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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56화
PAYLUA ORIGINAL · 제56화

56화. 기록관의 딸이 남긴 질문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4,049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적의 사정을 들으면 약해지는 사람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살았다. 인간 왕의 아들이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공격 일정을 바꾸지 않았고, 신관이 가족을 잃었다고 울어도 협상 조건을 고치지 않았다. 적에게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내 검을 내려놓으면 내가 패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라크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딸의 이름은 루멜이었다. 최초의 홍수 계산서에서 사라진 아이였다. “보호자 관계가 확실한가?”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 회의록의 원문과 시민 명부가 일치해요. 다만 혈연 관계는 기록마다 달라요. 몇 군데에는 아버지, 다른 곳에는 후견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그 아이를 돌보던 사람이라는 뜻이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나는 창밖을 보았다. 인간들과 마족들이 같은 시장에서 물자를 나르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풍경이었다. 그 가운데에도 분명 누군가의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딸도. *** 우리는 세라크의 옛 기록 보관함을 열기 위해 다시 시각시로 향했다. 라기스는 잠긴 금속상자를 앞에 두고 손을 모았다. “이건 제가 열어도 됩니까? 위원회의 허락 없이 열람한 적이 없습니다.” “이곳에 있는 내용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라면, 필요한 범위만 보자.” 마렌이 말했다. “재난 대응 회의와 관련된 문서부터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의 모든 약점을 파헤쳐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헨과 리오나의 기록이 원치 않는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면 나 역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좋다. 그 범위만 열어라.” 상자에는 낡은 종이와 약한 빛을 내는 유리편이 들어 있었다. 종이 첫머리는 손때로 번들거렸다. '구조 현장 재검토 보고서.' 나는 문장을 읽었다. '남단 다리 폐쇄 시 제2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길을 반드시 확인할 것. 연락이 닿지 않는 주민에게도 대피 안내를 계속할 것.' 서명은 세라크의 것이었다. “이상하군.” 나는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지우려 했던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그 말이 나를 오히려 더 화나게 했다. 옳은 기준을 알고도 버렸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 *** 유리편에는 작은 식탁이 비쳤다. 아이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젊은 세라크가 그 앞에서 시계를 고치고 있었다. 루멜은 양말 한쪽을 잃어버린 채 계속 질문했다. “아빠, 시계가 망가지면 어제도 없어져?” “아니. 시간을 잰다고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그런데 왜 맨날 시계만 보고 있어?” “시간을 잘 쓰려고 그러지.” “그럼 나랑 놀 시간도 써.” 젊은 세라크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곧 딸에게 작은 나무 태엽을 건넸다. “하나만 고르고 놀자.” “하나만?” “그래.” “그럼 시계는 그만 봐.” 그가 웃었다. 나 역시 저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레온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대답의 절반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지만. 아이가 빨간 공과 파란 곰을 동시에 요구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가 중단되곤 한다. 영상이 꺼지자 나는 오래 침묵했다. “전하.” 마렌이 불렀다. “그가 딸을 사랑했다는 사실과, 이후 다른 아이들을 강제로 묶었다는 사실은 따로 보아야 합니다.” “알고 있다.” 나는 유리편을 내려놓았다. “그게 더 어렵군.” *** 다음 문서는 홍수 당일의 수정 지시서였다. 최초 계산에서는 다리 하나를 폐쇄하는 대신 두 번째 대피로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발령문에는 두 번째 길의 존재가 빠져 있었다. 누가 삭제했는지 확인하는 칸은 마치 불에 그을린 듯 검었다. 세브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 서명 날짜와 같은 날 발송된 편지를 찾았습니다. 수신인은 루멜이에요.” 나는 봉투를 직접 열지 않았다.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누구에게 공개할지 결정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유가족이 확인되나?” “공식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이 편지를 공적 사고 조사에 이용할 수 있다는 표시가 남아 있습니다. 발신인의 서명이에요.” “그 범위에서 읽어라.” 편지에는 짧은 말이 적혀 있었다. '루멜. 다리 아래에서 기다리지 말고 높은 길로 올라가거라. 내가 늦더라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말아라.' 발신인은 세라크였다. 나는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한 아이를 살리려던 말이, 어떻게 세상을 통제하겠다는 명령으로 바뀌었을까. *** 우리는 상자의 마지막 기록을 열지 않기로 했다. 라기스가 고개를 들었다. “왜 멈추십니까? 전하께서 원한다면 나머지도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가족끼리 주고받은 편지와 치료 기록이 섞여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첫 번째 수정 승인 과정이지, 세라크의 모든 사생활이 아니야.” 나는 남은 문서의 목록만 기록했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행방을 찾는 데 필요한 자료가 있을 가능성은 열어 두었다. 그러나 궁금하다는 이유로 전부 열 수는 없었다. 세브가 말했다. “예전 회수관들은 남의 기억을 보관하는 것이 권한이라고 여겼습니다. 전하께서 멈추는 모습을 보고 저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칭찬할 필요 없다. 내가 비슷한 일을 해 왔으니까.” 라기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저도 위원회에서 그런 문서를 많이 읽었습니다.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허락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 자신에 관한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할 때,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라기스를 바라보았다. 적으로 만났던 회수관이 스스로의 기준을 바꿔 가는 모습은 묘하게 낯설었다. “그럼 오늘 필요한 자료는 여기까지다.” 나는 목록을 접었다. “세라크에게 딸이 있었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지운 채 그를 괴물이라고만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겠지.” 아르헨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구나.” 나는 웃었다. “삼백 년쯤.” 마왕성으로 돌아와 레온을 목욕시켰다. 정확히는 내가 씻긴다고 나섰다가 옷을 세 벌 적셨고 결국 미아가 마무리했다. 레온은 물을 튀기며 웃었고 바르톨은 천 바닥을 새로 깔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건의했다. “나중에 네가 세상을 구하러 간다 해도 목욕부터 하고 가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자 레온은 내 얼굴에 물을 뿌렸다. 미아가 수건을 내밀었다. “전하, 오늘은 화가 좀 풀리셨나요?” “내가 화난 걸 어찌 알았지?” “레온을 보고도 웃지 않으셨으니까요.” 나는 아이의 물기를 닦아 주었다. “세라크에게도 돌보던 아이가 있었다.” 미아는 놀라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 “그래서요?”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더 분명하게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죠.” 그녀는 물통을 치웠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람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어요.” 나는 수건 끝을 접었다. 레온이 수건을 잡아당겼다. “이 녀석은 오늘 내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모르겠지.” 미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몰라도 괜찮아요. 나중에 레온이 오늘 목욕이 즐거웠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되니까요.”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 대신 따뜻한 물의 온도나 안전하게 자신을 받쳐 주는 손길은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일은 말보다 먼저 손을 바꾸는 일일지도 모른다. 힘으로 붙잡던 손을 받쳐 주는 손으로. 그 말은 세라크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레온을 지킨다며 내가 저 아이의 삶을 대신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나 또한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그날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언제나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음 줄에는 더 짧게 적었다. '그러니 물어보자.' 밤늦게 마렌에게서 답신이 왔다. '루멜의 실종 시각과 첫 번째 미래 수정 승인 시각이 같습니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둘은 우연히 겹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아니라면, 세라크는 딸을 구하려고 처음으로 시간을 고쳤다가, 딸의 이름부터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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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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