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태우는 일을 잘한다.
옛날에는 성벽을 불태웠고, 적의 군량 창고도 불태웠다. 적당히 큰 문제를 발견하면 일단 불부터 질렀다. 그러면 문제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 내 앞에 놓인 장부는 태울 수 없었다.
그 안에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신성 감독관이 도착했습니다.”
바르톨이 보고했다.
“또?”
“이번에는 갑옷을 입은 성기사가 아니라 감사관 셋입니다.”
“감사관?”
“문서와 회계 장부를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나는 웃었다.
세라크가 내 검을 두려워할 줄은 알았다. 그러나 장부를 보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다.
***
세 명의 감사관은 대전의 긴 탁자 앞에 앉았다. 흰 장갑을 끼고 각각 다른 크기의 자를 들고 있었다. 한 명은 문장의 길이를 재고, 다른 한 명은 서명 위치를 측정했으며, 세 번째는 사람의 말을 기록했다.
그들은 내게 허가서를 요구했다.
“어떤 허가서?”
“시각 보관실의 문서를 복제한 허가서입니다.”
“없다.”
감사관이 손을 떨었다.
“그럼 불법 복제에 해당합니다.”
“어떤 법으로?”
“천상 기록 관리법 제일천삼백조.”
“그 법을 누가 만들었지?”
“기록위원회입니다.”
“그리고 복제가 불법인 문서를 누가 감추었나?”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바르톨의 얼굴을 보았다. 놈은 이런 대화를 싫어했다. 적이 뚜렷하지 않을 때는 검을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나도 검을 뽑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온 자료에는 동의한 사람들이 부담을 나눌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왜 감추었지?”
첫 번째 감사관이 대답했다.
“미승인 설계는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위험하다고 공개했으면 될 일이 아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
감사관은 대답 대신 작은 종을 꺼냈다.
순명의 종.
그 소리만 듣고도 레온의 몸이 반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종을 가리켰다.
“그걸 울리면 여기서 나가는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감사관이 굳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대신 네가 적어 놓은 사람들의 이름은 돌려주겠다. 원본을 보여라.”
***
그들이 가져온 장부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있었다.
유진. 세이라. 아르헨.
그리고 카르딘.
내 이름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후보 영은 임시 보호자 기능을 발현하였으므로 계획 밖의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음.'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야 내가 남이 시키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군.”
감사관이 장부를 빼앗으려 했다.
“열람 허가가 없습니다!”
나는 한 손으로 장부를 붙잡았다.
그때 내 이름 위에서 검은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글자가 지워지는 순간 손끝이 저렸다.
대전의 기둥들이 잠깐 어두워졌다. 내 그림자가 조금 흐려졌다.
마렌이 외쳤다.
“전하! 그 기록과 생존 흔적이 연결돼 있어요! 그냥 지우면 위험합니다!”
나는 잉크가 번지는 페이지를 가까이 보았다.
내 이름과 아르헨의 이름 사이에 실보다 가는 붉은 선이 놓여 있었다. 그 선이 팽팽해질 때마다 두 사람의 기억 하나가 흔들리는 듯했다.
“그렇다면 태워 버리면?”
“사람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나는 불꽃을 거두었다.
과거의 나라면 위험하다는 말에 더 강한 불꽃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번에는 장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복사본을 여기로.”
마렌이 종이와 먹을 가져왔다.
우리는 곧장 장부를 베끼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감사관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제 기록을 복사하실 수 없습니다!”
“네가 적은 숫자는 네 소유일 수 있어도, 그 안에 적힌 삶까지 네 소유는 아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
미아는 감사관들에게 따뜻한 차를 내왔다.
나는 그녀의 침착함이 부러웠다. 성기사가 들이닥쳤을 때조차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방에 계신 분들 다 차 드세요. 목이 마르면 말을 더 못하잖아요.”
감사관 한 명이 컵을 받았다.
그의 손등에는 희미한 번호가 있었다.
세이라가 자신에게 붙어 있던 번호를 만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너도 번호로 불리나?”
내가 묻자 남자는 소매를 내렸다.
“업무상 식별 번호입니다.”
“이름은?”
“관련 없는 사항입니다.”
“관련 있다. 네가 자기 이름을 선택할 수 없다면, 남의 서명을 심사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남자는 나를 노려보았다.
