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때는 별로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건 원래 무리니까.
그런데 이제 나는 내가 죽은 날의 문 앞에 다시 서려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그날 남겨진 기록의 문 앞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런 문을 피할 것이다.
나는 마왕이다. 어리석은 일에는 경험이 많다.
***
원점 저장고는 마왕성 북쪽 지하에 있었다.
문 앞의 석판에는 새로 새긴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관측은 귀환이 아닙니다. 관측한 기억은 현재의 사실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바르톨은 갑옷의 장식이 흔들리지 않게 가죽끈으로 묶고 있었다. 미래의 레온은 검을 가져왔지만 칼집에서 뽑지 않았다.
“서로 본 것을 그대로 말하자.”
내가 말하자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죽던 날, 저는 대전 안에 있었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문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나도 죽은 뒤의 일은 모른다.”
바르톨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전하. 저는 그날 서쪽 통로에 있었습니다. 성문이 무너지는 것은 보았지만 대전에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그럼 바로 그 사실을 말하면 된다.”
마렌이 세 사람의 기록을 각각 다른 수정판에 넣었다.
하나의 기억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고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답'은 진실이 아니라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의 주장일 테니까.
문이 열렸다.
***
첫발을 내딛자 타는 냄새가 났다.
돌이 녹아 흘렀고 천장에서 검은 재가 떨어졌다. 먼 곳에서 전쟁의 북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풍경이었다. 내 마지막 기억 속 대전이 저 앞에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벽은 손을 통과했다.
이곳은 과거 자체가 아니었다. 기록이 재현한 공간이었다.
“유령이 된 기분이군.”
“전하, 유령의 입장도 헤아려 주십시오.” 바르톨이 말했다.
“왜?”
“저희 군단에는 유령 병사가 수백 명 있습니다.”
“그럼 그들에게 사과 전령을 보내라.”
정말로 보낼 생각인지 바르톨이 수첩을 꺼냈다. 나는 급히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복도에는 두 개의 영상이 겹쳐 있었다. 한쪽에서는 성벽이 무너지고, 다른 쪽에서는 벽이 멀쩡했다.
라기스의 통신이 들렸다.
'서로 다른 관측자가 같은 위치를 다른 시각에 본 결과입니다. 강제로 합치지 마세요.'
“알겠다.”
나는 발자국이 남은 곳만 살폈다.
바르톨의 관측에는 서쪽 통로의 종이 세 번 울린 직후, 파란 빛이 한 차례 성문 쪽으로 이동한 기록이 있었다. 미래 레온의 관측에는 대전 안에서 내 뒤쪽에 파란 빛이 나타난 순간이 남아 있었다.
두 빛이 같은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각은 이어졌다.
마지막 종소리보다 여덟 번의 심장 박동이 늦었다.
“저 빛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겠나?” 내가 물었다.
바르톨은 무너진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서고와 보육관 기록실이 이어지던 옛 통로입니다.”
보육관.
단어 하나에 오래된 기억이 꿈틀거렸다. 열두 번째 방의 문, 어린 영과 세린, '보호 실패'라는 잔인한 판정.
하지만 지금 보이는 푸른 빛이 반드시 세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검 대신 기록관의 펜을 꺼냈다.
“위치를 표시해 둬라.”
***
대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미래의 레온이 멈춰 섰다.
문 안쪽에서는 과거의 내가 레온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재현 영상 속의 나는 젊지 않았다. 얼굴엔 상처가 깊게 패었고, 검 끝에는 마지막 마력이 끓고 있었다.
나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우스운 일이다. 적이 그렇게 많은 인생을 살고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가장 낯선 존재가 되다니.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말하자 레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제게 하는 말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증언해야 하잖아요.”
“이미 네가 기억하는 만큼 말했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는 오랫동안 문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날 당신이 일부러 제 검을 피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돌아봤다.
“왜?”
“검이 닿기 직전 당신은 뒤를 봤어요. 성문도, 제 검도 아닌 무언가를요.”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죽음 직전의 감각이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 재현의 나 역시 몸을 돌리는 순간 멈춰 있었다. 그 뒤쪽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관측 누락: 제삼의 시점]
“그걸 만들어 채울 수는 없지.”
나는 그 빈자리를 뚫어져라 보았다. 한때는 기억이 모자라면 이야기로 메울 수 있다고 믿었다. 승리한 전투는 더 화려하게, 패배한 전투는 더 비장하게 보고서에 적었다. 기록관들은 내 얼굴을 살피며 내 마음에 들 법한 단어를 골랐다.
그렇게 쌓인 역사가 진실을 얼마나 짓눌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바르톨에게 말했다.
“오늘 본 사실을 그대로 적어라. 기억하지 못한 부분도 반드시 표시해.”
“전하께서 약해 보이실 수 있습니다.”
“약해 보이는 것과 없는 사실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레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역시 그날 검을 쥔 이유를 하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명령도 있었고, 제 생각도 있었어요.”
나는 그를 바라봤다. 결국 우리가 기록하려는 것은 영웅의 전설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보았던 그날이었다.
나는 빈 곳에 손을 대려다 그만두었다.
라기스가 말했다.
'세 번째 목격자의 관측이 없다면 이 자리는 계속 비어 있어야 합니다.'
“비워 두자.”
그때 그림자처럼 지나가던 작은 인영이 복도 끝에 나타났다.
그는 칼도, 지팡이도 들지 않았다. 대신 한쪽 팔에 낡은 종을 끌어안고 있었다.
누가 보았던 기억인가?
나는 바르톨을 돌아봤다.
놈의 안색이 변했다.
“전하…… 그 사람은 제가 본 사람이 아닙니다.”
레온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인영이 움직였다.
우리 셋 누구의 기억에도 없는 사람이, 재현 영상 속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달린 표찰에는 한 단어가 쓰여 있었다.
[관리자]
제18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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