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시는 원래도 까다로운 도시였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우산을 펴면 비가 어제로 떨어지고, 다리를 잘못 건너면 한 시간 뒤의 자신과 마주칠 수도 있다. 거리마다 시계를 달아 두었지만 모든 시계가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날은 드물었다.
그런 도시에서 하루 열세 분만 존재하는 창고를 찾으라니.
나는 차라리 천계 군단과 한 번 더 싸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
동행자는 노엘, 리엔, 그리고 미래의 레온이었다. 바르톨은 따라오겠다고 고집했지만 이번에는 성에 남겼다.
“왜 저만 제외하십니까!”
“아이들 방의 종을 네가 관리해야 한다.”
그 말에 바르톨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마왕국 최고 기밀 시설의 경비라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기밀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 놀이방이다.”
“바로 그 점이 더욱 철저한 은폐군요.”
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시각시의 아침은 어두웠다. 높은 종루가 구름을 가렸고, 골목의 돌바닥에는 오래된 이슬이 남아 있었다. 마렌이 보낸 지도에는 창고가 나타나기까지 일곱 분이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빵집 앞에서 기다렸다.
굽는 냄새는 사람에게 위험을 잊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미래의 레온이 갓 구운 빵 두 개를 사 왔다.
“당신 것도요.”
“나는 필요 없다.”
“아침도 안 드셨잖아요.”
“마왕에게는 식사가 필수 조건이 아니다.”
“그럼 저 혼자 두 개 먹겠습니다.”
나는 하나를 받아 들었다.
도발에 넘어갔다.
***
열세 분 전.
골목 끝의 벽에 시계 초침 같은 금이 나타났다. 금이 두 번 흔들리더니 작은 회색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는 세 개의 서랍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맡긴 기억]
[빼앗은 기억]
[돌려준 기억]
나는 '맡긴 기억'에 손을 댔다.
노엘이 재빨리 팔을 붙잡았다.
“읽는 것과 회수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안에 있는 기억이 전하의 것이라도 돌려받을 때 지금의 기억과 충돌할 수 있어요.”
“읽기만 하겠다.”
“그 약속을 장치에 입력해야 합니다.”
나는 입구에 새 문장을 적었다.
[열람만 요청. 소유권과 존재 여부 변경 금지.]
잠금쇠가 한 칸 움직였다.
리엔은 깨진 인장 대신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미래의 레온도 증인란에 서명했다. 서명을 마친 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둘 다 원해서 온 것이 맞나?”
레온이 웃었다.
“계약서에 당신이 제 의사를 확인했다고 써야겠네요.”
“놀리지 마라.”
“진심입니다.”
문이 열렸다.
내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작았다. 서가가 끝없이 늘어선 비밀 창고를 기대했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나무 의자 세 개와 낮은 장롱 하나였다.
장롱 위에는 낡은 아동용 신발이 놓여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오래전 기억 속에서 본 듯한 물건이었다. 무릎에도 닿지 않던 나이, 누군가 신발 끈을 잘못 묶어 넘어졌던 풍경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는 누구의 기억이 들어 있지?”
리엔이 뒤쪽 벽의 글자를 읽었다.
[보관 항목: 최초로 타인의 선택을 지킨 순간]
[명의인: 영 / 카르딘]
[동반자: 검열됨]
노엘이 목소리를 낮췄다.
“기억의 주체가 두 이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름이 다른 두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시기에 불렸을 가능성이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영이 나오기 전에도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다른 존재를 지우는 규칙과 싸웠다. 이번에도 이름이 둘이라는 이유로 하나를 없애서는 안 된다.
서랍을 열자 손바닥 크기의 검은 유리가 나왔다.
그 안에는 내 모습이 비쳤다. 지금의 얼굴이 아니었다. 머리가 짧고 눈이 유난히 큰 어린아이가 한 명 서 있었다.
그 아이 뒤편에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머리 위에는 글자가 떠올랐다.
[열람자가 잊은 첫 약속]
[당사자 확인 필요]
나는 유리에 손을 가까이 가져갔다.
어린 내가 말했다.
'안 데려가게 할게.'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정말?'
'응. 네가 싫다면.'
내 손이 멈췄다.
내가 모르는 약속이었다.
그런데도 입가에 그 말을 하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기록고 안의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어린아이들이 쓰는 비누와 말린 풀 냄새가 났다. 장롱 옆의 의자 다리에는 오래된 칼집이 있었다. 검으로 만든 흠이 아니라 나무토막을 반복해서 부딪쳐 생긴 흔적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흠 위를 지나가자 오른팔에서 아주 희미한 통증이 일었다.
그곳에는 누군가 키를 재며 남긴 줄도 있었다. 맨 아래에는 '영', 그보다 조금 위에는 다른 글자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나는 조각을 긁어내려다 멈췄다. 훼손된 글자를 제멋대로 완성하면 결국 남의 이름을 내가 정하는 일이 된다.
노엘이 지팡이를 짚고 둘러보았다.
“오래된 기록고치고는 생활 흔적이 많군요.”
“기억은 물건만 남기는 것이 아니니까.” 레온이 대답했다.
문 옆에는 아주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그것이 한 번 흔들렸다. 댕,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누군가 왔었나?” 내가 물었다.
리엔이 종 옆의 규칙을 읽었다.
[열람자는 기억의 모든 장면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 밑에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기억 속 당사자가 응답하지 않아도 열람자는 떠날 수 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처음으로, 답을 얻지 못한 채 나가도 되는 문이었다.
***
창고가 흔들렸다. 건물이 사라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네 분이었다.
레온이 바깥을 확인했다.
“문이 좁아지고 있어요.”
“유리를 가져가도 되나?”
노엘이 장치 아래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사본은 가능합니다. 본체는 아직 안 됩니다. 먼저 기억 속 다른 당사자의 의사가 필요해요.”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사본만 만들었다.
기억을 찾겠다고 그 속의 사람을 다시 가둬 둘 수는 없었다.
문을 나오기 직전, 유리 아래에서 마지막 한 줄이 떠올랐다.
[다른 당사자의 임시 이름: 세린]
그 순간 내 가슴 한구석이 오래된 상처처럼 저렸다.
세린.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이미 수백 번 불러 본 것 같았다.
제17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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