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하는 일에는 일정표가 필요하다.
아침에는 과거의 다리 흔적을 조사하고, 낮에는 위원회 문서를 대조하고, 저녁에는 마왕성의 대피 계획을 점검한다. 마렌은 일을 세 칸으로 나누어 적었고 바르톨은 각 칸마다 병력과 식량을 배치했다.
문제는 내 아들이었다.
레온은 그날 오후에 잠을 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아!”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요람을 붙잡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아라.”
“아아아!”
“명령이 아니다. 부탁이다.”
“빠!”
부탁도 소용없었다.
미아가 내 뒤에서 말했다.
“전하, 아이는 피곤할 때 더 잠들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럼 피곤할수록 자면 되잖아.”
“그걸 모르니까 아기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세라크의 계산식을 해독하는 것보다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
나는 레온을 품에 안고 정원으로 나갔다.
검은 성벽 안쪽에 조그만 풀밭이 있었다. 예전에는 적국 사절에게 우리 마력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려고 독을 뿜는 꽃을 심었던 곳이다. 미아가 그 꽃을 전부 옮기고 대신 만져도 안전한 잎들을 심었다.
레온은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보고 웃었다.
“아!”
“그래. 저건 나무다. 네가 씹는 물건이 아니다.”
아이는 손을 뻗었다.
나는 잎을 한 장 따서 보여 주려다 미아에게 배운 말을 떠올렸다. 아이가 만질 물건은 깨끗하고 안전한지 확인해야 한다. 식물의 독성도 모르면서 아무거나 건넬 수는 없었다.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라.”
레온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왕인 아버지를 두고도 풀잎 하나를 마음대로 잡지 못하니 억울하겠군.”
나는 녀석을 흔들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한참 뒤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잠든 것이다.
나는 승리감에 젖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정원의 오래된 분수대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땡.
레온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분수대에는 종이 없었다.
***
마렌이 정원으로 달려왔다.
“전하. 외부 관측 신호가 들어왔어요.”
“창틀의 강제 연결은 차단했잖아.”
“그쪽은 막혔습니다. 이번에는 시각시의 옛 생활 기록을 통해서 들어와요. 낮잠 시각을 기록한 항목이 연결점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아기가 언제 자는지까지 빼앗겠다는 건가.
“그 기록을 삭제해라.”
말을 내뱉고 멈췄다.
기록을 함부로 없애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배웠다. 내 일기에 남은 레온의 시간과 위원회가 보관한 생활 기록이 연결돼 있다면, 무턱대고 태우는 순간 중요한 증거도 사라질 수 있었다.
“아니. 복사본을 보존하고 밖으로 나가는 길만 차단해라.”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 기록을 지킬 수 있도록 권한을 분리해 볼게요.”
나는 아이를 미아에게 넘겼다. 레온은 잠결에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깨지는 않았다.
“깨우지 마라.”
“전하도 큰 소리로 말씀하지 마세요.”
“……알겠다.”
***
관측실의 수정판에는 익숙한 문장이 나타났다.
[양육 대상 생활 반응 확인.]
[보호자의 행동 예측 정확도 향상.]
나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누가 내 행동을 예측하려는 거지?”
라기스가 조사해 둔 목록에는 예전 위원회가 보호자 행동을 분류한 항목들이 있었다. 아이가 울 때 몇 걸음 만에 달려오는가. 열이 날 때 누가 손을 잡는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 보호자가 어떤 문부터 닫는가.
“이건 정보를 수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렌이 말을 흐렸다.
“무엇이지?”
“보호자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계산하는 자료예요. 누군가 위협을 보내면 전하가 어디로 움직일지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세라크는 내가 레온을 사랑하게 된 사실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옛날의 나라면 약점을 없애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을 끊고, 아이를 멀리 보내고, 아무도 나를 협박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틀린 예측도 많겠군.”
“예?”
“오늘은 레온이 잘 안 자더라. 나는 분명히 낮잠을 재우려 했는데 녀석은 내 말을 거절했다.”
나는 웃었다.
“내가 명령한다고 아기가 꼭 자는 것도 아니고, 위험하면 미아와 바르톨이 나보다 먼저 움직이기도 하지. 보호자는 나 혼자가 아니야.”
마렌의 얼굴이 밝아졌다.
“관측 자료가 특정 인물의 반응에만 의존한다면, 서로 돌보는 관계까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겠네요.”
“그렇다고 일부러 속이려고 행동할 생각은 없다. 평소대로 살자. 다만 개인정보를 빼가는 구멍은 막아야지.”
***
마렌은 기록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의료진과 보호자가 알아야 하는 정보. 둘째는 안전 점검에 필요한 익명의 수치. 셋째는 누구에게도 공개할 이유가 없는 사소한 순간들.
나는 세 번째 분류를 읽다가 의아해졌다.
“사소한 순간이란 뭐지?”
“전하가 레온을 안고 졸았던 시간,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언제 처음 웃었는지 같은 기록이요.”
“그건 중요한 일기다.”
“그러니까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죠. 중요할수록 함부로 가져갈 수 없는 거예요.”
나는 한동안 그 말에 생각이 잠겼다.
예전에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모두 군사 자산이 되었다. 성 안의 장인, 병사의 재능, 포로의 출생지, 심지어 어린아이의 언어까지 기록했다. 그렇게 모아 둔 정보가 국가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보가 많다는 사실이 그것을 가질 권리까지 증명하지는 못했다.
“레온이 나중에 이 일기를 싫어하면 어쩌지?”
내 질문에 미아가 잠깐 놀랐다.
“그럼 공개하지 마셔야죠.”
“내가 쓴 일기인데도?”
“전하의 마음을 적으신 건 전하의 것이지만, 레온의 얼굴과 목소리는 레온의 것이잖아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서 무엇도 빼앗지 않겠다는 결심은 거창한 예언 앞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의 기록에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일기 표지에 작은 자물쇠를 달라고 부탁하자 바르톨이 기세 좋게 외쳤다.
“마왕성 최고의 철공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냥 작은 잠금장치면 된다.”
“전하의 비밀은 국보급입니다!”
“아니, 국보가 아니라 가족 일기다.”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더 조심하겠습니다.”
우리는 생활 기록을 모두의 눈앞에 펼치지 않기로 했다. 레온의 자세한 수면과 식사 시간은 미아와 의료 담당자만 관리하고, 안전 보고에는 필요한 변화만 익명으로 적었다.
어른들의 활동 기록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동의 없이 치료와 휴식 내역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 규칙이 생겼다.
바르톨은 이 규칙을 읽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어젯밤 세 번 깨어나셨다는 기록도 기밀입니까?”
“당연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코를 골아 한 번 깨우신 일은…….”
“그것도 말하지 마라!”
미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결국 같이 웃었다.
그날 밤 분수대의 종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관측실에는 새 경고가 남았다.
[외부 관찰 실패.]
[대체 관측 지점 탐색 중.]
나는 창문을 살폈다. 별빛이 어린아이의 침대에 닿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보는 하늘을 모두 가릴 생각도 없었다.
레온이 내 손가락을 잡았다.
“아빠.”
“그래, 여기 있다.”
나는 낮게 말했다.
“너의 낮잠은 그 누구의 계약서에도 적히지 않는다.”
그리고 마렌이 보내온 마지막 자료를 읽었다.
최초 회의실의 사라진 이름, 루멜.
그녀의 가족 관계란에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보호자: 세라크.'
나는 오래도록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미래를 조종하려던 기록관 역시 누군가의 보호자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제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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