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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22화
PAYLUA ORIGINAL · 제22화

22화. 마왕의 출생증명서는 빈칸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5,151자

오프라인 책장
세상에는 태어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제까지는. 왕이든 거지든 태어났으니 살아 있는 것 아닌가. 서류 한 장이 없다고 누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인간들은 도장을 받으려고 며칠씩 줄을 선다. 하지만 신성 기록실의 장부에는 다른 규칙이 있었다. 태어난 사람도 기록에서 지울 수 있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배정할 수도 있다. 나는 마렌에게 말했다. “내 출생증명서를 만들어라.” 그녀가 펜을 든 채 굳었다. “전하. 없는 내용을 꾸며 적으라는 뜻입니까?” “그럴 리가. 없는 것은 없다고 쓰자.” “그럼 출생일과 장소는 어떻게 하죠?” “미상.” “부모 이름은요?” “미상.” “확인자 서명은…….” “내가 하면 안 되느냐?” 마렌이 긴 한숨을 쉬었다. “자기 출생의 증인이 되실 수는 없습니다.” 나는 억울했다. 정복한 성이 몇 개인지는 내 말 한마디면 역사로 기록해 주면서, 정작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니. “그럼 목격자가 필요하군.” “네. 아르헨과 나이라의 증언이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마렌이 내민 빈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가장 낯선 왕명 같았다. '아직 모름.' *** 나이라는 오래된 그림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 안에는 무명탑에서 보관하던 손수건, 검은 버드나무 씨앗, 낡은 지도가 들어 있었다. 지도에는 시계바늘처럼 길게 뻗은 강줄기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어디지?” “북부 시각시.” “도시 이름이 시각시라고?” “옛날에는 그렇게 불렀어.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졌지.” 나는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쳤다. 마왕령 북쪽의 검은 강과 인간계 접경의 백색 분지가 만나는 곳이었다. 내가 수십 차례 군대를 보내 감시했던 지역인데도, 그 사이에 도시가 있다는 기록은 없었다. “도시 전체를 지웠단 말인가?” “실제로 없어진 건 아니야. 사람들이 찾아가는 법을 잊은 거지.” 그녀는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아르헨은 그 도시에서 종을 관리했어. 정확히는 종을 울리는 시간이 틀리지 않게 기록하는 사람이었지.” “종이 언제 울려야 하는지는 누가 정했나?” 나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하지 않았어. 다만 어느 날 종이 울릴 때마다 어린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나는 유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흰 종 수도원에서 말을 잃었던 소년. 그 아이는 아직 작은 빛의 판으로 생각을 전한다. 그 판에는 수도원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아르헨이 종을 멈춘 날이 곧 내가 발견된 날인가?” “그래.” “그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널 처음 본 날부터 아이였다고 기억해.” “그럼 내가 태어났다는 건 분명하군.” 나이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건 네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나는 조금 기뻤다. 출생증명서에 적을 증언이 하나 늘었으니까. *** 바르톨은 지도를 보더니 당장 군단 셋을 동원하자고 했다. “잊힌 도시라면 길을 뚫으면 됩니다. 성벽을 허물고 도로를 깔면 누구나 찾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로를 깔 장소부터 모른다.” “그럼 모든 북부 땅에 도로를 깔겠습니다!” 그의 자신감은 무서울 정도였다. 마계 전체의 토목 예산을 없앨 준비가 된 장군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돈으로 폐광촌 아이들 급식부터 다시 열어라.” “이미 열었습니다. 전하.” “그럼 다리를 고쳐라.” “고치고 있습니다.” “그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바르톨이 으쓱했다. “전하께서 조금씩 바꾸신 일을 이제 제게 맡겨 주셔도 됩니다.” 가슴 한쪽이 묘하게 뭉클해졌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이 감동을 없앴다. “그리고 왕실 유아를 위한 전용 도로도 검토 중입니다.” “그건 당장 중단해라.” 레온이 기어 다니기도 전에 전용 도로부터 깔 생각이라니. 과연 충직한 부하다. *** 우리는 무명탑의 금속판을 다시 조사했다. 일곱 개의 구멍은 종을 멈추던 밤에 금이 가 있었다. 마렌은 그 주변의 마력 잔재를 확대해 아주 작은 글자들을 찾아냈다. '기억 보관 / 시간 고정 / 증언 대체 / 출생 등록.' 나는 마지막 글자를 짚었다. “출생 등록이 종을 울리는 일과 무슨 상관이지?” “등록된 순간을 기준으로 사람의 미래가 계산되는 구조일 수 있어요.” “미래가 계산된다?” “예언이라 부르는 것이 실제로는 선택을 강요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확정하려면 시각시에 남은 원본을 봐야 합니다.” 마렌이 금속판을 뒤집었다. 일곱 구멍 주변에는 가느다란 선 열세 개가 있었다. 한 선 끝에는 희미한 숫자 '영', 다른 선 끝에는 '열셋'이 새겨졌다. 카르딘, 후보 영. 레온, 후보 열셋. 나머지 열한 개가 누구를 뜻하는지는 몰랐다. 나는 유진이 그린 별과 레온의 낡은 천 곰을 바라보았다. “후보라는 말 대신 이름을 적는 게 좋겠군.”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름을 몰라요.” “그럼 그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까지 자리를 비워 두자.” 나는 장부에 빈칸 열한 개를 만들었다. 과거의 나라면 빈칸이 있는 작전표를 결코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겠으면 대충 추정치를 채워 넣어서라도 완성했다고 했겠지. 