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르헨은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어릴 때 나를 돌보았고, 세상의 법칙을 가르쳤으며, 내가 처음 사람을 보호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약속인지 알려 준 사람.
그런데 시간의 잔류 구역에서 또 다른 아르헨이 돌아왔다.
둘은 서로 같은 얼굴을 지녔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겪지는 않았다. 한 사람은 오래된 시각시를 기억했고, 다른 사람은 잔류 구역에서 끝내 열지 못한 문을 기억했다. 천계는 두 사람에게 모두 한 장의 초대장을 보냈다.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르헨. 정본 판별 심문에 출석할 것.]
나는 봉투를 찢으려다 손을 멈췄다.
이미 원장 대행 체계의 '정본' 규칙을 폐기하지 않았던가. 천계는 이름만 바꿔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두 사람에게 직접 전달하겠다.”
***
동쪽 섬의 오후는 마왕성보다 따뜻했다. 바닷바람이 어선의 돛을 흔들었고, 페룬은 등대 앞에서 새 목재를 깎고 있었다.
두 아르헨은 해안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광경은 아직도 내게 낯설었다. 특히 둘이 동시에 내 이름을 부르면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카르딘.”
“카르딘.”
“차례대로 말해라.”
둘 중 나이 들어 보이는 아르헨이 웃었다.
“네가 그 말을 할 줄은 몰랐구나.”
나는 심사 초대장을 건넸다.
잔류 구역에서 돌아온 아르헨이 종이를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누가 진짜냐고 묻는군.”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두었다. 결정은 당신들 몫이다.”
다른 아르헨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우릴 서로 비교하려 할까?”
“그들 장부에는 한 사람의 이름을 넣을 칸이 하나뿐이니까.”
“칸을 더 만들면 되는데.”
영이 등대 뒤에서 나타나 말했다. 작은 신발이 자갈 위에서 또각거렸다.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래. 칸을 늘리면 된다.”
“그러면 둘 다 아르헨이라고 적어도 되잖아요.”
두 아르헨이 동시에 영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다른 한 사람은 천천히 아이의 손을 잡았다.
“이 아이가 우리가 못한 말을 하네.”
***
저녁에는 두 사람의 기억을 비교했다.
그건 서로를 검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각시의 봉인 장치가 언제 다른 길을 만들었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헨 한 사람은 나를 처음 만난 날 비가 왔다고 기억했다. 다른 사람은 눈이 왔다고 했다.
“하늘 색깔도 달랐나요?” 내가 물었다.
“달랐지.”
“그날 내가 울었나?”
“둘 다 울었단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까지 일치할 필요는 없지 않나.”
잔류 아르헨이 웃었다.
“네가 울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거다. 처음 본 아이가 어찌나 고집을 부리던지.”
다른 아르헨이 반박했다.
“고집보다는 겁이 많았지.”
“겁이 많으면서 고집도 셌어.”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결국 기억이 달라도 나를 놀리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참 웃고 나서 나는 질문했다.
“심사에 가면 무엇을 말할 생각인가?”
첫 번째 아르헨이 답했다.
“내가 지나온 시간에 대해 말하겠다.”
두 번째 아르헨은 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는 누구도 대신 결정하지 못한다고 말해야겠지.”
그 말은 두 사람 모두의 것이었다.
***
두 아르헨이 서로의 기억을 적는 동안 나는 등대 창가에서 오래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내가 어린 시절 만든 서툰 나무배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 배를 누가 보관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갈래의 기억을 처음 발견했다.
한 아르헨은 배의 돛을 내가 파란 천으로 달았다고 했다. 다른 아르헨은 돛 없이 강에 띄웠다고 기억했다. 나는 배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분명 돛대를 꽂은 흔적이었다.
“그럼 파란 돛을 기억하지 못하는 쪽은 잘못된 걸까요?” 영이 물었다.
“아니.” 잔류 아르헨이 대답했다. “그날 이후 우리가 다른 일을 겪었다는 뜻일 수도 있지.”
“그럼 이 배는 누구 거예요?”
나는 잠깐 고민했다.
“지금은 둘이 함께 확인하는 배다.”
“아저씨 거였잖아요.”
“맞다. 그래도 내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남의 기억까지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아르헨 두 사람은 서로를 보더니 웃었다. 하나는 그 배를 처음 나에게 돌려준 일을 떠올렸고, 다른 하나는 강물에 배를 잃어버려 나를 달래던 일을 떠올렸다.
사라진 시간은 둘을 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나는 그 차이가 심사장에서 가장 중요한 증언이 되리라 생각했다.
***
밤이 되자 등대 아래 바다에서 작은 푸른 불꽃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인광인 줄 알았다. 그러나 빛이 원을 이루자 라기스가 급히 수정판을 들여다봤다.
“전하, 천계의 재심사 장치가 바닷물에 연결됐습니다.”
“위험한가?”
“누군가 질문서에 답하는 순간, 이 섬에 있는 귀환 기록들을 한 줄로 합칠 수 있습니다.”
나는 봉투 세 개를 떠올렸다. 레온과 아르헨, 영에게 각각 도착한 질문들.
여기에 아르헨에게 온 '한 장'의 초대장까지.
“심사는 단순히 답을 듣겠다는 게 아니었군.”
라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답변 자체를 승인 신호로 쓰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즉시 등대 안팎의 전달 마법을 끊으라고 명령했다. 다만 사람이 오가는 배와 등대 불빛은 그대로 두었다. 이 섬을 지키겠다고 이 섬을 감옥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두 아르헨에게 말했다.
“내일은 아무것도 서명하지 마라.”
한 사람이 내 손을 잡았다.
“네가 대신 서명하려 하지도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지키겠다는 일은, 그 사람의 손에서 펜을 빼앗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제16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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