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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25화
PAYLUA ORIGINAL · 제25화

25화. 내가 태어났던 종 없는 밤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5,134자

오프라인 책장
내가 마왕이 되기로 결심한 날을 기억한다. 검은 황무지에서 굶주린 채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지나가던 용병 하나가 내 빵을 빼앗았다. 나는 그를 때려눕힌 뒤 빵을 되찾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자들이 내게 따르겠다고 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강해지면 빼앗기지 않는다. 그 생각 하나로 삼백 년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 시각시의 한복판에서 나는 그보다 오래된 기억을 되찾고 있었다. 내가 강해지기 훨씬 전, 누군가 나를 빼앗아 가려 했던 밤의 기억이었다. *** 시계 속의 여자는 자신을 보여 주지 않았다. “누구냐?” 내가 묻자 시곗바늘이 짧게 움직였다. “그 질문부터 하는구나. 예전에는 내가 방에 들어오기만 해도 손부터 뻗었는데.” 나이라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아르헨?”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이라. 네 목소리가 늙었구나.” “네가 사라진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그랬지.” 시계 유리가 흐려졌다. 마렌이 수정판을 들어 확인했다. “전하. 이건 살아 있는 사람의 직접 음성인지, 오래된 기억의 잔향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은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듣자.” 시계가 다시 울렸다. “그날 문을 닫지 못했어. 너를 데리고 나가느라.” 나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어떤 문이지?” “사람이 태어난 순간을 적는 방. 그 안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정해졌어.” “누가 정했지?” 여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가 세상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어.” 시계 유리에 희미한 풍경이 떠올랐다. 흰 바닥, 긴 탁자, 끝없이 늘어선 요람들. 나는 숨을 멈췄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순간 돌의 차가운 냄새와 촛농의 향기까지 떠올랐다. “이건 기억인가?” 마렌이 대답했다. “아마 재생 기록일 겁니다. 하지만 기록실은 보여 주는 장면을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믿으면 안 돼요.” 나는 그녀의 주의를 마음에 새겼다. “아르헨. 네가 보여 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확인할 다른 증거를 말해라.” 여자는 잠시 웃었다. “그래. 그게 맞아. 내가 한 말도 증거 없이 믿지 마.” 시계 속 풍경이 바뀌었다.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요람마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가장 끝의 요람에는 숫자 하나가 있었다. '0.' 그리고 그 안에서 아기가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 손의 움직임을 알았다. 무명탑에서 돌아온 뒤 나이라가 말했던, 누군가의 옷자락을 놓지 못하던 어린 나였다. *** “후보 영은 무엇을 뜻하지?”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시계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처음 기록되지 않은 아이.” “처음?” “아이들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리된다고 했어. 치료사가 될 아이, 병사가 될 아이, 마법사가 될 아이. 세계를 지키려면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이었지.” 나는 웃었다. “그래서 내 운명을 마왕으로 정했단 말인가?” “아니. 네 운명을 계산할 수 없어서, 계산의 기준점으로 삼으려 했어. 영이라는 번호를 붙인 것도 그 때문이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아이가 기준점이 되었다. 모순처럼 들렸다. “그럼 레온은?” “네가 세상에 남긴 변화를 막는 열세 번째 열쇠. 그렇게 기록되었지.” “그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정해진 건가?” “내가 처음 종을 멈춘 뒤로도 장치는 작동했어. 완전히 꺼지지 않은 거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계속 선택을 덧붙였겠지.” 나는 시계 안쪽의 요람을 보았다. 번호가 적힌 아이들. 그들이 모두 살아남았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네가 종을 멈춘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열두 명의 아이가 특정 시각에 한꺼번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로 했어. 그러면 아무도 그들의 원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그 일을 네가 막았나?” “전부는.”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전부는 아니었어.” 시계 유리에 또 다른 풍경이 떠올랐다. 한 여자가 요람을 끌어안고 뛰었다. 얼굴은 흐릿했다. 검은 버드나무 숲에서 나이라와 마주친 그녀는 요람 속 아이를 건넸다. '이 아이를 부탁해.'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디뎠다. 여자는 요람을 놓은 뒤 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왜 돌아갔지?” “문 안에 다른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레온을 처음 안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그 숲에 레온 말고도 다른 아기들이 버려져 있었다면, 나는 그 아이들까지 데리고 돌아왔을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지키는 일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르헨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 마렌이 시계 표면에 손을 대자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전하. 이 시계의 기억은 단순한 환상이 아닙니다. 