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을 하나 고르라면 나는 오래도록 성검을 지목했을 것이다.
그 검은 실제로 내 심장을 꿰뚫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종이 한 장이 후보에 올랐다.
거기에 '보호 실패'라는 네 글자만 찍히면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었으니까.
***
회색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레온을 데려가지 않았다. 아이가 위험에 노출될 이유는 없었다. 영과 이안도 성에 남았다.
그 결정을 직접 설명하자 레온이 입을 삐죽였다.
“나도 가.”
“오늘은 위험한 곳이다.”
“나도 큰 나처럼 검 쓸 거야.”
“그 검은 네가 커서 원하면 배우는 거다.”
“지금은?”
“지금은 나무검도 무겁다.”
레온은 잠시 고민하더니 미아가 준 작은 숟가락을 들었다.
“이거는 할 수 있어.”
나는 숟가락을 검처럼 들고 경례했다.
“장군, 마왕성을 부탁한다.”
그제야 아이가 웃었다.
미아가 내게 작은 천 주머니를 건넸다.
“기억이 또 사라질지 모르니 가져가세요.”
안에는 세 아이가 고른 물건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레온의 나무 블록, 이안의 종이별, 영이 고른 파란 끈.
“이건 증거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미아가 말했다.
“기억이 없어도 누군가 당신에게 직접 준 물건이라는 사실은 남을 테니까요.”
나는 주머니를 허리춤에 묶었다.
***
회색 언덕 지하는 축축했다.
오래전 보육관의 지하 창고였을 곳에 낡은 요람 열두 개가 놓여 있었다. 열한 개는 먼지로 가득했고, 마지막 한 개만 깨끗했다.
나는 열두 번째 요람 앞에 섰다.
요람 안에는 아이가 없었다.
대신 종이 뭉치와 작은 수정구슬이 있었다.
[보호 대상 대체 담보 장치]
[후견자 기억 부족분을 유아 신원으로 보충]
분노가 뼛속에서 끓어올랐다.
“부족분을 아이로 채운다고?”
리엔이 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지금 부수시면 안 됩니다. 유아 신원 연결이 이미 시작됐어요.”
수정구슬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빠르게 나타났다.
레온. 이안. 영.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빈칸까지.
나는 턱을 굳게 다물었다.
“이건 보호가 아니라 인질극이다.”
노엘은 장치 밑에서 낡은 물길 같은 홈을 찾았다.
“회수되는 기억을 보관하는 냉각로입니다. 원래는 사람의 신원이 아니라 빈 시간을 임시 저장하려고 만든 것 같아요. 뒤에 누군가 기능을 바꾸었습니다.”
“되돌릴 수 있나?”
“설계도가 있으면 가능할지도요. 기억을 회수하더라도 그걸 아이 신원에 매달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는 한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톱니와 룬 문양을 대조했다.
왕국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전쟁 지식은 쓸모가 없었다. 무너진 시계를 다시 세우는 일에는 사람의 손과 시간, 조심성이 필요했다.
요람 아래쪽에는 눌려 있는 글자가 있었다. 시계를 고치기 위해 몸을 낮춘 노엘이 먼저 발견했다.
[아이의 시간이 부족하면 다른 아이의 시간을 임시로 사용한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지?” 내가 물었다.
“만든 사람은 아마 급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을 살리고 싶었을 겁니다.” 노엘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임시 장치가 상시 제도가 됐고, 빌린 시간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생긴 거겠죠.”
나는 처음 회귀했을 때의 나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때 나는 레온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을 담보로 하더라도.
하지만 그 사실이 다른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을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이 요람들을 그냥 없애면 안 되겠나?”
라기스가 흔들리는 시계바늘을 가리켰다.
“이미 연결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끊으면 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어요. 이름을 함부로 지우지 않으면서 장치를 바꿔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를 베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노엘이 요람의 낡은 천을 벗겨 작은 금속 조각들을 정리했다. 각 조각 아래에는 누군가의 이름 대신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번호가 잘못된 증거가 되지 않도록 원래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 그동안 리엔은 기록국의 명령이 어디에서 내려오는지 확인했다.
작업은 느렸다. 그러나 이 느린 작업 덕에 우리는 한 사람의 시간을 돌려놓으려다 또 다른 사람을 빼앗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
잠시 뒤 첫 번째 문제가 나타났다.
냉각로의 저장량이 넘치면 시간의 일부가 주변 마을로 쏟아질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을 희생시키지 않고 장치를 멈출 방법이 필요했다.
“마왕성의 오래된 마나 저장석은?” 내가 물었다.
노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마력만 보관합니다. 시간 기록은 달라요.”
“왜 다르지?”
“마나는 양을 재면 되지만, 시간 기록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나는 주머니를 만졌다.
레온의 나무 블록이 손끝에 닿았다.
같은 모양의 블록 두 개라도 아이가 직접 골라 내게 준 것과 창고에서 아무렇게나 꺼낸 것은 다르다.
“그럼 빈 시계에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어떻지?”
라기스가 눈을 크게 떴다.
“고유 신원 없는 저장 구획이 필요하군요. 앞서 등대에서 만들었던 독립 귀환 경로처럼요.”
우리는 그날 밤 첫 번째 무명의 저장 구획을 만들었다.
이름은 비워 두되 사용 목적과 책임자는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기억을 담는 구획이 아니라, 회수 신호가 보관될 때까지 잠시 정지하는 완충 장치였다.
노엘이 마지막 나사를 조였다.
수정구슬의 글자가 변했다.
[신원 대체 요청 중단]
[기억 회수 보류]
[임시 완충 경로 확보]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이 떠올랐다.
[완충 장치 유지 시간: 한 시간]
다시 한 시간이었다.
“자꾸 시계와 싸우게 되는군.”
리엔이 말했다.
“그 한 시간 동안 원래 계약과 변조 계약을 분리해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의 기억을 강제로 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놋쇠판과 헤스의 증언, 쿠렌의 자동 결재만으로도 누가 잘못된 판정을 입력했는지는 밝힐 수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그날 문 앞에서 실제로 한 일이었다.
우리는 서류를 펼쳤다.
이제 누가 누구의 선택을 빼앗았는지 증명할 차례였다.
제17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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