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꼭 전투의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날 아침 마왕성의 긴 식탁에서 접시가 하나씩 움직임을 멈췄다.
처음 멈춘 것은 꿀병이었다. 레온이 숟가락으로 뜨려 하자 꿀이 공중에 실처럼 늘어진 채 굳었다. 다음은 우유 주전자, 그다음은 창틀에 앉은 나비였다.
“아빠. 꿀 고장.”
나는 주전자를 들어 보려 했다. 손잡이는 움직였지만 안의 우유는 기울지 않았다. 병 바깥과 안쪽의 시간이 서로 달랐다.
“모두 식탁에서 내려와라.”
미아가 아이들을 안쪽 복도로 데려갔다. 이안은 자신의 신발 한 짝이 멈춘 의자에 걸리자 울상을 지었다. 영이 대신 다른 신발을 가져다주었다.
바르톨이 검을 뽑았다.
“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꿀병은 검을 뽑지 않았으니까.”
“그럼 제가 꿀병을 베겠습니다.”
“그건 더더욱 안 된다.”
***
나는 북부 관측소의 계측기를 불러왔다. 식당 안에는 은빛 깃털이 없었다. 대신 어젯밤 레온이 미래의 자신과 나누었던 낡은 천이 의자에 걸려 있었다.
미래의 레온이 식당으로 들어와 천 조각을 집었다.
“이게 원인입니까?”
“네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천계의 장치가 귀환자의 물건을 추적하는 모양이군.”
그는 천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저는 여기서 아무것도 만지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럴 리가.”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시간의 동결을 없애려고 강한 마력을 쓰면 식당의 다른 시간들까지 함께 튕겨 나갈 수 있었다. 누군가를 구하려다 다른 사람을 잃을 수는 없었다.
미래의 레온은 벽에 기댄 성검을 바라보았다.
“제 검은 시간을 벨 수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 힘으로 당신을 죽였죠.”
나는 기억 속 차가운 날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지금 식탁까지 벨 필요는 없다.”
“검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멈추겠습니까?”
그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불안한 것이다. 자신 때문에 이곳의 아침이 망가지는 듯해.
나는 식탁으로 다가가 접시 하나를 옮겼다. 멈춘 음식은 그대로 떠 있었지만 접시는 움직였다. 그러자 우스꽝스럽게도 허공에 수프 한 그릇이 남았다.
“봐라. 전부 멈춘 건 아니다.”
그때 영이 복도 끝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에 있는 건 멈췄는데, 밑에 있는 건 움직이네요.”
“맞다.”
“그럼 새 접시를 밑에 놓으면 돼요?”
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아이다운 해결책이었다. 그만큼 정확했다.
“시험해 볼 가치는 있겠군.”
***
우리는 식당을 사람과 음식이 있는 영역으로 나누었다.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을 안전하게 옮기고, 동결된 음식 주변에는 새로운 식기를 놓았다. 라기스는 정지된 물건의 아래에서 흐르는 시간과 바깥의 시간을 재었다.
문제는 얼어붙은 꿀병 자체가 아니었다. 그 속의 시간이 '재심사에 필요한 증거'로 붙잡혀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증거로 지정하면 놓아주지 않는 장치였다.
“증거를 보존하려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잘못 적용했군요.” 라기스가 말했다.
“보존이 아니라 압류다.”
“명령을 풀려면 별도 보존 경로가 필요합니다.”
미래의 레온이 천 조각을 펼쳤다.
“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물건 자체를 붙잡을 필요가 없게요.”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원한다면.”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저는 그날 마왕성에서 카르딘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 인생의 전부라고 기록하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날 이전에도 사람이었고, 그날 이후에도 살아 있습니다.”
라기스가 발언을 수정판에 기록했다. 기록은 레온의 동의를 얻은 뒤에만 천계의 보존 장치로 전송되었다.
얼어 있던 나비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꿀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레온이 손뼉을 쳤다.
“꿀 살아!”
나는 그 표현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
라기스는 식당의 시간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마지막으로 살폈다. 동결된 꿀병에는 작은 균열 하나가 생겨 있었다. 그는 내용물을 치우기 전에 실제로 먹어도 안전한지 시험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버리면 안 되나?” 내가 물었다.
“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왜 굳었는지 기록을 남겨야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지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귀찮게 느껴졌지만 기록은 누군가를 얽어매는 쇠사슬만은 아니었다. 정확히 남기면 다음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남기느냐였다.
미래의 레온은 잠시 문턱에 앉아 성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나는 그 곁에 앉았다.
“오늘 검을 쓰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냐?”
그는 잠시 생각했다.
“검을 못 써서 불안했습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요.”
“누군가를 베는 일이?”
“더 정확히 말하면,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빨리 끝내는 일이요.”
나는 웃지 않았다. 그것은 나도 오래 믿어 온 방식이었다.
“빠른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더군.”
“그렇습니다. 특히 식탁에서는요.”
우리는 한참 식당을 바라봤다. 천천히 정리되는 접시들, 음식을 덜어 주는 미아, 꿀이 없다고 투덜대는 아이들. 세상을 구했다는 환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레온에게 말했다.
“네가 검을 안 쓰기로 정했기 때문에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다.”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같이 다른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대답이 더 마음에 들었다.
***
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식사는 다시 시작됐다.
미래의 레온은 식탁 끝에 앉아 말없이 수프를 먹었다. 나는 그가 성검을 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밥을 두 그릇 먹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배가 고팠나?”
“그렇습니다.”
“천계 장부에는 그것도 적어야겠군. 돌아온 용사에게 수프 두 그릇이 필요하다고.”
그가 웃었다.
“대신 식판은 무겁더군요.”
“무슨 뜻이지?”
“제가 여기서 먹을 몫이 있다는 걸 처음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서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 레온이 미래의 자신에게 숟가락을 건넸다.
“큰 나. 더 먹어.”
이번에는 미래의 레온이 그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새 통신이 도착했다.
[천계 심사 국장실: 귀환자 셋에 대한 공개 재심사 개최]
[기한: 내일 해가 질 때]
[심사 장소: 붉은 별 제단]
마렌의 음성이 이어졌다.
'전하, 세 사람이 참석하지 않으면 모든 접촉 기록을 원상복구하겠다고 합니다.'
나는 젖은 수건으로 레온의 입가에 묻은 꿀을 닦았다.
원상복구.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제16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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