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죽었다가 스무 해 전으로 돌아온 내가 할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귀신이 있다면 적어도 새벽 두 시에 관측소의 난로를 피우고 출입 장부에 잉크를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자가 있었다는 뜻이군.”
나는 북부 제로 관측소의 문턱에서 말했다.
높은 산등성이에는 겨울비가 얼어붙어 있었다. 바람이 철제 풍향계를 돌릴 때마다 녹슨 새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지난번에 이곳에 왔을 때는 폐허 같았지만, 오늘은 굴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왔다. 내가 문고리를 잡자 손바닥에 미지근한 온기가 닿았다.
바르톨은 즉시 검을 뽑았다.
“암살자일 수도 있습니다. 전하,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검을 넣어라. 들어가 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렇지만 암살자가 문을 따뜻하게 데워 놓는 법도 있습니다.”
“그런 전술은 처음 듣는다.”
“지금 지어 냈습니다.”
나는 그를 밀어내고 문을 열었다.
안쪽은 뜻밖에 정돈되어 있었다. 낡은 별자리 지도는 핀으로 고정돼 있었고 바닥에는 누군가 젖은 신발을 벗어 놓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탁자 위에 작은 주전자 두 개. 하나에는 차가, 다른 하나에는 꿀을 탄 미지근한 물이 들어 있었다.
“한 명이 아닌가?”
마렌이 잉크가 마르지 않은 방문기록을 살폈다.
[금일 출입: 1명]
[관측 장치 접속: 감사관 권한]
[요청 대상: 세린의 출구 시험]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대신 종이 가장자리에 손으로 쓴 메모가 있었다.
'멈출 수 있으면 여기서 멈춰라.'
내가 남긴 경고는 아니었다.
“계산판을 만진 사람이 도망쳤습니까?” 리엔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도망칠 사람은 난로를 끄는 게 보통이다.”
나는 난로를 살폈다. 불길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추위를 녹일 만큼만 장작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곧 돌아올 생각으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작은 쇳소리가 들렸다.
달칵.
바르톨의 검끝이 아래를 향했다.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지하실 문이 안쪽에서 잠긴 흔적은 없었다. 한 발씩 내려가자 벽면에 옛 관측 장치들이 나타났다. 붉은 별의 운행을 측정하는 원형 자, 시간의 틈을 재는 유리관,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 세 개.
그리고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철제 상자를 안은 노인이었다. 흰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그는 우리를 보더니 별로 놀라지 않았다. 대신 상자를 몸 뒤로 숨겼다.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문에 그렇게 써 두지 그랬나.”
“쓰면 사람들이 더 찾아옵니다.”
제법 그럴듯한 말이었다.
리엔이 금속 패를 내밀었다.
“천계 아동·시간 귀속 심사국의 제칠 심사관입니다. 오늘 사용된 감사관 권한에 대해 조사하러 왔습니다.”
노인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럼 늦었군요.”
“무엇이?” 내가 물었다.
“누군가 내 이름으로 세상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노인의 상자를 바라보았다. 뚜껑 틈으로 바스러진 붉은 별 무늬가 보였다.
“네가 감사관인가?”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단 베르크. 제로 관측소의 마지막 상주 감사관이었지요.”
바르톨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전하의 기억을 지우려 한 자가 바로 너인가!”
“그 명령은 내 인장으로 나갔습니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오늘의 명령을 내린 손은 내 것이 아닙니다.”
지하실 한쪽에는 작은 침대가 있었다. 베개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쓰다 만 것처럼 납작했고, 다른 하나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날짜를 표시한 종이들이 길게 묶여 있었다.
나는 맨 앞의 종이를 꺼냈다.
'눈보라. 오늘도 문을 열지 못함.'
그다음 날은 '보낸 편지 반송'이었다. 그다음 날에는 겨우 한 줄이 있었다.
'창고에서 오래된 장난감 발견.'
노인이 나를 지켜보았다.
“잃어버린 사람을 기다리는 일기입니다. 저한테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지?”
“옛 제자입니다.”
그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종이를 원래 자리에 놓았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그가 지키려던 사적인 기억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안다고 죄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을 왜 했는지 판단할 때는 중요하다.
바르톨이 창밖을 살폈다.
“전하, 산 아래의 길이 막혔습니다. 붉은 안개가 올라옵니다.”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절벽 아래로 짐수레 하나가 서 있었다. 운전사는 고삐를 잡은 채 꼼짝하지 않았고 말은 같은 자리에 앞발을 번갈아 디디고 있었다. 마치 짧은 순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검을 뽑아 길 위에 검은 빛의 원을 그렸다. 마력에 닿자 운전사는 비틀거리며 수레에서 내려왔다. 그는 자신이 방금 넘어진 줄도 몰랐다.
“다친 데 없나?”
“……왜 아직 여기죠? 방금 관측소를 지나쳤는데.”
나는 수레의 바퀴가 남긴 자국을 보았다. 얼음 위에 같은 궤적이 열 번 넘게 겹쳐 있었다.
무명일이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명령이 산길에 예고편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안전한 곳으로 돌려보낸 뒤에야 나는 관측소로 다시 들어갔다. 누가 장치를 건드렸는지 추적하는 일은 이제 호기심이 아니었다. 늦으면 이 산을 지나는 평범한 사람부터 시간을 잃을 것이다.
나는 그의 발치에 흩어진 동판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판의 모서리가 똑같은 형태로 잘려 있었다. 누군가 오래된 감사관 인장을 복제하려고 시험한 흔적처럼 보였다.
“그걸 증명할 수 있나?”
“이 상자에 들어 있습니다. 대신 그 전에 약속 하나만 해 주십시오.”
나는 팔짱을 꼈다.
“일단 들어 보지.”
“안에 적힌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저도 그 명령으로 사람들을 가뒀습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까지 한 덩어리로 처벌하면 또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는 상자를 탁자에 놓았다.
나는 약속 대신 말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부터 확인한다. 처벌은 그다음이다.”
뚜껑이 열렸다. 안에는 붉은 별 감사관의 권한 인장 하나와 그것을 복제한 얇은 금속판이 놓여 있었다. 금속판의 뒤쪽에는 금방 새긴 듯한 글자가 선명했다.
[최종 기동: 종말 대비 절차 '무명일']
[개시 시각: 사흘 뒤 일몰]
리엔이 종이를 떨어뜨렸다.
나는 물었다.
“무명일이 무엇이지?”
에르단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사람을 죽이는 날은 아닙니다.”
안심할 뻔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훨씬 나빴다.
“그날 하루를 살았다는 기록 자체가 사라지는 날입니다.”
나는 창밖의 설산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전쟁보다 조용한 재앙도 있었다. 누군가의 오늘을 지우는 일.
그리고 그런 재앙 앞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이제 왕좌보다 훨씬 많았다.
제19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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