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본다는 것은 대개 유쾌하지 않다.
특히 이미 한 번 죽어 본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나는 내 마지막 날의 냄새까지 기억한다. 부서진 왕좌에서 피어오르던 뜨거운 돌가루. 불길 속에서 녹아내리던 왕관. 그리고 레온의 성검이 내 심장에 닿았던 차가운 감각.
그런데 세라크는 그 기억을 다시 보여 주겠다고 했다.
“무슨 이유로?”
내가 묻자 유리 속 목소리가 답했다.
“네 선택이 만든 미래를 직접 보면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조건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전에 내가 먼저 확인하겠다. 관측된 미래를 사실이라고 확정하지도 않겠다.”
“두려운가?”
“매우.”
나는 웃었다.
“그래서 조심하려는 거다.”
***
마렌은 시청각 수정구를 두 겹으로 밀봉했다. 나이라가 수면을 방해하는 종의 박자를 끊었고, 미아는 레온을 놀이방에서 돌봤다.
나는 작은 방 한가운데 섰다.
장치가 밝아졌다.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었다.
나는 스무 해 뒤의 마왕성 대전에서 눈을 떴다.
벽은 반쯤 무너져 있었고, 문 앞에는 은빛 갑옷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레온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는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두 손이 떨리고 있었고, 발밑에는 부서진 성검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카르딘.”
청년이 나를 불렀다.
전생의 레온은 마지막까지 나를 '마왕'이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이름이었다.
“왜 여기까지 왔느냐?”
나는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 무너진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하늘에는 붉은 별이 여덟 개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어린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피란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레온이 말했다.
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
“누가?”
청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기록위원회가요.”
그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내 눈앞에 다른 장면이 겹쳤다.
이번에는 내가 왕좌에서 쓰러져 있었다. 성검이 내 가슴을 꿰뚫고 있었고, 레온은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과 같았다.
두 장면 중 무엇이 진짜 미래인가?
아니, 두 장면 모두 누군가 골라 보여 준 장면일 수도 있다.
***
“멈춰라.”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라크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하나를 선택하라. 네가 살아남으면 봉인이 무너지고, 네가 죽으면 세계가 유지된다.”
“근거는?”
“미래의 장면이 증거다.”
“어느 미래?”
“두 가지 모두.”
“그렇다면 서로 모순되지 않느냐?”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선택을 미루면 더 많은 사람이 다친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검은 마력이 억눌린 채 손끝에 모였다. 저 목소리를 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마렌과 약속했다. 장치가 바꾸어 놓은 감정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겠다고.
“그럼 빠진 장면을 보여라.”
“무엇이 빠졌다는 것이냐?”
“레온이 왜 검을 들었는지. 그 아이가 어디서 자랐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네가 무엇을 했는지.”
장면이 흔들렸다.
나는 눈앞의 청년에게 다가갔다.
“레온.”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청년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의 움직임을 읽으려는 순간 얼굴이 흐릿해졌다. 누군가 그림에서 그 부분을 도려내는 듯했다.
나는 알았다.
세라크는 내게 결말을 보여 주지만, 결말을 만든 삶은 감추고 있다.
***
장치 밖으로 돌아왔을 때 마렌이 내 팔을 붙잡았다.
“전하! 괜찮으세요?”
숨을 몰아쉬었다. 방 안은 그대로였다. 물시계에서 세 방울이 떨어진 상태였다.
“얼마나 지났지?”
“세 박자요.”
“그 안에서는 몇 시간이나 흐른 것 같았는데.”
나는 의자에 앉았다.
마렌이 기록판을 내밀었다.
“보신 것을 순서대로 말씀해 주세요. 판단은 나중에요.”
나는 그녀의 말대로 했다. 붉은 별 여덟 개, 부서진 성검, 이름을 부르던 레온, 두 장면이 겹치는 순간까지.
이야기를 마치자 마렌은 내게 차를 건넸다.
“세라크가 보여 준 것은 확정된 미래가 아닐 수 있어요. 기록실이 보유한 여러 예측 중 일부일 수도 있고, 편집된 환영일 수도 있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도 무서우시군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해를 입힐까 봐.”
처음 죽었을 때는 레온이 나를 죽이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은 달랐다.
내가 레온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
늦은 밤 미아가 내 방으로 왔다.
“전하, 레온이 아직 안 자요.”
나는 몸을 일으켰다.
