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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53화
PAYLUA ORIGINAL · 제53화

53화. 예언에는 지워진 칸이 있다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4,111자

오프라인 책장
미래를 읽는 법에 대해서라면 나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한 번 죽어 보았으니까. 정확히는 내게 불리한 미래 하나만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는 전문가다. 레온의 성검이 내 심장을 꿰뚫던 날, 나는 그 장면이 모든 가능성의 끝이라고 믿었다. 두 번째 삶을 얻고서도 그 믿음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각시의 새 문 뒤에는 미래가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 쌓여 있었다. “이게 전부 가능한 결말인가?” 마렌이 수정판을 살피며 대답했다. “가능한 경로를 묶어 둔 기록 같습니다. 다만 어떤 계산 방법으로 만들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어요. 실제 있었던 미래라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나는 기분 나쁘게 정돈된 서랍들을 내려다보았다. 서랍마다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레온.'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많은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불쾌했다. *** 첫 번째 서랍에는 내가 아는 장면이 있었다. 무너지는 왕좌, 불타는 성벽, 성검을 든 청년.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만졌다. 이미 사라진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듯했다. “동일한 기록인가?” “일부는 같습니다. 그러나 작은 차이가 있어요.” 마렌이 영상을 멈췄다. 내 뒤편의 창문 밖에 한 명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미래의 전장에서 내가 기억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열린 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 아이는 누구지?” “기록상 이름이 없습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장부에서 지운 사람이 또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서랍에서는 레온이 성검을 들지 않았다. 대신 성왕국의 커다란 회의장에 서서,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퇴장했다. 사람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다. 세 번째 서랍에서는 내가 레온을 처음 발견한 날, 숲길을 지나쳐 버렸다. 아기는 찬비 속에서 울고 있었고 다른 사람이 수레를 향해 다가갔다. 얼굴은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랍을 닫았다. “그만.” 마렌이 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니. 기분이 몹시 나쁘다.” 나는 숨을 골랐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나지 않는 미래까지 보여 주는군.” “영상이 전부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지. 누군가 이걸 사실처럼 보여 주며 내 선택을 유도할 수 있으니까.” *** 라기스는 서랍의 잠금장치를 조사했다. “예전 위원회에서는 이것을 '최적 분기'라고 불렀습니다.” “최적이라는 말은 누가 정했지?” “기록관이 제시한 기준을 따랐습니다. 사건이 몇 번 발생했는지, 왕국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군사적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아이들이 얼마나 잘 잤는지는?” 라기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과거에는 국가의 성벽과 병력 수를 세면서 국민들이 저녁을 먹었는지 묻지 않았다. “기준을 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자.” 세브가 오래된 계산서를 가져왔다. 서랍의 가장 오래된 판본에는 네 가지 항목만 있었는데, 수백 년이 지나며 항목이 바뀌었다. 사람의 이동 자유, 가족과 다시 만날 가능성, 구조 거부의 권리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대신 봉인의 안정도만 붉게 강조되어 있었다. 마렌이 말했다. “최적이라는 말은 수학적인 것 같지만 어떤 값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누가 선택한 셈이에요.” “그러니 세라크가 내민 답을 세계의 답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군.” 나는 계산서 한쪽에 내 손으로 문장을 적었다. '평가 기준 자체가 검토 대상.' *** 서랍 사이에는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공개되지 않은 가정.' 마렌은 들어가기 전에 장치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리가 문을 여는 행위만으로 기록이 갱신되는지부터 살폈다. 이상 신호가 보이지 않자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갔다. 그곳에는 전쟁도 성검도 없었다. 어른이 된 레온이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은빛 눈을 가졌지만 갑옷 대신 낡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교사로 사는 경우도 있는 건가?” 