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죽은 뒤에도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왕이나 장군의 유언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서기관이 백 년 동안 출입 허가를 거절하고, 아이의 이름까지 지울 수 있다는 건 조금 지나치지 않은가.
시각시에 도착한 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색 도시의 시계탑들은 언제나처럼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낮인데 한 골목에는 밤이었고, 눈이 내리는 거리 옆에는 여름꽃이 피어 있었다. 주민들은 그 괴상한 풍경을 익숙한 듯 지나갔다. 나도 한 번 여기에서 길을 잃어 본 덕분에 더는 신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성문에 군대를 세우지 않았다. 브람, 마렌, 라기스, 그리고 로잘린과 함께 조사단을 꾸렸다. 기록 열람 요청서는 시각시 자체의 절차에 따라 제출했다. 우리가 규칙의 잘못을 말하려면,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절차를 적용할 수 있어야 했다.
“전하.” 로잘린이 시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도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입니까?”
“정확히는 시간이 아주 나쁘게 정리된 곳이다.”
“서류를 못 찾는 행정 기관 같군요.”
“맞다. 다만 서류 대신 사람이 없어지지.”
로잘린은 더 웃지 않았다.
***
우리는 기록원장의 집무실로 안내됐다.
문 앞에는 두꺼운 청동판이 붙어 있었다.
[원장실: 현직 원장에게만 공개]
“현직 원장은 누구지?”
안내인인 시각시 관리인 소렌이 대답했다.
“마지막 원장은 사망했습니다. 후임이 선출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는 자동 대행 체계가 승인권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권한이 기계에 남아 있다는 뜻이군.”
“정확합니다.”
“그 권한을 되돌려 받을 방법은?”
소렌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죽은 원장에게?”
“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소렌은 난처하게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면 이 도시에서 가장 정직한 관리인이었다.
***
대행 체계의 중심에는 거대한 청동 바퀴가 있었다. 바퀴에는 수만 개의 작은 이름표가 끼워져 있었고, 그중 몇 개는 멈춘 채 진동하고 있었다.
마렌이 등대에서 가져온 기록과 대조했다.
“여기 있어요. 아르헨의 두 기록과 레온의 기록이 모두 남아 있습니다.”
“귀환한 두 사람도?”
“네. 그런데 상태가 '이탈'로 표시돼 있어요.”
“이탈?”
라기스가 기계 뒷면의 주석을 읽었다.
“과거에는 허가 없이 문을 통과한 사람을 이탈자로 분류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돌아왔는지와는 무관합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살아서 집에 돌아왔다는데, 기계는 허락도 없이 도망쳤다고 적고 있었다.
그 아래, 어린 영의 이름표가 있었다.
[영 — 미등재]
[기존 귀환자: 카르딘]
[상태: 중복 처리 대기]
그 줄을 보는 순간 또 다른 분노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치를 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억눌렀다. 저 바퀴 안에는 이름이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미뤄진 사람이 수백 명 더 있을 수 있었다.
“이 기록의 원본이 있나?”
소렌이 서랍에서 오래된 계약서를 꺼냈다.
첫 장에는 문을 통과하는 모든 존재의 시간을 측정한다는 목적이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는 한 사람이 다른 기록을 덮어쓸 경우 생기는 오차를 줄이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나는 마지막 장을 읽었다.
[동일 이름·기원 기록 발견 시 기존 귀환자를 정본으로 채택한다. 잔류 기록은 자동 보류한다.]
“보류라는 말이 결국 감금이 되었군.”
브람이 대답했다.
“처음엔 실제로 기록을 보존하려는 조치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본 하나를 강요하니, 나머지가 밖으로 나갈 권한을 잃게 된 거죠.”
“이걸 고치려면?”
“정본이라는 전제부터 지워야 합니다.”
***
그때 바퀴가 갑자기 회전했다.
빈 복도에서 건조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무단 열람 감지. 위반자 신원 확인.]
나는 앞에 섰다.
“마왕 카르딘. 기록을 조사하러 왔다.”
[기존 귀환자 카르딘. 본인 확인 완료.]
“어린 영의 기록을 보류한 자가 누구지?”
[자동 대행 승인.]
“왜 보류했지?”
[중복 신원은 동시 존재할 수 없음.]
“누가 정한 규칙이냐?”
[원장 승인.]
“원장은 죽지 않았나?”
잠시 기계 소리가 멎었다.
[원장은 부재중입니다. 원장에게 승인 요청을 보내십시오.]
내 옆에서 로잘린이 아주 조용히 말했다.
“전하. 이쯤 되면 기계보다 절차를 만든 사람이 더 무섭군요.”
“맞다.”
나는 바퀴에 대고 말했다.
“너에게 원장을 부활시키라는 게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다시 갖도록 요청하는 거다.”
[요청 처리 불가.]
“그렇다면 요청을 기록해라. 거절했다는 사실도.”
[기록 완료.]
나는 뒤로 물러났다.
기계는 무언가를 판단하는 존재라기보다 오래된 명령을 반복하는 장치에 가까웠다. 이런 경우 진짜 싸워야 할 상대는 검을 든 적이 아니었다.
그 기계가 거절한 뒤에도 아무도 항의하지 못하도록 만든 제도였다.
***
시각시 의회에는 열한 개의 의석이 있었다.
그중 여섯 개가 비어 있었다. 어떤 의원은 늙어 죽었고, 어떤 의원은 시간의 균열에 사라졌고, 몇몇은 예전 도시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결정할 사람이 모자랍니다.” 소렌이 말했다.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왜 새 의원을 뽑지 않았지?”
“의원의 자격은 원장 승인을 받아야 해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또 원장이군.”
그날 나는 처음으로 마왕성에서 조세 개혁을 하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적어도 세금은 내가 마음먹으면 줄일 수 있었다.
마렌이 기록을 뒤적이다 눈을 크게 떴다.
“전하, 규정의 부칙에 예외가 있어요.”
“무엇이지?”
“대행 체계가 주민의 생명이나 자유를 제한했을 경우, 피해 당사자와 외부 증인들이 함께 공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답니다. 원장 승인이 없어도 열리는 절차예요.”
로잘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영의 진술을 받아야겠군요.”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는 형식이라면 반대다.”
“아이가 증언할 권리는 보장하되, 안전과 절차의 책임은 어른들이 지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통신석이 울렸다.
등대의 영이었다.
'아저씨.'
“듣고 있다.”
'오늘은 어제 그림도 기억나요.'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 잘됐다.”
'내일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럴 수 있게 지키고 있다.”
아이의 작은 목소리 뒤로 종루의 경고음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기계가 멈췄던 계산을 다른 곳에서 재개한 것이다.
나는 마렌에게 말했다.
“공개 이의를 준비하자. 이번엔 아이가 원장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도록.”
제1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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