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에는 베개가 많다.
정복왕들의 머리를 베고 남긴 기념품이 아니라 진짜 베개다. 부드러운 거위털을 채운 것, 한겨울에도 따뜻한 붉은 양털을 씌운 것, 악마들의 뿔이 눌리지 않도록 가운데가 파인 것까지. 내 것 하나면 충분했던 시절에는 그런 물건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베개 하나의 높이 때문에 성 전체가 시끄러웠다.
“높으면 목이 아픕니다.”
미아가 말했다.
“그럼 낮추면 되겠군.”
“너무 낮아도 불편해요.”
“적당한 높이는 얼마지?”
“그 아이가 누워 봐야 알죠.”
내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귀신같이 아는 여자였다. 이미 알고 있다. 아이에게 물어야 한다. 문제는 그 아이가 대답할 때마다 내 마음이 이상해진다는 점이다.
어린 영은 내 방에서 두 복도 떨어진 객실 앞에 서 있었다. 등대에서 가져온 작은 신발은 아직 바닷소금을 조금 품고 있었고, 소매가 긴 외투 끝에는 이브라가 묶어 준 푸른 실이 매달려 있었다. 영은 손가락으로 문틀을 세 번 만졌다.
“여기서 자도 돼요?”
“네가 원한다면.”
“문 닫아도요?”
“닫아도 된다.”
“아침에 열어도 같은 방이에요?”
나는 그 말 앞에서 대답을 잠깐 멈췄다. 사라진 시간 속에 갇혀 같은 아침을 되풀이하던 아이에게, 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오늘 밤은 내가 복도에 보초를 세우겠다. 그러나 널 감시하려는 게 아니다. 네가 문을 열었을 때 누군가 대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은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초는 무서운 얼굴이에요?”
문 밖에서 기다리던 바르톨이 헛기침했다. 얼굴에 난 세 줄의 흉터는 애초에 무서워 보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다만 보는 사람들이 늘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다.
“내가 웃어 보이겠습니다.”
바르톨이 말했다.
나는 급히 손을 들었다.
“그러지 마라. 더 무섭다.”
***
저녁 식탁에는 레온과 이안이 먼저 앉아 있었다. 레온은 버터를 바른 빵을 통째로 들고 있었고, 이안은 빵을 정확히 네 조각으로 나누려다 결국 크기를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왜 크기가 다르지?” 이안이 물었다.
“칼이 삐뚤었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다시 붙이면?”
“붙인다고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그 순간 영이 문가에서 굳었다.
나는 내가 무심코 한 말을 곱씹었다. 이 아이 앞에서 '원래대로'라는 말은 사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나누는 건 가능하지. 누가 큰 빵을 먹을지도 함께 정하면 된다.”
레온은 자기 접시의 가장 큰 조각을 영에게 내밀었다.
“영이 거.”
“나도 영인데.”
영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럼 둘 다 영이야!” 레온이 천진하게 말했다.
나는 레온의 논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시각시의 원장 대행 장치가 수백 장의 서류로 풀지 못한 문제를 저 녀석은 빵 한 조각으로 끝냈다.
미아가 식탁에 접시를 더 놓았다. 누구도 영을 기묘한 귀환자나 과거의 복사본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씻었는지, 뜨거운 수프를 불어서 먹을 수 있는지, 생선 가시를 골라 줘야 하는지를 물었다.
영은 천천히 수프를 떠먹었다. 세 숟가락째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영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 받지 못한 것을 대신 돌려주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이를 내 과거를 고치는 도구로 만들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영은 영이었다. 나는 카르딘이었다. 그것부터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
식사를 마칠 즈음, 북부 관측소의 마렌에게서 통신이 왔다.
'전하. 붉은 별의 새 문구가 해독됐습니다.'
“읽어라.”
'예언에 귀속되지 않는 세 존재가 확인됐다고 합니다. 첫째는 미래 시간에서 귀환한 레온. 둘째는 잔류 시간에서 돌아온 아르헨. 셋째는 어린 영입니다.'
식탁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천계는 세 존재의 위치와 보호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심사관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언제?”
'내일 아침입니다.'
나는 통신석을 손안에서 굴렸다. 천계는 늘 편리한 순간에 찾아왔다. 내가 적을 무찌르기 위해 검을 갈 때가 아니라 아이들의 밥을 먹일 때.
“심사관이 오면 어디서 맞이할지 묻겠지?” 바르톨이 물었다.
“그렇다.”
“대전입니까?”
“아니.”
나는 영이 접시 가장자리에 남긴 빵가루를 바라보았다.
“먼저 이 집의 문을 두드리라고 해라.”
그리고 덧붙였다.
“안에 아이가 있다고 함부로 열지는 못한다고.”
식탁을 정리한 뒤 나는 복도 끝 창고에서 낡은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안에는 부서진 장난감 말 한 필과, 다리가 한쪽 짧은 걸상이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 아르헨이 만들어 준 것과 닮았다. 두 개가 같은 물건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말의 귀는 한쪽이 떨어져 있었지만 이 상자는 멀쩡했다.
영이 뒤를 따라왔다.
“이거 타도 돼요?”
“말인가? 물론이지.”
“부서지면요?”
“고치면 된다.”
“못 고치면요?”
나는 나무 말의 흔들리는 발을 눌러 보았다.
“그때는 왜 부서졌는지 함께 알아보자.”
영은 조심스럽게 말 위에 앉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자 내가 상자를 옆으로 옮겨 주었다. 아이는 두 번만 앞뒤로 움직여 보더니 내려왔다.
“방에 둬도 돼요?”
“네가 쓰고 싶다면.”
영은 말의 목을 한참 쓰다듬었다.
“제가 어제 쓰던 의자는 또 없어질까 봐 무서웠는데, 이건 계속 있어요?”
“여기 두기로 했으면 누구도 허락 없이 치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 옆에 작은 종을 달았다. 부르는 소리가 잘 닿지 않을 때 흔들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영은 종을 손가락으로 살짝 쳤다. 맑은 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바르톨이 즉시 나타났다.
“전하! 비상 소집입니까?”
“아니다. 시험이다.”
“그렇다면 비상 소집을 성공적으로 시험했습니다!”
영은 깔깔 웃었다. 바르톨이 그 웃음에 우쭐해지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왕군의 가장 용맹한 장군을 복도 종 하나로 불러낼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국방에 중대한 변화일 것이다.
***
그날 밤, 영은 자신이 고른 낮은 베개에 머리를 눕혔다. 문은 아이가 직접 닫았다. 두 시간 뒤 나는 복도에서 아주 조그만 소리를 들었다.
똑똑.
“카르딘 아저씨?”
“여기 있다.”
문 안쪽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
“아직 오늘이에요?”
나는 창밖의 달을 보고 대답했다.
“그래. 아직 오늘이다.”
아이는 그제야 다시 잠들었다.
내일은 처음으로, 자기가 원하면 문을 열 수 있는 아침이었다.
제16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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