기록한 당시의 물리적 흔적이 남아 있어요.” “검증할 수 있겠느냐?” “일부는요. 금속에 묻은 재와 시간 마법의 잔향이 무명탑 요람의 것과 같습니다. 적어도 같은 장소에서 나온 기록이에요.” 나이라는 흐릿한 그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 아르헨이 내게 요람을 맡겼다는 건 사실이야. 내가 직접 받았으니까.” “그 뒤에는?” “탑이 무너졌어. 나는 너를 데리고 숲으로 도망쳤고, 다시 돌아갔을 땐 입구가 막혀 있었지.” 나는 나이라를 보았다. “왜 내가 그 기억을 잃었나?” “아이였으니까 잊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 경우에는 기록실이 그날의 시간을 따로 묶어 두었을 가능성도 있지.” 나는 머릿속의 빈 공간을 느꼈다. 내 기억을 되찾기 위해 누군가의 말을 모두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아르헨. 너는 지금 어디 있지?” 시계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일곱 번째 문 너머. 출생 등록소의 마지막 방.” “살아 있나?” “살아 있다는 말이 어느 시간의 상태를 뜻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철학을 묻는 게 아니다.” “알아.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시간을 갚고 있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무슨 빚?” “내가 종을 멈춘 뒤로 장치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시간을 빌려 왔어. 그 빚을 갚으려고 내가 문 안에 남았지.” 마렌이 급히 기록판에 적었다. “시간의 빚…… 전하, 이 장치가 무엇을 봉인하고 있는지와 관계가 있을 수 있어요.” “그렇겠지.” 나는 시계 속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직 그 방에 있다면 기다려라. 내가 가겠다.” 여자는 짧게 웃었다. “네가 나를 구하러 오는구나.” “싫으냐?” “아니. 다만 혼자 오지 마.” “왜?” “혼자 들어오는 사람은 가장 쉽게 자기 시간을 빼앗기거든.” 목소리가 끊겼다. 유리 안쪽의 풍경이 꺼지고, 시계는 바닥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 보관실로 가기 전 나는 시계 유리 속 기록을 다시 재생해 달라고 했다. “아르헨. 내가 묻는 질문을 불편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물어보겠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어보렴.” “그 아이들이 모두 위험했다면, 어째서 네가 처음부터 종을 치는 일을 맡았지?” 긴 침묵이 흘렀다. “처음에는 종이 아이들을 구한다고 믿었어. 이름을 정해 주면 굶주리거나 버려질 아이들을 미리 찾아 보호할 수 있다고 들었거든.”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름을 적는 것과 삶을 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지. 그런데 우리는 그 차이를 늦게 알았어.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이 어느 순간 아이들을 분류하는 명령이 됐고.” 나는 창밖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일도 비슷했다. 전쟁을 끝내겠다며 다른 도시를 정복했고, 안전을 보장한다며 사람들의 이동을 금지했다. 좋은 결과를 약속하면 수단도 정당해진다고 믿었다. “네가 직접 피해를 준 아이도 있었나?” “있었어.” 그 말은 너무 조용해서 더 무거웠다. “그 아이들이 널 용서했나?” “그걸 모르겠구나. 내가 여기 갇히기 전에 사라진 아이도 많았으니까.” 나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도 네가 옳은 일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 하지만 왜 지금까지 그 문을 붙잡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그래. 그거면 충분해.” 나는 기억 하나를 더 확인했다. 아르헨의 손에 남은 화상과 시계 바늘의 파손 위치가 같은 방향이었다. 나이라가 그때 그녀의 손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환영인지 진실인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검증할 수 있는 작은 사실들이 하나씩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 우리는 시계 아래에 잠시 쉬기로 했다. 마렌은 기억 기록을 복사했지만 원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세브는 매듭이 풀리지 않았는지 살폈고, 나이라는 무명탑에서 가져온 손수건을 품에 넣었다. 나는 벽에 앉아 레온의 천 조각을 만졌다. 내가 누군가의 아이였다는 사실. 그 아이를 지키려던 사람이 여전히 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카르딘.” 나이라가 내 옆에 앉았다. “혹시 실망했니?” “무엇에?” “아르헨이 널 낳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모른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도 잘 모르겠으니까.” 나이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다른 아이들이 더 사라졌을 수도 있겠지.” “그래.” 나는 먼 시계들을 바라보았다. 아르헨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었다 해도 모두를 구하지 못했다. 그 실패 때문에 문 안에 남았을 것이다. 나는 비슷한 실패를 많이 했다. 정복한 도시에서 굶주린 사람을 보았고, 내 법 아래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자들을 뒤늦게 만났다. 그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돌아갈 수는 있다. “나이라.” “응.” “그 사람이 나를 자기 아이라고 불렀다면, 나도 그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무엇인데?” 나는 생각 끝에 말했다. “그동안 혼자 버티느라 배고프지는 않았는지.” 나이라는 웃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 질문이라면 아르헨도 놀랄 거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각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직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시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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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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