레온은 작은 침대에 앉아 천 곰의 귀를 만지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공을 툭 밀어 주었다.
나는 바닥에 앉았다.
“나와 놀자는 것이냐?”
아기는 공을 다시 밀었다.
나는 손끝으로 공을 되돌려 주었다. 몇 번의 왕복 끝에 레온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토록 간단한 일로 웃는 사람이 스무 해 뒤 성검을 부수며 울 수도 있다니.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미래를 피하려고 오늘을 망치지 않겠다.
어떤 예언도 지금 이 아이에게 부드럽게 공을 건네는 내 손을 대신 움직이게 하지는 못한다.
***
나는 환영 속에서 본 레온의 얼굴을 그림으로 남기려 했다.
물론 내 그림 실력은 형편없다. 예전에 적국의 성을 그렸을 때 바르톨은 그것을 감자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직접 그려 보고 싶었다.
“눈은 이 정도였고…….”
미아가 옆에서 바라보더니 말했다.
“전하, 이건 레온보다 전하를 닮았는데요.”
“그럴 리 없다.”
“턱이 네모나요.”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스무 해 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나?”
“없죠.”
“그럼 모르는 일이지.”
미아는 내 고집을 비웃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오늘 그림을 그려 두자고 했다. 레온이 방에서 웃던 모습이었다.
나는 종이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세라크가 보여 준 미래의 얼굴, 다른 하나는 미아가 본 현재의 얼굴.
둘 다 완전한 진실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한 장면과 미아가 기억한 장면의 조각일 뿐이다.
그때 유진이 문을 두드렸다.
소년은 자신의 작은 판에 문장을 적었다.
'아저씨, 제가 레온을 보면 무서워해야 하나요?'
나는 글을 읽고 한참 생각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지?”
그는 다음 줄을 적었다.
'사람들이 미래의 용사는 마왕을 죽인다고 해요. 저는 마왕 아저씨가 죽는 게 싫어요.'
나는 유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무서웠겠지. 하지만 레온에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벌을 줄 수는 없다.”
유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미래는 여러 갈래일 수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소년이 천천히 썼다.
'그럼 저는 레온한테 자장가를 가르쳐 줄래요.'
나는 웃었다.
“그건 아주 좋은 시작이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또 다른 아이의 미래를 지키는 일을 맡기는 것이 옳은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유진은 강요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일기장에 적어 두었다.
미래를 보여 주는 장치에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장면을 의심할 때마다 소리가 커졌다. 불길이 더 높게 치솟고,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결국 레온이 검을 들었다. 반대로 내가 환영을 믿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마렌은 그 점을 듣고 수정판의 반응을 계산했다.
“전하, 이건 정보를 보여 주는 장치라기보다 특정한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구조일 수도 있어요.”
“내가 의심하면 더 무서운 장면을 보여 줬다는 뜻인가?”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치에 남은 마력 변화가 전하의 반응과 동시에 커졌거든요.”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내 감정까지 시험하고 있었군.”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본 미래가 완전히 거짓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실제 발생 가능한 위험을 일부 섞었을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옳았다.
나는 전생에서 레온의 검에 죽었다.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결말이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다.”
나는 말했다.
“그 아이가 스무 해 동안 무슨 아침을 맞는가. 아침마다 누가 인사를 해 주는가.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마렌은 잠시 웃었다.
“그건 세라크의 기록보다 전하가 직접 만들고 있는 일기에 더 잘 남겠네요.”
나는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남기는 일도 중요했다.
***
다음 날 아침, 마렌이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미래 장치의 가장자리에 누락된 항목이 있었다.
[관측 결과 총 12개. 표시된 결과 2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열 개가 빠졌군.”
“예. 그런데 그중 아홉 개는 삭제 표시가 있고, 하나만 잠금 상태예요.”
“무엇이 잠겨 있지?”
“세 번째 길에 관한 관측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수정판을 두드렸다.
세라크는 나를 두 가지 결말 사이에 가두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기록 안에는 다른 경로가 있었다.
“아르헨의 설계와 연결해 보자.”
“그러면 위원회가 알아차릴 겁니다.”
“이미 알아차렸겠지.”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레온은 정원의 햇빛 아래에서 미아에게 공을 굴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야기 전체를 듣겠다. 결말만 보여 주는 사기꾼에게 더는 속지 않을 생각이다.”
제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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