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26화. 유모가 칼을 내려놓은 이유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5,117자

오프라인 책장
시각시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었다. 누가 길을 묻더라도 먼저 대답하지 말 것. 그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하필 내가 마왕이기 때문이다. 칼과 마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길 안내가 대체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아주 상냥한 유모를 만났다. “아기께서는 안녕하신가요?” 그녀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수백 개의 시계가 매달린 광장 한복판, 흰 앞치마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는 단정히 묶었고, 양손에는 따뜻한 우유가 든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나는 검을 뽑지 않았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레온 님이요.” 순간 공기가 차가워졌다. 마렌이 내 옆에서 수정판을 꺼냈고, 나이라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세브는 매듭을 쥐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저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당신께서도 아이를 돌보신다면서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내 아기 이름을 어떻게 알지?” “기록에 있으니까요.”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그녀를 적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적이 친절하다는 사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성가셨다. *** 여자는 자신을 세이라라고 소개했다. 한때 출생 등록소에서 신생아들의 건강과 식사를 확인하던 유모였다고 했다. 그녀의 옷깃에는 작은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관리인 07.' “이곳에 살아 있는 아이들이 있나?” 내가 묻자 세이라의 미소가 잠깐 사라졌다. “있습니다.” “몇 명?” “열둘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녀가 눈을 내리깔았다.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이라는 앞으로 나섰다. “네가 여기서 아이들을 돌봤다는 증거가 있니?” 세이라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숟가락을 꺼냈다. 숟가락 손잡이에는 손가락이 자주 닿은 듯 매끈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건 제 거예요. 그 아이들이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썼죠.” 마렌이 조심스럽게 살폈다. “전하. 이 물건에는 기억 봉인이 없습니다. 오래된 인간계 나무입니다.” 나는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아이를 돌본 흔적.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른 아이를 해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세이라. 네가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녀가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이곳의 마지막 방을 열지 마세요.” “왜?” “그곳을 열면 시계들이 다시 시간을 세기 시작할 거예요.” “그럼 사람이 사라지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면 막을 근거가 부족하군.” 세이라의 손이 떨렸다. “그건 옳습니다. 하지만 그 문 안에는 아직 누군가 있어요.” “아르헨을 말하는가?” 그녀가 움찔했다. 나는 확신했다. 이 여자는 아르헨을 알고 있었다. *** 우리는 광장 한쪽의 작은 찻집으로 이동했다. 찻집이라고 해 봐야 바닥에 오래된 의자 넷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솥에는 물이 없었는데도 김이 올라왔다. 나는 앉지 않았다. “그 주전자는 어디서 났지?” “아침마다 준비돼 있어요.” “누가?” 세이라가 잠시 멈췄다. “……모르겠어요.” 마렌이 말했다. “전하. 이 사람은 일부 기억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만 남은 환영인가?” “아니요. 체온과 맥박이 있어요. 살아 있습니다. 다만 같은 시간을 여러 번 겪는 흔적이 있습니다.” 세이라가 앞치마 끝을 움켜쥐었다. “제가 오늘이 며칠인지 자꾸 잊어요. 아침마다 아이에게 우유를 먹일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문을 열면 아무도 없어요.” 나는 여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미아와 닮은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빈 요람 앞에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려는 표정은 어쩐지 비슷했다. “왜 나를 막으러 왔지?” “명령이 내려왔으니까요.” “누구에게서?” 그녀가 목깃의 번호표를 손으로 가렸다. 그러자 하얀 글씨가 목덜미에 떠올랐다. [관리인 07: 탐사자 제거 권고.] 나는 손바닥에 검은 불꽃을 피웠다. 세이라는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전하!” 마렌이 외쳤다. “그 표식이 그녀의 몸을 강제로 움직이게 합니다!” 그 순간 세이라가 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나는 손목을 붙잡았다. 칼은 내 갑옷에 닿지도 못했다. 대신 그녀의 손목이 종이처럼 차가워졌다. “놈들이 시킨 것이냐?” 세이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검을 뽑는 대신 그녀의 팔을 놓았다. “그럼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싶지?” 그녀가 굳었다. 목덜미의 문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질문 허용 범위 초과.] [관리인 의사 무효.] 나는 다시 물었다. “네가 정해라. 나를 찌르고 싶은가?” 세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 칼을 내려놓아라.” 그녀는 천천히 손에서 칼을 놓았다. 금속이 돌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표식에 금이 갔다. *** 마렌과 세브는 세이라의 번호표를 살펴보았다. 표식은 단순한 노예 인장이 아니었다. 출생 등록소의 직원들이 정해진 답변만 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계약 문서였다. 세이라는 계약을 해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이름이 번호로 대체되는 순간 그 시도 자체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본명은?” 