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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20화
PAYLUA ORIGINAL · 제20화

20화. 종을 치지 않는 밤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7,081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마왕이다. 내 이름은 카르딘. 사람들이 이름을 잊어버리는 밤에, 내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이었다. “카르딘.” 나는 레온을 안은 채 말했다. “카르딘. 그리고 이 아이는 레온이다.” 아이의 손가락이 내 옷깃을 붙잡았다. [후보 영: 선택권 이전 거부.] 금속판에는 아직 붉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단 하나의 선택.'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레온의 삶을 내 손안에 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무명탑의 금속판이 하얗게 빛났다. 나이라가 숨을 삼켰다. “그 판을 가져온 이유를 알겠어.” “말해라.” “그건 종을 멈추는 장치가 아니야. 종을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찾는 열쇠지.” “무슨 소리냐?” “선택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보호자. 기록실은 그런 사람을 예측하지 못했어.”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려운 말은 나중에 해라.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되지?” 나이라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내려놓을 수 있겠니?” 나는 레온을 조금 더 단단히 안았다. “그건 무슨 뜻이지?” “네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장치가 네 의사만 듣게 돼. 아이에게 선택을 남겨 주려면, 잠깐이라도 네 손을 놓아야 해.” 나는 아이를 보았다. 레온은 내 망토 끝을 쥐고 있었다. 작고 약한 손이었다. 내가 조금만 힘을 주면 얼마든지 붙잡아 둘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손을 놓는 것이 검을 드는 일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미아.” “네, 전하.” “레온을 안아 주겠느냐.” 미아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나는 손을 천천히 뗐다. 레온은 잠깐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미아의 품에서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어도 아이는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레온을 내려놓은 손은 이상하게 허전했다. 나는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아이가 붙잡고 있던 옷깃의 무게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이라는 내 옆에 섰다. “잘했어.” “무엇을?”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녀는 웃었다. “어릴 때의 너는 내 손을 놓으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어.”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랬다고?” “네가 잠들 때 손을 빼면 금세 울었지.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손을 잡지 않아도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노래를 불렀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무명탑의 자장가가 떠올랐다. 그 노래는 종의 명령을 피하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겁에 질린 아이 하나를 안심시키는 노래였던 것이다. “마법보다 먼저 노래가 있었군.” 나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이는 마법을 배우기 전에 사람의 목소리부터 듣잖니.” 나는 웃었다. “내 노래는 형편없다.” “그건 사실이야.” “너무 쉽게 인정하는군.” “하지만 레온은 그 노래를 듣고 잠든다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이라는 내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럼 충분한 거야.” 그녀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도 할 일이 있는 것이다. *** 성의 정원으로 내려가자 혼란이 더 커져 있었다.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면서도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어떤 이는 자기 직업을 잊었고, 어떤 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기억하지 못했다. 바르톨은 병사들을 모아 한 사람씩 데리고 온 사람과 다시 만나도록 하고 있었다. “전하!” 그가 외쳤다. “기록 마법이 방어 결계를 통과했습니다. 칼로 막을 상대가 없습니다!” “알고 있다.” 나는 마렌에게 손짓했다. “유진이 적어 둔 이름들을 가져와라.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려 줄 수 있는 물건도 가져오게 해.” “장부만으로 충분합니까?” “장부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이름이 남지 않겠느냐.” 우리는 정원 중앙에 긴 탁자를 놓았다. 마을에서 온 이들은 서로를 소개했다. 누군가는 오래된 편지를 꺼냈고, 누군가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펼쳤다. 장부가 틀려도 가족의 목소리와 친구의 기억은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다. “나는 도르다.” “나는 엘라야.” “나는 미아예요.” 그러나 점차 목소리가 커졌다. 이름이 하나씩 돌아왔다. 유진은 빛의 판에 잃어버린 친구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 옆에서는 나이라가 오래된 손수건을 펼쳤다. 기록실이 지운 이름들. 우리는 그 이름을 다시 불렀다. 나는 검을 뽑지 않았다. 오늘 밤의 전투는 칼로 해결할 수 없었다. *** 하늘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종소리였다. 