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나팔로 시작되는 법이다.
그러나 그날 밤, 무명일은 시계 소리로 시작되었다.
딸깍.
마왕성 북쪽 종루에서 분침이 한 칸 움직였다. 동시에 일곱 마을에 걸린 시계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아침으로, 어떤 것은 어제로, 어떤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로.
나는 성벽 위에 올라섰다.
어둠 속에서 마을마다 불빛이 반짝였다. 저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알고 있었다. 이름까지 모두 알지는 못해도, 그들이 오늘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잃었는지 일부는 들었다.
“전하, 명령을!” 바르톨이 외쳤다.
옛날 같았으면 '막아라' 한마디로 끝냈을 것이다.
이번에는 준비된 신호를 확인했다.
“첫 번째 종을 울려라. 대피가 필요한 곳에는 흰 깃발을,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에는 파란 등불을!”
“알겠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은 사람들을 붙잡아 끌어내지 마라. 위험을 설명하고 이동을 도와라.”
바르톨은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멀리 호수 쪽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곧 산비탈 너머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종이 화답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시간을 확인하는 신호였다.
마렌이 수정판을 펼쳤다.
“일곱 곳 모두 응답했습니다. 다만 네 번째 마을의 종소리가 일 분 늦습니다.”
“연결이 끊긴 건가?”
“아뇨. 종을 치던 분이 추위에 손을 다치셨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치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줄의 보고가 좋았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중 누가 쓰러져도 오늘을 함께 지킬 수 있다는 것.
***
하지만 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왔다.
노을항의 호수 위에 거대한 붉은 원이 나타났다. 원 안에서는 배들이 같은 위치를 반복해서 지나갔다. 배 한 척이 부두에 도착했는데, 눈을 한 번 깜박이자 다시 강 한가운데로 밀려났다.
“노가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페룬의 목소리가 통신구에서 들렸다. “배 안의 사람들은 뒤로 돌아간 걸 알아채지 못합니다!”
미래의 레온이 검을 뽑았다.
“제가 갑니다.”
“혼자 가지 마라. 이델에게 통로 좌표를 물어라.”
“함께 오시겠습니까?”
나는 성벽 아래, 사람들이 대피하는 모습을 살폈다.
“나는 이곳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대신 네가 판단해라.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면 돌아와라.”
미래의 레온이 숨을 골랐다.
“예전에는 제가 돌아오란 말을 들으면 명령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은?”
“걱정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나는 짧게 웃었다.
“네가 맞다.”
청년은 성검의 빛을 길처럼 펼쳤다. 이델이 그의 옆에서 도면을 펼쳤고, 둘은 시간의 틈을 향해 달려갔다.
***
나는 성벽 아래에 검은 마력 기둥 일곱 개를 세웠다. 각 기둥은 서로 다른 마을의 종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시계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신호로 현재를 고정하는 장치였다.
첫 번째 기둥이 안정됐다.
두 번째도.
세 번째에서 균열이 났다.
그 순간 마왕성 아래쪽 마당에서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레온과 이안, 영이 미아 곁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종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왜 여기 나왔느냐? 안쪽이 더 안전하다.”
“미아가 안전한 마당까지만 괜찮대.”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판단했습니다. 실내에서는 시계가 거꾸로 흐르지만, 이 마당은 전하의 결계와 독립된 지면입니다.”
레온이 종을 들어 보였다.
“우리도 오늘이 여기 있다고 알려 줄 거야.”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아이들은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신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오늘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종을 치되, 위험해지면 바로 미아와 들어가라.”
“응!”
세 아이가 종을 울렸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둥의 흔들림이 한순간 멎었다.
아마 종 자체에 대단한 마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독립된 사람들의 의사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현재를 확인하자, 장치가 단일한 시간으로 모두를 밀어 넣지 못한 것 같았다.
일곱 마을의 종소리가 한 박자씩 어긋났다. 그중 한 곳은 너무 빨랐고 다른 한 곳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겨우 한 번씩 울렸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불완전한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법 기둥은 그 어긋난 박자 덕분에 무너지지 않았다.
마을마다 다른 오늘을 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지금 저녁밥을 먹고 있었고, 누군가는 병상에서 깨어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오늘 처음으로 친구에게 사과했을 것이다. 전부 같은 시계로 맞추지 않아도 서로의 삶은 이어질 수 있었다.
“전하, 박자를 통일합니까?” 마렌이 외쳤다.
“아니다. 각자의 박자를 지켜라!”
바르톨이 통신구 너머에서 크게 대답했다.
“전군! 현장 지휘관의 종소리를 따라라!”
곧이어 북쪽 길을 지키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는 종을 칠 사람이 없습니다. 부상자 한 명을 돌보고 있습니다.'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그 사람부터 돌봐라. 종은 다른 사람이 칠 수 있다.”
몇 초 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칠게요. 저는 이 마을의 빵집 주인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종이 울렸다.
누가 전사인지, 누가 평범한 사람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그 시간을 증언할 수 있었다.
리엔이 외쳤다.
“일곱 마을의 현재 시점이 서로 독립적으로 확인됐어요! 하지만 중심 명령은 살아 있습니다!”
“어디지?”
“제로 관측소를 지나 북쪽 하늘. 붉은 별의 집행 중심입니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별의 한쪽이 갈라지며 커다란 문이 드러났다.
문 뒤에는 누군가의 형체가 있었다.
넓은 어깨. 희고 긴 의복. 얼굴 전체를 가리는 태양 문양의 가면.
[집행관 베리안. 예언 안정화 절차 수행 중.]
나는 입술 끝을 올렸다.
“드디어 사람 얼굴을 보이는군.”
“전하, 저건…….” 리엔이 말을 잇지 못했다.
베리안의 목소리가 별에서 울렸다.
[마왕 카르딘. 기존 미래를 거부한 대가를 이제 납부하라.]
나는 검을 뽑았다.
“값을 매길 사람이 따로 있겠지.”
그리고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내가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19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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