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별은 가까이에서 보면 아름답지 않았다.
멀리서는 밤하늘의 보석 같았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낡은 종과 끊어진 톱니, 이름표가 붙은 수많은 유리 상자가 있었다. 사람들의 시간을 모아 만든 거대한 창고였다.
나는 그 앞에 섰다.
“베리안!”
하얀 의복을 입은 집행관이 고개를 돌렸다. 태양 가면의 가장자리는 금이 가 있었다. 그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장부 한 장을 펼쳤다.
“마왕의 최후는 이미 계산되었다. 그 죽음이 수많은 전쟁을 종결했다.”
“그 전쟁을 누가 시작하도록 만들었지?”
“모든 전쟁에는 선택이 있었다. 나는 결과를 유지할 뿐이다.”
“유지하려고 남의 오늘을 빼앗는군.”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른 길을 택하면 미래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나는 그를 비웃으려다 멈췄다. 그 말에는 단순한 협박 이상의 두려움이 있었다. 베리안은 많은 것이 무너지는 장면을 본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
“알면 누구나 자신만은 제외해 달라고 요구할 테니까.”
“그 요청을 들은 뒤 결정하면 되잖나.”
“그 시간조차 없을 때가 있다.”
베리안은 손을 들었다. 붉은 별의 상자들이 하나씩 빛났다.
[보육관 12호실: 최초 분기점]
[보호 시도 4건 중 기록상 성공: 3]
[미확인 제4인: 시간 고정 열쇠]
나는 숨을 멈췄다.
네 번째 아이.
그 아이가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다.
***
성벽 쪽에서 리엔의 통신이 들렸다.
'전하, 세린에게서 답장이 왔어요. 본인이 허락한 내용만 전달합니다.'
“읽어라.”
'네 번째 문은 누가 닫은 게 아니야. 우리가 함께 닫았어. 그때 이델은 먼저 나가려는 게 아니라, 뒤에 남은 아이들을 기다리겠다고 했어.'
나는 눈을 감았다.
기억 속에 어렴풋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아이들의 손으로 만든 나무문. 밖에서 울리던 경보. 바닥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억지로 밀어 열려고 했고, 우리 중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장면이 실제 기억인지, 방금 들은 말에 영향을 받은 상상인지 알 수 없었다.
“세린에게 증언을 부탁한다고 전해라. 원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멈춘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내가 기억하는 부분만 말할게. 문이 닫힌 건 누군가를 가두려는 선택이 아니었어. 다른 출구가 만들어질 때까지 아이들의 시간을 붙잡으려는 선택이었지.'
베리안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
“왜?”
“보육관의 마지막 봉인은 중앙 관측국에서 설치했다. 아이들은 작동 원리를 몰랐다.”
“아이들이 원리를 모르더라도 문을 잡을 수는 있지.”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모르고 있었던 건 아이들의 선택이다.”
***
한편 성 안에서 이델의 통신이 이어졌다.
'전하, 원본 그림을 다시 봤습니다. 제 이름이 지워진 게 아니라 제가 직접 가렸어요.'
“왜?”
'찾아오는 사람들이 네 번째 아이만 데려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군지 잊으면 쫓아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글씨라는 건 확인했어요. 지금의 제가 그 선택을 계속 받아들일지는 새로 정하고 싶습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라.”
'그럼 지금은 문을 열겠습니다. 안의 사람들에게 먼저 물은 뒤에요.'
“좋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베리안은 이미 손바닥에 붉은 빛을 모으고 있었다.
“제4인의 권한을 다시 열면 나머지 셋이 지워질 수 있다.”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렇겠지.”
“그럼 선택은 하나다!”
“아니.”
나는 검끝으로 그의 앞에 떠 있는 장부를 가리켰다.
“네 장치가 정한 선택은 하나겠지. 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는 데 필요한 사람은 넷보다 많다.”
그 순간 푸른 별의 빛이 붉은 별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이델과 세린, 어린 영, 나의 의사가 서로 다른 경로로 도착했다.
[보육관 12호실: 제4인 독립 의사 확인]
[기억 강제 열람: 거부]
[보호 시도 다중 증언: 접수]
베리안이 한 걸음 물러섰다.
“기계가 증언을 받는다고 믿는가?”
“믿는 건 기계가 아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유리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저 상자 안에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나는 그 틈으로 손을 넣지 않았다. 유리 안에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 있었다. 맨 아래층 상자에는 누군가 첫 아이를 안았던 날의 짧은 기록이 들어 있었고, 그 위에는 병실에서 깨어난 노파의 웃음소리가 남아 있었다.
모두 무명일의 재계산 때문에 지워질 뻔한 하루들이었다.
“이걸 돌려주는 게 가능한가?” 내가 물었다.
베리안은 잠시 살핀 뒤 말했다.
“강제로 덮어씌우면 안 된다. 같은 시점의 기억이 이미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각자가 확인하고 원할 때 되찾을 방법을 만들어라.”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안다. 그래서 너도 일하게 될 거다.”
그는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날 처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정할 문제가 아니다. 먼저 무명일을 멈춰라. 그다음 네가 한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답하게 될 것이다.”
나는 상자들 사이에서 작은 나무 조각을 발견했다. 레온이 가지고 놀던 블록과 닮은 모양이었다. 그 끝에는 네 개의 점이 찍혀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만든 네 번째 문의 손잡이였다.
손으로 만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모양과 위치를 도면에 적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커서 자기 물건을 돌려받을 때까지 남겨 둘 수 있도록.
유리 상자 한쪽이 갈라졌다. 안에서 무명일의 집행 기록이 흘러나왔다. 기록에는 지워진 사건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지우지 말라고 남긴 서명도 빼곡했다.
베리안은 그것을 보며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는 그저 결과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라고 부른 것 아래에는 끝내 사라지지 않은 목소리들이 있었다.
“이 기록을 공개하면 혼란이 온다.”
“이미 혼란은 왔다.”
나는 손을 뻗었다.
“이제 누구의 혼란인지 숨기지 말자.”
그때 붉은 별 중심에서 경보가 울렸다.
[비상 정산 실패]
[상위 장치, 기록 자동 재배열 개시]
베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명령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이 있겠군.”
제19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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