내가 물었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생각나지 않나요?” 나이라가 물었다. “아마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생각했다. 마왕성의 노역자들에게 내가 했던 일과 닮아 있었다. 다만 이곳에서는 장부를 더 영리하게 썼다. 자기가 누구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 여기서 계약을 없애면 어떻게 되지?” 마렌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강제로 지우면 이 사람의 기억도 함께 손상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계속 거절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곳에서 시간을 확보해야 해요.” “그렇다면 같이 가겠느냐?” 나는 세이라에게 물었다. “우리는 출생 등록소를 조사하러 간다. 네가 따라와 줄 의무는 없다. 다만 지금 여기 혼자 남으면 표식이 다시 명령할지도 모른다.” 세이라는 오래 생각했다. “제가…… 같이 가도 되나요?” “네가 원한다면.” 그녀는 앞치마의 주름을 폈다. “그러고 싶어요.” 나이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름을 떠올릴 때까지 세이라라고 불러도 될까?” “네. 그 이름은 제가 골랐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이 정해 준 번호가 아니라 자기가 고른 이름.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걸을 이유는 충분했다. *** 세이라가 칼을 내려놓은 뒤에도 나는 그녀를 곧장 믿지는 않았다. 성에 남겨 둔 레온이 걱정되었고, 이곳의 장치는 한 사람의 말과 손을 따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당장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안전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마렌. 세이라가 우리를 따라오면 어떻게 보호하지?” “표식에 강제 명령이 다시 내려올 수 있으니 몸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의사 표시가 어려워지면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하지 말고 우선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라가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 “저를 의심하시는군요.” “그렇다.” 그녀가 조금 놀랐다. 나는 덧붙였다.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해서가 아니다. 네게 위험한 장치가 붙어 있어서다. 너도 이 사실을 알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세이라는 손목의 번호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럼 제가 갑자기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하면, 먼저 손을 묶어 주세요.” “상황을 보고 필요한 만큼만 막겠다. 그리고 네가 스스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그녀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저희는 늘 '규정대로 움직인다'는 말만 들었거든요.” 나이라는 세이라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돌봄을 하던 사람도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지.” 세이라는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쥐었다. 그 순간 나는 미아와 엘라를 떠올렸다. 늘 다른 사람을 돌보던 이들이 제대로 쉬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자주 물어봤던가. 마왕성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미아의 휴식 시간을 바르톨의 보고서만큼 진지하게 확인하는 일. 그게 내게는 또 하나의 어려운 전쟁이었다. *** 광장을 벗어나기 전, 세이라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마왕님. 하나 알려 드려야 할 게 있어요.” “말해라.” “출생 등록소의 문은 힘으로 열 수 없습니다. 문을 연 사람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대가로 가져가요.” 나는 웃었다. “그럼 내가 가진 마력으로 문을 통째로 부수면 되겠군.” “부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문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시간이 흩어질 거예요.” 그 말에는 웃을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나?” 세이라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있어요. 한 사람이 모든 값을 치르는 대신 여러 사람이 조금씩 시간을 나누는 방법.” “위험하지 않나?” “그렇겠죠. 그래서 등록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선택하는지 알아야 하고, 거절해도 불이익이 없어야 하거든요.” 나는 마렌을 보았다. 그녀도 표정이 바뀌었다. “전하. 아르헨이 혼자 시간을 갚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 방식이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나는 시각시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수천 개의 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다. “좋다. 먼저 정확한 값을 계산하자.” 그때 광장 바닥에서 종이 한 장이 솟아올랐다. 짙은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관리인 07 계약 위반.] [후보 영, 외부 개입 확인.] [등록소에서 공식 회수관을 파견합니다.] 나는 종이를 구겨 버리려다 멈췄다. 구겨 버리면 적이 누구인지 확인할 단서도 사라진다. 대신 마렌에게 건넸다. “증거로 남겨라.” 그리고 세이라에게 말했다. “네가 이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그녀는 대답 대신 작은 숟가락을 손에 꼭 쥐었다. 한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왕님. 레온 님은 잘 자라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고, 잘 울고, 가끔 잠도 자지.” “행복하겠네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걸 단정할 수는 없지. 하지만 매일 확인하고 있다.” 세이라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시각시의 끝에서 쇠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시간을 하나도 잃지 않은 걸음으로,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6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