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을 부수지 않고 열쇠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수백 년 동안 내게 잠긴 문이란 벽보다 조금 얇은 장애물이었다. 부하들은 경첩을 살피기도 전에 내 손부터 말리곤 했다. 그러니 시각시에서 새로운 문이 나타났다는 아르헨의 연락을 받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육아 일기장을 덮고 펜을 꽂는 일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웠다.
“내일 아침에 가지.”
통신석 너머의 아르헨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로 오지 않을 거니?”
“레온이 방금 잠들었다. 그리고 마렌은 지난 사흘 동안 두 시간씩밖에 못 잤지. 내일 아침에 시작해도 문이 사라지지 않는지 먼저 확인해 줘.”
“……알았어.”
그녀가 낮게 웃었다.
“어릴 때 넌 문이 닫혀 있으면 밤새 발로 찼는데.”
“그때는 곁에서 나를 재울 사람이 있었겠지.”
나는 대답한 뒤 한동안 조용해졌다. 내 말을 들은 아르헨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레온은 두 번 깼고 나는 세 번 일어났다. 나머지 한 번은 레온이 아니라 바르톨이 요람 옆에서 코를 골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등을 발로 차는 대신 담요를 덮어 주었다. 망할, 마왕으로서 품위가 자꾸 떨어지고 있다.
***
아침이 되어 마렌이 가져온 것은 문 사진이 아니라 관측 기록이었다.
첫 번째 시계의 바늘이 움직인 뒤 시각시 북쪽 통로에 새로운 문이 생겼다. 문은 육안으로 볼 수 있으나, 그림자가 없었다. 바깥쪽 손잡이는 녹슨 쇠였고 안쪽에는 자물쇠 대신 문장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고친 미래의 원본.'
“그 문이 과거로 이어진다는 뜻인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시각시에는 기록을 현실처럼 재현하는 방이 있어요. 진짜 과거로 들어가면 원인과 결과가 바뀔 위험이 큽니다. 먼저 관찰만 해야 합니다.”
“미래를 한 번 바꿨다는 놈이 과거를 또 바꾸게 되면 복잡하겠군.”
마렌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전하께서 그런 걱정을 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칭찬인지 모욕인지 구분이 안 된다.”
“둘 다입니다.”
나는 웃으며 서류를 받았다. 조사 규칙은 간단했다. 관찰자 두 명 이상, 독립된 시각 기록, 감각 이상 발생 시 즉시 철수. 사람의 기억과 장치가 보여 주는 영상을 구분해 적을 것. 아르헨이 동의한 범위 외에는 봉인을 건드리지 않을 것.
나는 마지막 줄에 내 이름을 적었다. 예전에는 내 서명이 타인의 운명을 결정했다. 오늘은 내가 하지 않을 일을 기록하기 위한 서명이었다.
***
시각시로 가는 길에는 아직 새벽 안개가 남아 있었다. 전처럼 도시 전체가 멈춰 있지는 않았다. 길모퉁이의 물방울이 한 번씩 떨어졌고, 돌계단 아래에서는 이름을 되찾은 사람들이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자기 시계를 맞출 수 있었다.
북쪽 통로에는 아르헨과 세이라, 회수관 라기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기스의 옷깃에는 예전의 위원회 인장 대신 스스로 쓴 이름이 실로 꿰매져 있었다.
“들어가기에 앞서 경고하겠습니다.”
라기스가 말했다.
“저는 이 방의 내용을 모릅니다. 위원회에서 일했어도 모든 원본을 볼 권한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도 증인이지, 안내자는 아니군.”
그는 기묘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렇게 불러도 됩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아르헨은 내 얼굴을 오래 살폈다.
“걱정되니?”
“걱정이 아니라 계산이다. 잘못된 기록에 속아 다시 누군가를 해칠 수 있으니.”
“그걸 걱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문을 열기 전에 마렌이 작은 기록판을 내밀었다. 그 위에는 마왕성 놀이방의 지금 모습이 비쳤다. 미아가 레온의 아침죽을 식히고 있었고 바르톨은 숟가락을 든 채 전술 지도를 보는 표정이었다.
“왜 이걸 보여 주지?”
“돌아갈 이유를 분명히 하려고요.”
나는 기록판을 주머니에 넣었다. 시각시에는 돌아갈 이유를 잊게 하는 방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
문 너머는 전쟁터가 아니었다.
햇볕이 드는 작은 회의실. 책상 일곱 개. 차가 식어 가는 컵들. 바깥 정원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벽에는 지금의 붉은 별과 닮은 표식도, 시계의 거대한 바늘도 없었다.
