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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38화
PAYLUA ORIGINAL · 제38화

38화. 서명하지 않은 계약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4,647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세라크의 편지를 당장 불태우고 싶었다. 그러나 불태우지 않았다. 편지를 보자마자 불을 지르는 버릇은 고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종이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적이 보낸 것이라 해도 함부로 없애면 또 다른 사실까지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세브에게 물었다. “이 편지는 언제 발송됐지?” “봉인된 시각으로는 삼백이십 년 전입니다.” “그때 나는 아직 마왕이 아니었겠군.” “그렇습니다.” 봉투의 밀랍에는 초승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레온의 흉터와 비슷했지만, 가장자리의 작은 눈금이 달랐다. 나는 마렌을 불러 문양부터 기록하게 했다. 그런 뒤 편지를 열었다. '후보 영에게. 네가 자라 선택을 요구하는 날이 오면, 최초의 계약을 확인하라. 그 계약에는 네 서명이 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글을 배우기도 전에 서명했단 말인가?” 마렌은 편지의 뒷면을 살펴보았다. “유아의 서명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규정이 기록실에도 남아 있어요.” “그런데 왜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지?” “누군가 보호자 서명을 대신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르헨이 떠올랐다. 그녀가 나를 지키기 위해 계약에 서명했다면, 그 계약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 우리는 첫 번째 시계의 위치를 찾기 위해 라기스에게 연락했다. 그는 더 이상 기록위원회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우리 편이 된 것도 아니었다. 위원회의 복도에서 원본을 보려다가 자신이 폐기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증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증언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전보다 느렸다. “직접 본 것과 장부에 적힌 것을 구분해라.” 나는 대답했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이상합니다.” “무엇입니까?” “최초 계약에는 카르딘의 서명이 있다는군. 그때 나는 아기였을 텐데.” 라기스의 구두 소리가 통신석 너머에서 멈췄다. “그 기록을 보셨습니까?” “편지를 받았다.”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원본 서명을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회수관들에게 배포된 문서에는 '자발적 동의'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누가 동의했는지 없다고?” “예.” 나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빈칸 하나 때문에 갇히고, 늙고, 잊혀졌다. *** 첫 번째 시계는 시각시에 없었다. 라기스가 보내온 지도에는 성왕국 북쪽의 작은 지하 예배당이 표시되어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원래는 아이를 맡기러 온 사람들을 위한 구호소였다고 했다. 나는 세브, 마렌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레온은 마왕성에 남았다. 미아와 바르톨이 서로 교대하며 아이를 돌보겠다고 했다. 출발 전에 바르톨이 물었다. “전하, 저도 전투에 참여할까요?” “이번에는 네가 맡은 일을 해라. 네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다.” 바르톨은 잠시 망설였다. “전하를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네가 없어도 나는 스스로 지킬 수 있다.” “그 말씀은 조금 섭섭합니다.” 나는 웃었다. “그럼 레온을 지켜라. 나는 그게 더 안심된다.” 놈은 두꺼운 가슴을 쳤다가 레온이 놀랄까 봐 급히 손을 내렸다. “명심하겠습니다.” *** 폐허의 입구는 가시넝쿨로 막혀 있었다. 옛날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문에는 무거운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손잡이 아래에는 낡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이를 맡기는 보호자는 보호 약정서에 서명할 것.' 나는 문장을 한참 보았다. “이건 원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였겠군.” “그렇습니다.” 세브가 대답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절차를 시간 담보로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는 자물쇠를 부수지 않았다. 마렌이 남은 열쇠 구멍을 조사해 문을 열었다. 안에는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벽마다 아이들의 키를 재던 선이 남아 있었다. 작게 적힌 이름들 사이에 '카르딘'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멈췄다. “내가 여기 있었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글자를 만졌다. 잉크가 벽 깊숙이 스며 있었다. 누가 지우려 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도록 여러 번 덧칠한 흔적이었다. *** 지하 끝에는 원형의 방이 있었다. 방 가운데에 커다란 시계가 서 있었다. 바늘은 열두 시를 가리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곗바늘 아래에는 서명란이 펼쳐져 있었다. 세브가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 잉크가 두 종류입니다.” 처음 적힌 글씨 위에 누군가 다른 글씨를 덧썼다. '보호 목적의 임시 보관.' 