내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마렌은 장면 아래 적힌 숫자를 가리켰다. '계산 제외: 영웅 탄생 실패.' 나는 그 글자를 몇 번 읽었다. “왜 실패지?” “위원회가 구원자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이 사람이 불행하거나 세계가 위험하다는 증거는 여기 없습니다.” 영상 속 레온은 아이의 삐뚤어진 글씨를 보고 웃었다. 누군가 글자 하나를 틀리게 쓰자 화내지 않고 다시 적어 보라고 했다. 나는 한참 그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는 용사가 되지 못한 레온을 상상한 적조차 없었다. 내가 아는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나를 쓰러뜨린 청년이었으니까.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일을 하며 살지는 전쟁 장부로 정할 수 없었다. “이것도 조작일 수 있다.” 나는 겨우 말했다. “맞아요.” 마렌이 동의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웃고 계시네요.” 나는 무표정해지려고 애썼다. “잠깐 근육이 움직였을 뿐이다.” 마렌은 웃었다. 나는 그 광경을 사진처럼 가슴에 담았다. 가상의 장면일지라도, 아이에게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는 질문만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에는 붉은 별의 내부 구조도가 있었다. 나는 별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조도에는 그것이 하나의 천체가 아니라 수많은 서랍을 연결하는 관측 저장고로 표시되어 있었다. “저 하늘에 떠 있는 것은 기록실이라고?” “표기상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 형태는 확인할 수 없어요. 과거 기록을 쌓아 둔 외부 장치일 수도 있고, 먼 거리에 비친 투영일 수도 있습니다.” 마렌은 손가락으로 선 하나를 따라갔다. “여기 보세요. 붉은 별이 밝아지는 시점과 특정 기록이 자동으로 갱신되는 시점이 겹칩니다.” “레온을 감시하며 답안을 고치는 곳이라는 뜻인가?”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입술을 말아 올렸다. “내 아들이 시험지라도 된단 말이군.” 내 말에 세이라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모든 가능성을 없앨 순 없겠죠.” “그래. 없애는 대신 저곳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감추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하늘의 별을 노려보았다. 산 하나쯤 베어 버리면 해결되는 싸움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전문 분야였을 텐데. *** 마왕성으로 돌아온 저녁, 레온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미아가 곁에 앉아 붉은 공과 푸른 곰을 번갈아 보여 주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것을 고를까?” 아이는 공을 잡았다가 놓고 곰을 안았다가 다시 던졌다. 결국 둘 다 관심을 잃고 내 망토 끝을 잡아당겼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드느냐?” “아빠.” 미아가 웃었다. “정해진 답이 없네요.” 나는 손안에 쥐고 있던 기록판을 내려놓았다. 오늘 서랍에서 본 수많은 미래를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중 하나를 골라 확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공도 골라 보고, 곰도 안아 보고, 원하면 둘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레온은 갑자기 망토를 입에 넣으려 했다. “그건 안 된다.” 나는 재빨리 뺏었다가 멈칫했다. 선택을 존중한다고 모든 행동을 그냥 두는 것은 아니지. 위험한 물건은 막아야 한다. 대신 다른 것을 쥐여 주면 된다. 나는 깨끗한 치발기를 건넸다. 레온은 그것을 물고 만족한 얼굴을 했다. “이런 건 책에도 나오지 않던가?” 미아가 물었다. “책에 적혀 있다고 직접 해 보기 쉬운 건 아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수정판에서 마지막 서랍의 제목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레온이 마왕을 죽이지 않는 경우: 기록 미완.' 서랍 맨 아래에 검게 긁힌 흔적이 있었다. 다른 미래들의 계산은 종료 시각이 기록돼 있었으나, 이 칸은 종료 기준도 없었다. “마렌. 이게 무슨 뜻이냐?” “이 경로에서는 아직 결과를 하나로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일 수 있어요. 계산이 실패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나는 계산이 끝나지 않은 일을 무능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가 커서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어떤 일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반드시 위험을 뜻하지는 않는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부를 붉게 칠해 놓은 누군가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보았다. 미완이라. 처음으로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아직 쓰지 않은 날들이 남았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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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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