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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168화
PAYLUA ORIGINAL · 제168화

168화. 동의서의 빈칸에 적을 말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3,192자

오프라인 책장
전쟁을 시작할 때는 보통 선전포고를 쓴다. 나는 여러 번 써 봤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군대가 움직이고, 상대가 알아들으면 더 많은 군대가 움직였다. 그런데 붉은 별 제단에 가기 전 준비해야 하는 종이는 선전포고가 아니었다. 동의서였다. “각자 서명해야 합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나는 그녀가 가져온 세 장의 종이를 읽었다. 하나는 미래 레온의 것, 하나는 잔류 아르헨의 것, 마지막 하나는 어린 영의 것이었다. 종이에는 빼곡한 글씨가 적혀 있었고, 아래쪽에는 유독 넓은 서명란이 있었다. “이걸 서명하면 심사 결과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이군.” “기존 문서대로라면 그렇습니다.” “그럼 안 쓰면 되겠지.” “그 대신 심사에 출석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탁자 위의 펜을 굴렸다. 세상은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끝나는 일이었다. 지금은 누구에게 선택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대체 서류를 만들자.” 로잘린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내용으로요?” “출석에는 동의하되, 결과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문구는 빼라. 각자 자기 기억을 말할 권리를 적고, 말하지 않을 권리도 적어라. 어린 영의 경우에는 믿을 수 있는 어른의 동행과 심사 중단 요청도 가능해야 한다.” “천계가 받을까요?” “그건 우리가 물어볼 일이지, 처음부터 포기할 이유는 아니잖나.” *** 낮에는 영과 정원 벤치에 앉았다. 영은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가게에서 사 온 천으로 미아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소매는 아직 조금 길었지만 아이는 일부러 접지 않았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천 끝이 흔들리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내일 심사에 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맞다. 하지만 네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영은 발끝으로 자갈을 밀었다. “제가 누구인지 물으면 뭐라고 해요?” “네가 생각하는 대로.” “예전에는 영이라고 했고, 지금도 영인데요. 아저씨도 어릴 때 영이었다며요.” “그렇다.” “그럼 내가 아저씨를 닮았다는 말은 해도 돼요?” “물론이다.” “아저씨가 저라는 말은요?”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건 아직 모른다. 같은 시작에서 갈라졌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같은 이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 때까지 네가 살아도 되는지를 유보할 이유는 없지.” 영은 한동안 내 말을 생각했다. “그럼 모르겠다는 것도 답이 돼요?”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답 중 하나다.” “마왕이면서요?” “마왕이라고 모든 걸 알면 지금쯤 기저귀를 갈아 주다가 앞뒤를 바꾸는 일도 없었겠지.” 영이 웃었다. 그렇게 웃는 아이에게 나는 또 하나를 물었다. “제단까지 함께 가도 되겠나?” “아저씨가요?” “그래. 네가 싫다면 다른 어른을 고를 수도 있다.” 영은 잠시 내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와 주세요. 대신 말은 제가 할게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약속하지.” *** 저녁에는 아르헨들과 통신했다. 잔류 아르헨은 자기 기억을 따로 적어 두었다. 다른 아르헨은 내 어릴 적 편지를 보관해 왔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자료를 내놓되 서로를 진짜와 가짜로 분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래의 레온은 성검을 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검의 힘을 부정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다칠 때는 검을 들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도 되는지 증명하려고 검을 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은 선택이다.” “당신이라면 어떻습니까?” 나는 웃었다. “나는 검을 들고 가되 뽑지는 않겠다.” “마왕답군요.” “호위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나.” “제 아버지답기도 하고요.” 나는 잠시 대답을 잊었다. 미래의 레온은 미소만 지었다. *** 동의서가 세 장 모두 완성되자 나는 각자의 의사를 다시 확인했다. 미래의 레온은 자신의 검집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천천히 읽었다. 잔류 아르헨은 글자가 희미하다고 해서 돋보기를 가져왔다. 영은 모든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미아에게 하나씩 물었다.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게 뭐예요?” “싫다고 말해도 그 때문에 벌을 주면 안 된다는 뜻이야.” 미아가 말했다. “그럼 중간에 집에 가도 돼요?” “그렇지.” “울면요?” “울어도 된다.” 영은 종이를 펼친 채 나를 바라봤다. “아저씨도 울어요?” “……거의 안 운다.” “거의는 조금 운다는 거네요.” 미래의 레온이 웃음을 참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영은 펜을 들었다. 이름의 첫 글자는 삐뚤었지만 끝까지 혼자 썼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할래요.” 나는 손을 거두었다. 내가 대신 싸워 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곁에 서 있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 준비가 끝나갈 때 바르톨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커다란 봉투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전하! 제단에 제출할 중요한 자료입니다.” “무엇이지?” “레온 님의 성장기록입니다. 우유 섭취량, 기저귀 교체 횟수, 밤중 울음시간, 최초의 걸음마, 첫 번째 국자 공격에 이르기까지 정리했습니다.” 나는 서류를 펼쳤다. 장부 첫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급 기밀: 레온 님은 전하를 '아빠'라 부르심.] 나는 눈을 감았다. “이건 법정 증거가 아니라 네 일기장이 아닌가?” “전하, 국가 운영 기록입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록을 버리지는 마라. 다만 공개하기 전에 레온이 자라서 읽고 싶은지 먼저 물어야겠군.” 바르톨이 심각하게 고개를 숙였다. “역시 아동 기록의 개인정보 보호까지…… 전하께서는 깊으십니다.” 다행히 그 말을 이해한 사람은 바르톨 혼자였다. *** 해 질 무렵, 리엔이 돌아왔다. 그녀의 날개 끝은 그을려 있었고, 손에는 빈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기록원에 들어갔습니다.” “누가 명령을 내렸지?” “사람은 없었습니다. 원래 원장이 남긴 결재 규칙만 있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그 규칙에 새로운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무슨 조건?” “예언이 변경될 때마다 변경을 일으킨 보호자를 최초 책임자로 등록하도록.” 나는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리엔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카르딘. 내일 심사가 끝나면 그다음 심사 대상은 당신이 될 겁니다.” 그 사실이 이상할 만큼 놀랍지 않았다. 나는 처음 레온을 품에 안았던 숲을 떠올렸다. 그날부터 나는 이미 누군가의 계획을 바꾸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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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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