멀리 사라졌던 붉은 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표면에는 수많은 문자들이 떠다녔다. 마렌이 관측판을 올려다봤다. “전하, 붉은 별이 종이 아니라 기록 저장소였어요. 종소리는 그곳에서 내려오는 명령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명령을 내리는 자가 따로 있겠군.” 바람을 타고 목소리가 들렸다. [기록된 선택은 수정될 수 없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이레브보다 낮고, 훨씬 오래된 울림을 지녔다. [후보 영. 예정된 역할을 이행하라.] “내 역할이 무엇이지?” [후보 열셋을 완성하라.] “완성?” [후보 열셋은 종말의 봉인을 위한 칼이 된다. 그 칼은 후보 영을 베어야 한다.] 정원 전체가 조용해졌다. 나는 레온을 떠올렸다. 스무 해 뒤 내 가슴을 꿰뚫었던 성검. 그날 레온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이유. 혹시 그 아이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는 위를 향해 말했다. “왜 나를 죽여야 하지?” [후보 영은 첫 번째 봉인의 핵이다. 후보 열셋은 마지막 열쇠다. 예정된 두 선택이 충돌할 때 종말은 지연된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동안 신들은 레온을 용사로, 나를 마왕으로 불렀다. 선과 악이라는 말은 그 역할을 설명하는 데 편리했다. 하지만 실상은 서로에게 칼을 겨눌 두 사람을 미리 정해 놓은 장치였다. “그럼 우리 둘은 처음부터 적이 아니었군.” [당신들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은 지겹도록 들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레온의 미래를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를 죽이도록 키우지도 않는다.” [그 경우 봉인은 해제되고, 종말이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겠다.” [그러한 선택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나는 웃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거지.” 하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후보 영. 당신의 선택은 봉인을 위태롭게 한다.] 나는 반문했다. “그 봉인이 무너질 때 누가 죽는지부터 말해라.” [세계의 존속에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인지 묻고 있다.” [정확한 계산은 공개할 수 없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확한 계산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자들이 아이 하나의 삶에는 아주 정확한 날짜와 역할을 적어 놓았다. “놈들이 얼마나 오래 이런 일을 했지?” 마렌이 관측판을 살폈다. “전하. 과거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후보 영과 열셋 사이에는 반복된 관측 흔적이 있어요.” “그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선택도 있었을까?” 그녀는 머뭇거렸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기록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어요.”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일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면서 누군가의 삶을 결정하는 자들이 문제였다. “계산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나는 유진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들어 보였다. “이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록했다. 그들의 이름을 되찾게 할 것이다. 그리고 레온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레온이 자라서 말하게 할 거다.” [그렇게 되면 종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지 모르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너희가 옳다는 증거도 없다. 지금까지 보여 준 것은 거짓말과 강요뿐이니까.” 하늘의 목소리가 잠시 멎었다. 나는 불현듯 전생의 레온을 떠올렸다. 성검을 쥔 청년은 마지막 순간에도 주저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보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슬픔이 더 컸다. 그 청년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같은 선택을 다시 강요하지 않는 일이다. “레온.” 나는 멀리 아이 방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네가 칼을 들지 않아도 되는 길을 찾아보자.” *** 금속판의 마지막 구멍에서 붉은 빛이 치솟았다. 마렌이 소리쳤다. “전하! 기록실이 다시 강제 회수를 시도합니다!” 나는 금속판을 들었다. 여섯 개의 구멍은 이미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마지막 구멍이 열리면 장치가 완성된다. 하지만 나이라의 자장가에는 마지막 음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노래를 불러라!” 바르톨이 입을 벌렸다. “전하, 제 노래 실력은…….” “알고 있다. 그래도 불러!” 먼저 미아가 시작했다. 엘라가 이어 부르고, 나이라가 오래된 가락을 덧붙였다. 유진은 음을 내지 못했지만 판을 흔들어 박자를 맞췄다. 정원에 모인 사람들도 차츰 노래를 따라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옆사람이 음을 알려 주었다. 음을 틀려도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금속판의 마지막 구멍이 떨렸다. 마지막 음을 찾을 수 없는 장치. 끝을 정할 수 없는 노래. 누군가가 정해 놓은 박자에서 벗어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 나는 문득 이해했다. 이 장치는 완벽한 노래를 기록하도록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똑같이 부르면 마지막 음이 완성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 노래는 제각각이었다. 한 사람은 느리게 부르고, 다른 사람은 빠르게 불렀다. 