한 여자가 탁자 끝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재현인데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뚜렷했다.
그녀가 말했다.
“내일 강물이 마을을 덮을 가능성이 열에 여덟이래요. 경보를 내려야 해요.”
맞은편 남자가 대답했다.
“경보를 내리면 주민들이 다리를 한꺼번에 건너다 더 많이 다칠 수도 있소.”
“그럼 대피로를 두 개 더 마련하면 되잖아요.”
어떤 노인이 지도를 펼쳤다. 흰 머리. 잿빛 눈동자. 젊어 보이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세라크였다.
“내가 계산한 경로는 하나뿐이오.”
그는 말했다.
“다리 하나를 폐쇄하고 시장 쪽으로만 사람들을 보내면 사망자를 가장 많이 줄일 수 있소.”
장면이 끊기자 마렌이 기록판을 확인했다.
“이건 첫 번째 수정 직전의 회의입니다. 날짜는 무명탑의 기록이 시작되기보다 더 오래전이에요.”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전쟁을 시작하려는 군단이 아니었다. 무너질 다리와 강물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 누군가가 미래를 고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거대한 주문이나 신의 뜻을 상상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리 하나를 어느 쪽으로 건널지 결정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다음 장면을 보자.”
세라크가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을 올렸다.
'침수 지역 남단 다리 폐쇄. 사망 예상 인원: 0.'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는 사망자를 줄인다고 했는데, 어느새 숫자가 영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 방의 사소한 물건들을 다시 살폈다.
식탁 위의 차는 반쯤 식어 있었고 문가에는 젖은 외투 여럿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는 밤새 자료를 모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을 지우려고 모인 이들이라면 저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회의실 한쪽에 앉은 젊은 기록원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남쪽 부두에서 열세 명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숫자도 계산에 넣어야 하지 않나요?”
“그들의 위치가 불확실해.”
세라크가 답했다.
“확인된 위험을 먼저 계산하겠소.”
“그럼 확인이 안 된 사람은요?”
“다른 항목에 남겨 두시오.”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계산하지 말자는 명령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항목'을 만들었고, 그 항목이 나중에 어디론가 사라진 것일 수 있었다.
“마렌, 저 젊은 기록원의 이름이 보이나?”
“안 보입니다. 영상 가장자리가 손상됐어요.”
“그럼 그가 질문했다는 사실부터 적어 두자.”
마렌이 기록판에 문장을 넣었다.
'미확인 주민의 포함 여부에 대한 이의 제기 존재.'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낯선 감정을 느꼈다. 오래전 내 궁정에서 누군가가 같은 질문을 했다면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회의를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저 질문 덕분에 우리가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 아래 아주 작은 글자가 따라붙었다.
'관측되지 않은 인원은 계산에서 제외한다.'
서랍 아래에서 가느다란 종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회의실을 재현한 빛이 종이와 겹치더니 다른 날짜가 적힌 수정 이력표가 나타났다.
'원본 항목: 구조 대기 13명.'
'수정 항목: 확인된 사망자 0명.'
둘은 다른 말이었다. 사망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주장은 같지 않다. 그러나 계산서는 두 문장을 같은 의미처럼 바꾸어 놓았다.
마렌이 표를 한 번 확대했다.
“승인자 이름이 빈칸입니다. 이 문서만으로 세라크가 직접 고쳤다고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고친 손을 찾아야지.”
나는 수정 이력표를 복사해 기록판에 남겼다. 그때 벽 너머에서 홍수의 굉음이 들렸다. 관측실의 감각 재현이었지만 순간 정말 물이 밀려오는 듯했다.
나는 주머니 속 기록판을 움켜쥐었다. 화면에는 마왕성의 아침 모습이 아직 남아 있었다. 레온이 미아에게 숟가락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손을 휘젓고 있었다.
내가 돌아갈 곳은 저기다. 그래서 이 기록을 거짓 결론으로 덮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문장 앞에 멈췄다.
“마렌. 저건 누가 썼지?”
“기록에는 수정자가 비어 있어요.”
일곱 개 책상 가운데 가장 작은 책상에 컵 하나가 있었다. 컵 옆에는 아이가 그린 별 모양 낙서와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루멜.'
기록판이 불규칙하게 떨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저씨, 저는 왜 숫자에 없어요?”
그 순간 처음으로 이해했다.
기록위원회가 감춘 첫 번째 거짓말은 예언이 아니었다.
아직 구하지 못한 사람을,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으로 적은 것이었다.
제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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