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왕국의 신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를 말하라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내 목에 현상금을 건 자, 내 백성의 집을 불태운 자, 내 이름을 듣고도 '악'이라는 한 글자로 대답한 자들이 모두 그들 가운데 있었다.
그래서 대신관 로잘린이 마왕성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시오. 망토를 벗으시오. 성문에서 도망치기 어렵도록.”
미아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전하.”
나는 한숨을 쉬었다.
“농담이다.”
로잘린은 미소 짓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흰 천 꾸러미를 탁자에 올렸다.
“빈 식기 네 개입니다.”
“나와 협상을 하러 와서 그릇을 가져왔나?”
“함께 먹는 동안에는 적어도 한쪽이 칼을 들기 어렵다고 배웠습니다.”
“나는 한 손으로도 칼을 잘 쓰는데.”
“그럼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제야 웃었다.
성왕국에는 아직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
우리는 무기를 회의실 밖에 두었다. 로잘린에게는 두 명의 수행원이 있었고, 내 쪽에는 마렌과 세브가 앉았다. 바르톨은 조금 떨어진 놀이방에서 레온을 돌봤다.
식탁에는 미아가 끓인 뿌리 수프가 놓였다.
로잘린은 먼저 한 숟가락을 먹었다.
“독이 들어 있지 않군요.”
“그걸 확인하려면 독을 먹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신관의 독 감별은 조금 다릅니다.”
“나도 그런 재주는 있다.”
“그럼 서로 음식을 의심할 필요가 없겠군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로잘린은 흰 문서 세 장을 꺼냈다.
첫 번째는 추적대의 새로운 회수 명령이었다. 대상은 레온 한 명이 아니었다. 은안의 아이와 연관된 기록을 보유한 모든 보호자, 증언자, 연구자가 목록에 들어 있었다.
“이건 체포 명령이군.”
“공식적으로는 보호를 위한 격리입니다.”
“편리한 말이다.”
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두 번째 문서는 성왕국 내부의 회의록이었다.
그녀는 종이 위의 검은 자국을 가리켰다.
“저희는 기록위원회의 예언을 신탁과 같은 것이라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회수 명령의 서명일이 작성일보다 오래전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쓸 문서를 먼저 승인했단 말인가?”
“아니요. 과거의 결재를 새 문서에 가져다 붙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세라크가 아주 부지런하군.”
“조롱할 때는 아닙니다. 제 동료들은 그 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이미 실종됐습니다.”
내 웃음이 멎었다.
***
세 번째 문서는 비어 있었다.
정확히는 제목만 있었다.
'공동 조사 범위 및 서로의 제한.'
“여기에는 왜 아무것도 쓰지 않았지?”
“혼자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우리가 귀국의 마왕성에 들어온 이상 귀국의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조건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대신 저희도 성왕국의 민간인 정보를 무단 열람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마렌이 문서를 받아 살폈다.
“동등하게 검증 가능한 규칙이군요.”
로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레온은 정말 안전합니까?”
나는 곧장 답하려다 멈췄다.
안전하다는 말은 때로 자만이었다. 레온의 어깨에 연결된 표식은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 붉은 별도 떠 있었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소. 우리가 아는 위험은 차단했고, 모르는 위험을 찾는 중이오.”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답이 듣고 싶었습니다.”
***
공동 조사를 약속하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문서를 하나씩 살폈다.
로잘린은 성왕국 신전의 압수 명령 원본을 가져왔고, 나는 마왕국에서 회수한 위조 계약 사본을 보여 주었다. 마렌이 두 문서 사이의 공통 인장을 찾아냈다.
“같은 인장인데 새겨진 순서가 다릅니다.”
“이런 것도 구분할 수 있나?”
내가 묻자 로잘린은 작은 돋보기를 꺼냈다.
“저희 신전 기록관도 그런 일을 합니다. 문제는 기록을 검증하던 사람들이 최근 차례로 사라졌다는 거죠.”
그녀는 사라진 동료 셋의 이름을 적었다. 나는 세브에게 다른 기록과 대조해 확인하라고 했다.
로잘린이 내게 물었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면 저희에게 돌려주실 겁니까?”
“그 사람들이 돌아가길 원한다면.”