그 아래에는 나중에 추가된 문장이 있었다. '보호 대상의 장래 선택권을 기록위원회에 영구 위임.'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기가 미래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권한을 위원회에 넘긴다니. 대체 누가 그런 문장에 서명할 수 있단 말인가. 마렌이 서명란의 가장자리를 긁어 냈다. 붉은 문장이 벗겨지고 아래의 원래 서명이 드러났다. '아르헨. 아이들의 안전한 피난을 위한 임시 동의.' 그리고 그것을 뒤덮은 두 번째 인장. '세라크. 영구 전환 승인.' 나는 손을 떨었다. 아르헨은 아이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문을 열었다. 세라크는 그 동의를 영원한 복종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계약이 아니었다. 위조였다. *** 우리는 위조된 계약을 가져가기 전에 세라크가 남긴 흔적을 더 조사했다. 벽의 키 표시 옆에는 작은 손도장이 있었다. 손바닥 크기는 내 손가락 세 개를 합친 정도였다. 아르헨의 서명 아래 같은 문양이 반복되어 있었다. “이게 제 서명이라는 건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마렌은 돋보기를 꺼냈다. “손도장을 찍은 아이가 카르딘 전하일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아이가 계약 내용을 이해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죠.” “지문 하나를 영구적인 동의로 바꾸었다는 말이군.” 나는 옛날 인간 왕국의 노예 계약서를 떠올렸다.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손도장을 찍게 해 놓고, 나중에 계약 내용을 바꾼 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왕국을 정복했지만, 그 법을 없애려 한 적은 없었다. “마렌. 우리 영토의 계약법도 조사해라.” “지금 여기서요?” “돌아간 뒤에.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잊을까 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도장 옆에 남은 긁힌 자국을 보았다. 누군가 나중에 문장을 고치려고 했던 흔적 같았다. 세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르헨 님이 원래 동의를 철회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다. 시각시에서 그녀가 왜 그토록 문을 붙잡고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군.” 나는 작은 자국을 손끝으로 쓸었다. 아르헨은 내 삶을 누군가에게 넘기려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을 돌려달라고 싸운 사람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생각을 마음속에 품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실까지 그녀의 뜻으로 단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라크의 편지에 적힌 글씨를 다시 살피자 이상한 점이 드러났다. '네가 자라 선택을 요구하는 날이 오면'이라는 문장은 편지가 봉인된 시기와 맞지 않았다. 그는 내가 선택을 요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미리 가정하고 있었다. “미래를 보았다는 뜻인가?” 내가 묻자 세브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날이 오도록 사건을 꾸몄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편지를 접었다. 예언이란 참 편리한 도구였다. 누군가 나중에 화를 낼 것이라고 먼저 적어 두고, 그가 화낼 상황을 만든 다음 '맞혔다'고 주장하면 되니까. “아르헨이 이 문장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렌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나는 웃었다. 그래. 아르헨은 찻잔 밑에 그 말을 남겼다. 아이에게 물어보라고.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라면 기다리거나 일상에서 드러나는 의사를 살피라는 뜻이겠지. “우리가 원본을 찾더라도 결과를 서둘러 발표하지는 말자.” 나는 마렌과 세브를 바라보았다. “왜 서명이 바뀌었는지, 누가 언제 수정했는지 확인한 뒤 모두가 검토할 수 있도록 남겨라.” 세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는 사람이 없는 편지도, 받는 사람의 동의가 없는 계약도 마음대로 전달하면 안 된다는 뜻이군요.” “그렇다. 누군가의 삶을 다루는 기록이라면 더욱.” 우리 셋은 잠깐 말없이 방을 바라보았다. 시계에서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찾고 있었지만, 진짜로 멈춰 있어야 했던 것은 남의 미래를 마음대로 적는 손인지도 몰랐다. *** 마렌은 문장을 세 번 확인했다. “전하, 여기에는 카르딘의 직접 서명이 없습니다. 세라크가 '자발적 동의'라고 표기한 근거는 아르헨 님의 임시 서명이에요.” “아르헨이 모든 걸 알고 서명했다고 말할 수도 없겠군.” “네. 원래 계약과 나중에 바뀐 조건이 다르니까요.”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시계를 멈춘 사람이 세라크라는 말은 이 뜻인가?” 그때 시계의 안쪽에서 낮은 소리가 울렸다. “그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방 안에 서 있었다. 흰 머리칼을 가진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도 없는 발로 바닥을 걸어왔다. “아르헨이 처음 종을 멈추려던 날, 나는 이미 시간을 멈추는 법을 알고 있었지.” 나는 검에 손을 얹었다. “세라크?” 그가 웃었다. “반갑구나. 후보 영.” “내 이름은 카르딘이다.” 노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 이름을 계속 쓰겠다는 거냐?” 나는 대답했다. “네가 지워도 내가 기억하는 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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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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