이제는 비워 두는 편이 낫다는 것을 배웠다. 엉뚱한 이름을 적는 순간, 다른 사람의 삶을 다시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 *** 사람을 기억에서 지우는 자들을 상대하려면, 내 성부터 서로의 기억을 보존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미아와 엘라, 나이라를 불러 아이 방의 기록장을 따로 만들자고 했다. “레온에 관한 모든 것을 적으시려고요?” 미아가 물었다. “모든 것까지는 아니다. 아이가 아팠던 날이나 좋아했던 놀잇감, 처음 본 사람 정도는 남겨 두고 싶다.” 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이의 사생활이 될 일은 함부로 공개하지 않기로 해.” “사생활?” “나중에 레온이 커서 싫다고 할 수도 있잖니. 아이가 어리다고 해서 영원히 어른들의 기록 속에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군. 그럼 열람 권한도 정하자.” 바르톨이 즉시 장부를 폈다. “국가 기밀 등급으로 지정하겠습니다!” “아니다. 레온에 관한 정보는 안전을 위해 필요한 사람만 알고, 레온이 자라면 본인이 결정하게 해라.” 바르톨의 펜이 멈췄다. “아이가 자란 뒤 국가 기밀 등급을 바꿀 수 있다고요?” “자기 기록이니까.” 그는 감탄한 얼굴로 메모했다. “전하, 왕실기록 개혁의 역사적인 날입니다.” 나는 그 기록에서 내 이름을 조금 작게 쓰라고 했다. 그날 저녁 레온은 천 곰의 귀를 물고 있었다. 미아가 부드럽게 인형을 빼내려 하자 녀석은 두 손으로 버텼다. “그건 먹는 게 아니다.” 레온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왕실 기밀을 훼손하는 중인가?” 미아가 웃었다. “배고플 시간이네요.” 나는 저녁 식사 시간을 기록장에 적고 펜을 덮었다. 내가 찾는 거대한 비밀과 이 작은 식사 시간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다. 기록이란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해서도 쓰이지만, 돌보기 위해서도 쓰이니까. *** 저녁 무렵 마렌은 작은 서류 뭉치를 가져왔다. “전하, 시각시와 관련된 이름을 찾다 다른 출생 기록들을 확인했습니다.” 그녀가 펼친 종이에는 세 가족의 진술이 있었다. 한 사람은 아이를 낳았는데도 관청에서 출생한 적이 없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태어나지 않은 아들의 군역 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마지막 가족은 두 이름으로 서로 다른 학교에 등록된 한 아이를 찾고 있었다. 나는 보고서를 읽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단순한 위조인지, 기록실의 개입인지 알 수 있느냐?”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족이 원한다면 별도로 조사해야 해요.” “그럼 먼저 묻자. 우리가 도와도 되는지.” 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보고서 밑에 짧게 적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확정하지 말 것. 사람은 기록의 오류보다 먼저 존재한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내 법률 문장이 조금 바뀌고 있음을 알았다. 옛날에는 장부에 적히지 않은 사람은 병력이나 세금에서 제외할 대상이었다. 이제는 먼저 왜 장부에 없었는지 물어야 할 사람이었다. 바르톨이 보고서를 살폈다. “전하. 모두 확인하려면 인력이 상당히 필요합니다.” “나도 안다. 그래서 내 개인 원정과 별개로 진행해라. 이 사람들이 내 과거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바르톨의 시선이 잠깐 부드러워졌다.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동안 조사할 사람들의 수를 정리해 두겠습니다.” 나는 서류를 돌려주었다. 레온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가족들의 사연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듣고도 무심코 지나쳤을지 모른다. 한 아이의 이름을 지키는 일이 열 사람의 이름까지 이어지는 길이라면, 그 길은 생각보다 넓었다. *** 밤이 되자 시각시 지도가 움직였다. 강줄기 안쪽에서 눈에 보이지 않던 가느다란 길이 떠올랐다. 그것은 북방의 얼음 협곡을 지나 시계 모양의 호수에 이르렀다. 마렌이 숨을 들이켰다. “전하, 그곳은 지도상에 물이 없는 장소입니다.” “혹시 기록에서 물도 지웠나?” “그렇다면 실제 물은 그대로 남아 있겠죠. 위치를 알아보려는 사람만 길을 놓치는 겁니다.” 나는 지도 끝의 작은 글자를 읽었다. '일곱 번째 쉼표. 자정과 새벽 사이의 없는 한 순간.' 나이라가 말했다. “거기가 아르헨이 종을 멈춘 곳이야.” “그럼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겠군.” 마렌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시각이 없는데 어떻게 찾습니까?” 나는 레온을 돌아보았다. 아이는 잠든 척하다가 미아가 움직이자 두 눈을 번쩍 뜨고 있었다. “시계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재자.” “뭘로요?” “사람이 기다리는 시간으로.” 미아가 웃었다. “그걸로는 분 단위 계산이 안 되는데요.” “알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를 데려가야지.” 나는 마렌에게 북부 탐사 준비를 지시했다. 이번에는 군대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도시를 찾아가는 첫 번째 임무는 점령이 아니라, 그곳에 아직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지도 아래쪽에 그때까지 없었던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출생 등록소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세 번 읽었다. 내가 태어난 시각이 보관된 곳이 있다면, 거기에는 아르헨의 선택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다른 아이들의 시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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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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