바르톨은 세 음이나 틀렸고, 엘라는 중간에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아이들은 가사를 알지 못해 흥얼거리기만 했다. 그럼에도 노래는 이어졌다. 금속판에 금이 갔다. [기록 불일치.] [예정 종결 실패.] [새로운 선택 관측.] 그 순간 붉은 별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하늘의 종소리가 멎었다. *** 새벽빛이 정원에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울고 웃었다. 어떤 이는 잃었던 기억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바르톨에게 명령했다. “오늘 밤의 일을 기록해라.” “어떤 제목으로 적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종을 치지 않은 밤.” “전하의 승전일로 지정하겠습니다!” “그러지 마라.” 바르톨이 눈을 깜빡였다. “왜입니까?” “오늘은 내가 혼자 이긴 날이 아니다.” 나는 정원에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낸 날이다.” *** 위기가 끝난 뒤에도 아무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가져온 음식과 물건을 다시 챙겼다. 낯선 길을 혼자 걷기 두려운 이는 함께 온 사람을 기다렸다. 잊었던 이름이 돌아오자 안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한동안 말을 잃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모두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은 쉽게 지워지는 일이 아니니까. 대신 바르톨에게 안전한 귀가를 돕게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성에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엘라는 기억 혼란을 겪은 이들의 상태를 살피며 쉬게 했다. 미아는 피곤해 쓰러질 듯한 하인들에게 교대 시간을 다시 정해 주었다. 마렌은 붉은 별이 사라진 위치를 기록했다. 모두가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이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성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도르가 내게 다가왔다. “마왕님.” “무슨 일이지?” 그는 손에 작은 돌패를 들고 있었다. '도반.' 죽은 형의 이름이었다. “오늘 사람들이 이름을 잊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걸 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돌패를 바라보았다. “도움이 되었느냐?” “네. 제 형의 이름을 부르니까 제 이름도 기억났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오늘 제가 옆사람을 잡아 줬습니다. 예전에는 누구도 저를 잡아 주지 않았는데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도르가 놀라 나를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방 웃었다. 누군가 나를 믿기까지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그 웃음은 오늘 밤의 승리가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아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레온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미아의 품에서 작은 손을 움직이다가 내가 다가가자 눈을 떴다. “아.” 나는 웃었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손을 뻗었다. 나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레온이 붙잡았다. “하지만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다릴 생각이다.” 얼마 후, 아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작은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 레온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미래에 어떤 일을 강요받을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해결 방법을 모른다.' '그래도 오늘 밤은 아이가 나를 죽이도록 키우는 대신, 내가 살아서 아이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펜 끝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별은 사라졌다. 그러나 먼 하늘에 아주 작은 검은 점이 남아 있었다. 그때 책상 위에 검은 봉투 하나가 나타났다. 누군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종이의 결 사이에서 스스로 접혀 나온 것 같았다. 봉투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카르딘.'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오래된 손글씨 한 줄. '내 아이에게.' 나는 숨을 멈췄다. 나이라가 남긴 글씨와는 달랐다. 봉투를 열자 얇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네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면, 이제 네가 왜 태어났는지도 들을 준비가 되었겠구나.' 마지막에는 서명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초대 종지기, 아르헨.' 그 이름을 읽는 순간, 지워진 기억 어딘가에서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든 레온을 내려다보았다. 이 아이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찾기 시작한 길이, 마침내 내 시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다음에 만나야 할 적은 천계의 기록관이 아닐 것이다. 나를 이 세상에 데려온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처음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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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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