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안 됩니다'였다.
영주가 못 한다고 하면 다른 영주를 보냈다. 군단장이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에게 시간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마왕국은 그렇게 삼백 년 동안 움직였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내 앞에서 말했다.
“저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마왕성 서쪽 마당에는 작은 탁자가 열 줄로 늘어서 있었다. 주민들은 사흘 뒤 발동할 회수령에 대응하기 위한 설명회를 듣고 있었다. 마렌은 기록위원회가 무엇을 회수하려는지, 우리가 그 명령에 왜 반대하는지, 자발적 시간 분담 시험에는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차례로 설명했다.
말을 한 사람은 제빵사였다. 얼굴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왜지?”
내가 묻자 남자가 순간 굳었다.
내 질문이 너무 날카로웠던 모양이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대답할 의무는 없다. 그저…… 다른 의견도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가게를 지켜야 합니다. 아이 셋도 있고요. 혹시 그 장치 때문에 제가 시간을 잃으면, 빵은 누가 굽습니까?”
“그럴 수 있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주변이 술렁거렸다.
마왕 앞에서 명령을 거절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세상에. 내 백성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제야 알겠다.
***
참여를 거절하는 사람은 그 제빵사뿐이 아니었다.
돌봄 일을 하는 여자, 오래전에 시간 기억을 한 번 잃었던 광부, 그리고 제 아버지를 혼자 간호하는 병사가 잇달아 일어났다.
몇몇 장교는 표정을 찌푸렸다.
“전하, 비상사태입니다. 총동원령을 내리시면…….”
“안 된다.”
내가 말을 끊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준비 인원이 부족합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자.”
장교는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답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사람을 설득하느니 부대를 움직이는 편이 쉽다. 그러나 쉽다는 이유로 나쁜 수단을 다시 쓰면, 우리가 세라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탁자 위에 지도 하나를 펼쳤다.
“시간 분담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할 일이 있느냐?”
미아가 즉시 손을 들었다.
“대피 장소를 정리하고, 병약한 분들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요.”
바르톨도 말했다.
“저는 대피 행렬을 안전한 길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업무는 별도의 장치 없이도 가능합니다.”
제빵사가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럼 저는 빵을 구워도 됩니까?”
나는 웃었다.
“부디. 오늘 아침에 먹은 그 빵이라면 더욱 좋겠군.”
남자도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돕지 않아도 한 가지 일을 함께할 수 있었다.
***
그러나 그 결정이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설명회장 한쪽에서 젊은 관리가 제빵사를 손가락질했다.
“전하가 직접 나섰는데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이런 비상시에 자기 가게 걱정만 하다니.”
제빵사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로 걸어갔다.
“자네 이름이 무엇이지?”
젊은 관리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그린이라고 합니다, 전하. 충성을 다하기 위해…….”
“그렇다면 먼저 내가 설명한 규칙부터 지켜라.”
그린은 고개를 들었다.
“거절한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모두가 힘을 모아야…….”
“힘을 모으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저 사람은 빵을 굽겠다고 했다. 자네는 무슨 일을 하겠나?”
그는 한참 고민했다.
“참가자들의 건강 상태를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도 동의를 받고 해야 한다. 자네가 할 수 있다면 배워라.”
그린은 제빵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곧장 화해한 것은 아니다. 제빵사는 여전히 기분이 상한 얼굴이었다. 나도 관리의 태도가 하루 만에 바뀌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 설명회에서 누가 거절하든 그 사실을 큰소리로 흉보지 않도록 규칙을 붙였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그 규칙을 지키기로 했다.
***
설명회가 끝난 뒤 나는 왕실 기록관의 옛 창고로 갔다.
그곳에서는 마렌이 회수령 원본과 변경된 문서의 차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로잘린이 보낸 성왕국 신전 기록도 도착했다. 종이마다 다른 인장과 날짜가 찍혀 있었다.
“전하, 세라크는 삼 일 뒤 마왕성만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알고 있다.”
“문제는 회수 대상이에요. 시간이 담보로 묶인 사람뿐 아니라 그 사실을 증언한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자료를 읽었다.
'관련 정보를 접촉한 자의 기억 정리.'
“기억 정리라.”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뜻일 수 있어요.”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칼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누가 사라졌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나는 그런 방식의 잔혹함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럼 기록을 성 밖에도 남기자.”
“어디에요?”
“서로 독립적인 장소에. 회색다리 시장, 북부 구호소, 성왕국 신전. 보관 책임자가 동의한 곳에만.”
세브가 손을 들었다.
“수취인 동의가 있는 기록만 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맞다. 이름을 지키겠다고 남의 비밀을 퍼뜨릴 수는 없다.”
***
그날 오후, 유진이 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아저씨. 저는 시험에 참여해도 돼요?'
나는 종이를 읽고 멈췄다.
유진은 어린 소년이었다. 부모와 함께 살던 시간 일부를 빼앗겼고, 친구 다렌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 된다.”
내 말에 유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얼른 덧붙였다.
“네가 못해서가 아니다. 이번 장치는 아직 위험하고, 아이에게 그런 위험을 맡길 이유가 없다.”
소년이 새 문장을 적었다.
'하지만 다렌을 찾고 싶어요.'
“나도 그렇다.”
나는 아이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 네가 기억하는 다렌 이야기를 적어 줄래? 비 오는 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왔다는 기록 외에도, 네가 아는 것이 있을 테니까.”
유진은 오래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다렌이 늘 왼발 신발 끈부터 묶었다는 사실을 적었다. 세브는 그 기록을 다렌의 어머니에게 전달하기 전에 보여 줄지 물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년의 작은 글씨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
저녁 무렵 회수관 두 명이 마왕성 정문에 도착했다.
둘 다 얼굴을 가린 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호자 카르딘. 긴급 회수령에 협조하십시오.”
나는 성문 위로 올라갔다.
“무엇을 회수하겠다는 거냐?”
“정해진 미래에 방해가 되는 모든 기록과 관련 인원.”
“사람을 물건처럼 부르지 마라.”
회수관 하나가 장부를 펼쳤다.
“불응 시 기록상 생존 권한을 중지합니다.”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뒤의 병사들이 숨을 삼켰다. 내가 상대를 베는 장면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끝은 땅을 가리켰다.
“성문 앞에는 민간인이 있다. 먼저 이들에게 길을 내어 주게.”
바르톨이 곧장 대피 통로를 열었다.
회수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공격하지 않는가?”
그들이 물었다.
“공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보여 준 것은 협박이지 공격의 근거가 아니다. 여기서 끝내고 돌아가면 싸울 이유도 없다.”
그들은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 장부에서 붉은 빛이 뻗어 나왔다.
[협의 불가. 강제 절차 전환.]
나는 검을 들어 빛을 쳐냈다. 칼날이 성벽을 타고 흐르던 붉은 줄을 잘랐다. 그러나 빛이 닿은 돌에는 사람의 이름을 지우는 문양이 남았다.
“마렌! 이 문양을 기록해라. 공격이 시작됐다.”
회수관들은 후퇴했다.
나는 쫓지 않았다.
성문 아래에서 제빵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피란민이 먹을 빵을 미리 구워 놓았습니다.”
그가 말하자 나는 웃었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의 거절을 지켰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내일을 지키고 있었다.
세라크의 장부에는 아마 이런 결과를 계산하는 칸이 없을 것이다.
제4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