한마디를 듣는 데 수백 년이 걸린 셈이었다.
***
“루멜은 원래 무엇을 좋아했지?”
내가 묻자 세라크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런 것을 묻나?”
“네가 찾는 대상이 사람인지, 네가 되돌리고 싶은 기억인지 구분하고 싶다.”
그는 한참 생각했다.
“노란 실로 신발을 묶는 걸 좋아했다. 비 오는 날에는 물웅덩이를 일부러 밟았고. 작은 시계에 태엽을 감을 때는 꼭 손가락을 세 번 돌렸지.”
나는 책상 위의 신발 한 짝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노래를 잘했나?”
“끔찍하게 못했다.”
세라크가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음정을 하나도 맞추지 못했는데, 노래가 끝날 때까지 모두 듣고 있어야 한다고 우겼다.”
나는 웃을 뻔했다.
레온이 내가 부르는 자장가를 기가 막히게 따라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도 내 노래 실력은 훌륭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네 아이가 누구인지 아직 기억하는군.”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럼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 아이를 잊으라고 했지?”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차가 식어 가는 동안 세라크는 내가 보관한 신발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에데에게 먼저 확인했다. 신발의 소유권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에데는 보관 과정에 대한 증인이었다. 그녀는 신발을 직접 건네지 않는 조건으로 관찰을 허락했다.
유리 너머로 신발을 본 세라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뒤축은…….”
그가 손을 뻗다가 멈췄다.
“내가 고쳐 줬다. 루멜이 비 오는 날 웅덩이에 뛰어들다가 망가뜨렸지.”
“확실한가?”
“그날 바늘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실을 여러 번 엉키게 만들었어.”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이가 웃었지. 시계는 그렇게 잘 고치면서 신발은 왜 못 고치냐고.”
나는 미아가 내게 젖병 온도를 지적하던 일을 떠올렸다. 저 남자와 내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라크는 한참 뒤 물었다.
“그 아이가 신발을 돌려 달라고 했나?”
“아직 아니.”
“그럼 내가 가져가도…….”
“안 된다. 주인이 확인되면 그때 선택하도록 해야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딸의 신발인데.”
“그렇다면 딸이 돌아왔을 때 신을 수 있도록 남겨 두는 편이 낫겠군.”
세라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족이 남긴 물건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나도 알았다. 내 주머니에는 레온이 처음 물어뜯은 천 조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전쟁터에서 잃어버렸다면 성 하나를 뒤집어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물건을 내 뜻대로 가져올 권리까지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일단 사진처럼 모습을 남겨 두겠다.”
나는 말했다.
“네게도 한 장 보내지.”
세라크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의견을 나누었다.
세라크는 중앙 장치를 한번 크게 움직여 일곱 문을 동시에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루멜을 포함한 실종자들의 좌표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 어떤 위험이 있지?”
“서로의 귀환 주소가 뒤섞일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마력을 공급하면…….”
“안 된다.”
나는 말을 잘랐다.
그가 화를 내려 하기에 덧붙였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담보로 네 딸을 찾아 주진 않겠다. 내가 레온을 잃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 말을 아이를 실제로 잃지 않은 네가 할 수 있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옳은 지적이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잃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전부 안다고 말하지도 않겠다.”
나는 숨을 고른 뒤 말했다.
“하지만 고통이 다른 사람의 삶을 소유할 권리는 주지 않는다.”
세라크는 오래 침묵했다.
“그럼 네 방법은?”
“문 하나씩. 수신자에게 돌아오고 싶은지 먼저 묻는다. 그리고 복귀할 자리를 그 사람의 동의 아래 확인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세월이 다 갈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창밖을 보았다.
멀리 레온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세월이 가도 괜찮다. 누군가의 하루를 훔쳐서 빨리 끝낼 생각은 없다.”
***
세라크는 떠나기 전 자신의 낡은 장치에서 작은 금속 열쇠 하나를 떼어 내었다.
“일곱 번째 문의 배송을 정지할 수 있는 수동 장치다. 모든 문을 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받아 들지 않았다.
“왜 주지?”
“네가 틀렸을 때도 멈출 수 있도록.”
그는 쓰게 웃었다.
“옛날의 나는 그걸 만들지 않았다.”
나는 라기스에게 열쇠의 구조를 확인하게 했다. 일단 독립 보관하고 실제 기능을 시험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세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돌아보았다.
“카르딘. 네가 그 아이를 아들로 부르는 일이…… 그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길 바란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나도 매일 확인 중이다.”
그가 사라진 뒤, 라기스의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열쇠 안에는 단 하나의 명령만 남아 있었다.
[전면 개방 금지. 일곱 번째 문 단독 배달 허가.]
세라크는 딸을 구하고 싶어 하면서도, 모든 문을 열지는 말라고 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진심인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제6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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