“그럼 원하지 않는다면요?”
“왜 돌아가고 싶지 않은지 먼저 듣겠지.”
로잘린은 한참 서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는 늘 신전으로 돌아오는 것이 모든 이의 바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 성에서 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와야 충성이라고 믿었소. 바르톨 덕분에 그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배웠지.”
그때 바르톨이 옆방에서 외쳤다.
“전하, 저는 여전히 성 안에 있습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들었소? 떠날 자유를 얻은 사람이 오히려 가장 큰 목소리로 일하고 있군.”
***
로잘린은 레온을 직접 보겠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녀를 식당과 대피 시설까지 안내했다. 아이들이 있는 방의 위치는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미아가 작성한 생활 안전 기록의 공개 가능한 항목만 보여 주었다.
“아이가 몇 시에 잠들었는지까지 기록하시는군요.”
“그렇다.”
“이건 국가 기밀입니까?”
“미아 말로는 내가 밤에 얼마나 헛소리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장부라더군.”
미아가 멀리서 외쳤다.
“정확해요!”
로잘린이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나 곧 미소가 사라졌다.
“성왕국에는 보호자가 없는 아이를 신전으로 데려오는 규칙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이 모두를 위한 조치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는?”
“일부 아이들이 기록위원회로 인계되었습니다. 제 손으로 서명한 날도 있었지요.”
그녀는 눈을 내렸다.
“잘못을 인정한다면 제게 벌을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벌을 정하는 것은 조사 뒤의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디로 인계됐는지 찾는 일이지.”
로잘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록을 가져오겠습니다. 필요한 절차도 밟겠습니다.”
“자네 혼자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마시오.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있어야겠지.”
나는 말했다.
그녀는 오래 생각하더니 답했다.
“해 보겠습니다.”
***
협상이 끝난 무렵, 로잘린의 수행원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대신관님. 북부 검문소가 봉쇄되었습니다. 되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로잘린의 얼굴이 굳었다.
“예상보다 빠르군요.”
나는 마렌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퇴로가 있나?”
“북동쪽 산길은 열려 있습니다. 다만 일반 주민들의 통행도 많은 곳이라 혼잡해질 수 있어요.”
나는 망설였다.
성왕국 대신관을 위해 우리 영토의 길을 열어 주면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반대로 그 길을 막으면 로잘린뿐 아니라 그 수행원들까지 회수관에게 잡힐 것이다.
“먼저 주민에게 길을 쓰게 하라. 이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로잘린이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우리는 같은 결정을 내렸다.
***
밤에 로잘린은 떠나기 전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안에는 낡은 은종이 있었다. 종의 혀가 빠져 있어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대신관 직위와 함께 물려받는 물건입니다. 신탁을 들을 수 없는 날에는 스스로 판단하라는 뜻이지요.”
“나에게 주는 건가?”
“보관을 부탁드립니다. 기록위원회가 신전을 수색하고 있으니까요.”
“왜 나를 믿지?”
그녀는 대답했다.
“당신을 전부 믿는 게 아닙니다. 방금 우리가 함께 적은 조사 규칙을 믿어 보려는 겁니다.”
나는 상자를 받았다.
그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로잘린이 떠난 뒤 마렌이 은종을 조사했다.
종의 안쪽에 아주 작은 초승달 문양이 있었다. 레온의 어깨에 있는 흔적, 아르헨의 설계에 남아 있는 문양과 비슷했다.
“전하, 이것은 평범한 성물은 아닙니다.”
“무엇이지?”
마렌이 문양을 한 번 더 대조했다.
“초기 구호소의 시계에서 사용한 같은 연결 표식입니다. 성왕국과 시각시가 예전에는 하나의 시설로 연결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나는 무음의 종을 들었다.
적국의 신전에서 내려온 물건이 나의 출생 기록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수정판의 붉은 글씨가 바뀌었다.
[긴급 회수령 시행.]
[대상 지역: 북부 구호소, 마왕성, 성왕국 신전.]
[남은 유예: 삼 일.]
나는 종을 내려놓았다.
삼 일.
그 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다음 사람의 삶을 마음대로 빌릴 수는 없었다.
제4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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