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라는 호칭을 처음 얻었을 때 나는 대단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무릎 꿇어라.'
'세상을 정복하겠다.'
혹은 최소한 '내 앞에서 사라져라.' 정도는 했겠지.
하지만 잃어버린 첫 기억에서 어린 내가 한 말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안 데려가게 할게.'
생각보다 훨씬 작고, 그래서 더 무거운 말이었다.
***
세린이 요청한 '문'을 찾기 위해 우리는 시각시 외곽의 옛 보육관 기록을 조사했다.
서류는 엉망이었다. 아동의 이름은 지워져 있고, 침대 수와 식량 배급량만 남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생애보다 고장 난 난방기 수가 더 정확하게 기록돼 있었다.
마렌이 지도를 펴고 말했다.
“보육관 일곱 곳 중 여섯 곳은 문이 철거됐습니다. 하나만 남아 있어요.”
“어디지?”
“성왕국 북쪽, 오래된 회색 언덕입니다. 현지에서는 '열두 번째 방'이라고 부른답니다.”
열두 번째 방.
이름부터 불길했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아이들을 미아에게 맡겼다. 영은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이번 기록이 자기 자신과도 관련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그럼 다녀오셔서 말해 주세요. 제가 몰랐던 걸 알아도 제 탓이라고 하지 말고요.”
“당연하지.”
“그리고 아저씨가 어릴 때 울었으면, 그것도 놀리지 말고요.”
“나는 별로 울지 않았다.”
“기억도 없으면서 어떻게 알아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나는 반박을 포기했다.
***
회색 언덕에는 낮은 돌담과 무너진 굴뚝이 있었다. 바람에 말라붙은 풀이 소리를 냈다. 건물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문의 자리만은 남아 있었다.
문틀에 손을 대자 얼음처럼 차가웠다.
노엘이 장갑을 벗고 홈을 살폈다.
“여기 작은 손자국이 두 개 있어요. 마법으로 남긴 흔적이 아닙니다. 실제로 누군가 오래 문을 붙잡았던 자국이죠.”
나는 손을 그 위에 겹쳤다.
그러자 낯선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
작은 방. 비를 맞은 돌바닥. 벽난로가 꺼진 오후.
어린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보다 더 작은 아이가 내 뒤에 숨어 있었다.
문밖에서 회색 외투를 입은 사람이 말했다.
'정해진 명단대로 데려가야 한다.'
어린 내가 대답했다.
'싫대요.'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럼 아이한테 물어봐요.'
이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내 손이 현재의 문틀에서 미끄러졌다.
***
“전하!”
레온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숨을 골랐다.
기억은 아주 짧았다. 아이 얼굴은 보지 못했고 회색 외투의 사람도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문틈으로 스며들던 냉기와 젖은 신발 냄새가 생생했다.
“그 사람이 세린이었습니까?” 레온이 물었다.
“모른다.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전하께서 아이 앞을 막아섰군요.”
“그렇더군.”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일을 나는 레온을 숲에서 발견한 뒤 처음 배운 줄 알았다. 그보다 먼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니.
노엘은 문틀 안쪽에서 얇은 놋쇠판을 꺼냈다.
[제0보육관 12호실]
[인원 인계: 명부 불일치]
[이송 승인: 보류]
[현장 감시관 서명: 쿠렌]
리엔의 얼굴이 굳었다.
“쿠렌이 여기에 있었군요.”
나는 옛 문틀 너머의 빈터를 바라봤다.
보육관을 닫으려 했던 사람과, 회귀 계약을 판단하려는 사람이 같은 이름이었다.
“이 사람은 아이들을 데려가던 쪽이었나?”
“기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누가 명령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놋쇠판 아래쪽에서 다른 글자가 나타났다.
[인계 실패 사유: 보호 대상의 거절]
[보호자: 미승인 아동 영]
영.
내가 어릴 때 쓰던 이름.
나는 문틀을 놓지 않았다.
그날 나는 다른 아이를 지켰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뒤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선택을 '실패'라고 적은 누군가가 있었다.
마렌은 문틀에서 떨어진 먼지를 봉투에 담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쇳가루가 섞여 있었다. 노엘이 불빛에 비춰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이건 시각시에서 문이 잠길 때 쓰던 봉인 금속입니다.”
“누가 밖에서 잠근 건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어느 쪽에서 걸었는지는 경첩을 조사해야 합니다.”
나는 땅에 무릎을 꿇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문턱 옆의 흠을 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바닥에는 어린아이 손으로 긁어 쓴 글자가 남아 있었다. 한 글자는 '싫', 그 옆은 '어'였다. 이어진 문장은 풍화되어 알아볼 수 없었다.
이토록 짧은 말이 돌에도 남는구나.
“전하, 손을 다치십니다.” 바르톨이 걱정했다.
“이 상처쯤은 나아.”
나는 손끝에 묻은 흙을 털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현장에 직접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쓴 보고서 한 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이곳의 보고서에는 손자국도, 추위도, 문틈으로 들어오던 바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 앞에서 겁을 먹었을 두 아이의 기분이 없었다.
그것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또다시 '보호 실패'라는 글자만 믿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
성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레온에게 물었다.
“내가 이 문 앞에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바꾼다고 생각하나?”
“과거는 바꿀 수 없겠죠.”
“회귀한 자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그가 웃었다.
“당신은 시간을 되돌렸지만 그때 사람들이 했던 선택을 마음대로 지우진 못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힘들게 다니시는 거고요.”
나는 창밖을 보았다.
언덕이 멀어지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아직 문틀의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세린이 원한 것은 얼굴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날 자신이 싫다고 했을 때 누가 들었는지, 그것부터 기억해 달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수정판에 공문이 도착했다.
[제0기록고 판정관리실]
[보호 능력 재심사 통지]
[대상: 카르딘]
[최초 기억 담보에 대한 긴급 회수 절차 개시]
그리고 마지막 줄.
[회수 사유: 과거 보육관 12호실의 보호 실패.]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보호 실패.
내 기억 속에서는 분명 문이 닫힌 채였다.
그런데 그 기록을 작성한 자는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다음 장면을 알고 있었다.
제17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