“마왕이 자유를 논하는군요.”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말은 맞다. 내 성에는 아직 고쳐야 할 법이 많다.”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상대는 내 죄를 말했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할 말이 줄어든 모양이었다.
***
복사가 끝나 갈 무렵 대전 문이 열렸다.
유진이었다.
소년은 여전히 긴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적는 판은 언제나 가지고 다녔다.
그가 적었다.
'제 친구 이름도 있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장부를 보여 주었다.
유진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
'다렌.'
그 이름 옆에는 숫자가 있었다.
[동결 잔여 시간: 미정. 반환 요청 이력: 삭제.]
유진의 손이 떨렸다.
“네 친구였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음 문장을 적었다.
'반환 요청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했어요.'
나는 그 글을 읽었다.
소년의 목소리가 없다고 요청까지 없었던 일이 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 흔적을 지운 것이다.
“유진. 네가 다시 적겠느냐?”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적었다.
'다렌을 찾고 싶어요. 꼭 데려와 달라는 뜻이 아니라, 어디 있는지 알려 주세요.'
나는 그 문장을 별도의 종이에 옮겼다.
“알았다. 찾아보겠다. 약속할 수 있는 데까지만 약속하마.”
감사관들이 서로를 보았다. 그들 중 가장 젊은 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반환 요청 기록은 원래 삭제할 수 없는 항목입니다.”
나와 마렌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누가 지웠지?”
남자가 창백한 입술로 대답했다.
“위원장 권한…… 아니면 최초 설계자의 서명이 있어야 합니다.”
세라크.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세 명의 감사관이 대전에서 물러나기 전,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위조된 기록 때문에 사람이 다쳤다면 누가 책임지지?”
가장 연장자인 감사관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류를 정정하면 됩니다.”
“그 정정이 피해 입은 사람을 회복시키나?”
“규정상 오류는 정정 처리됩니다.”
나는 탁자 위에서 깨진 찻잔 하나를 집었다. 이른 아침 바르톨이 장갑을 낀 채 들다가 떨어뜨린 잔이었다.
“이 찻잔을 기록에서 멀쩡하다고 고치면 다시 붙나?”
감사관은 시선을 피했다.
나는 깨진 조각을 천에 올려놓았다.
“너희 규정에서 사람을 다친 뒤 되돌려놓는 방법이 빠져 있다면, 그 규정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다.”
가장 젊은 감사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록위원회의 보상 절차가 있기는 합니다.”
“실제로 보상한 적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렌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나는 종이를 감사관들에게도 보여 주었다. 그들이 한 말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왜 저희 서명을 원하십니까?”
“나중에 말이 달라지면 곤란하니까.”
“서명을 거부하면요?”
“그것도 적어 둔다. 거부했다는 이유로 벌을 주지는 않겠다.”
연장자는 서명하지 않았다. 두 번째 감사관도 펜을 밀어냈다. 하지만 가장 젊은 남자는 한참 망설이다가 자기 손으로 한 줄을 썼다.
'오늘 저는 삭제된 요청이 있었다는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의 손이 떨렸다.
나는 서류를 받아들고 말했다.
“네가 모든 일을 바로잡은 건 아니다. 하지만 방금 본 것을 없었다고 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남자는 처음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말할 준비가 되면 그때 듣기로 했다.
***
감사관들은 돌아갔다.
나는 그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대신 가져온 원본의 복사본과 오늘 확인한 모순을 한 장에 정리해 돌려보냈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불태우는 것보다 공개적으로 남기는 편이 지금은 중요했다.
해가 질 무렵 마렌이 나를 찾아왔다.
“전하, 정말 장부를 내보내셨습니까?”
“원본은 돌려보냈다. 다른 사본과 증언은 남겼고.”
“위원회가 문장을 더 바꾸면요?”
“그들이 바꾸기 전의 문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유진도 있고, 너도 있지.”
나는 미아가 끓인 차를 마셨다.
“장부를 태우지 않아도 기록과 싸울 수 있다는 걸 이제 알겠다.”
창밖에 검은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다리에 낡은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세브가 먼 북쪽에서 보낸 편지였다.
겉면에는 수신인도 발신인도 없었다. 다만 서명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라기스. 본인의 선택으로.'
나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지도와 문장이 있었다.
'위원회의 다음 목표는 시각시가 아니라 마왕성 놀이방입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레온이 있는 방이었다.
제3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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