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장갑은 손을 가리는 물건이다.
나는 전쟁 때 그것을 많이 보았다. 독을 쓰는 자도, 고문 도구를 만지는 자도, 귀족의 인장에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자도 검은 장갑을 끼곤 했다.
그런데 영의 방에 나타난 장갑은 이상했다.
“그림자만 보인다고?”
'네. 키가 엄청 커요.'
“말은 하느냐?”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런데 문손잡이를 만져요.'
브람이 손짓했다. 아직 실제 사람이 들어온 흔적은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물러나 달라고 설명하고, 문을 직접 열거나 그림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라.”
'네.'
몇 분 뒤 그림자는 사라졌다. 문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라기스는 통신 기록을 보여 주었다.
[외부 접근: 없음]
[내부 그림자 투영: 있음]
“누군가 실제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아이가 보는 공간에 형상을 보냈군.”
“협박이거나 확인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상만 보고 사람을 추적하지 마라. 아이가 무엇을 봤는지도 한 번만 묻고, 겁주는 그림을 계속 보여 주지는 말자.”
***
나는 마왕성으로 돌아왔다.
고집스럽게도 레온의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고 싶었다. 녀석이 내게 접시를 보여 주며 '다 먹었다'고 자랑할 때마다, 세상이 아직 굴러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식탁에는 우유를 따르는 작은 주전자가 있었다.
레온이 두 손으로 주전자를 들었다.
“내가!”
“무겁다. 미아에게 부탁해라.”
“내가!”
나는 녀석의 손을 빼앗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미아가 옆에서 작은 컵 하나를 가져왔다.
“그럼 이 컵에 조금만 따라 볼까요? 제가 옆에서 잡고 있을게요.”
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유를 식탁 위에 부었다.
정확히는 컵 옆에만 부었다.
나는 식탁보에 퍼져 나가는 하얀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마왕성의 공식 만찬에서 실수한 시종이라면 당황해서 고개부터 숙였을 것이다.
하지만 레온은 입술을 쭉 내밀더니 말했다.
“또!”
“……또?”
“이번엔 컵!”
미아가 천을 가져왔다.
“그렇죠. 이번에는 컵을 보고 천천히 따라 볼까요?”
나는 저 작은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실수해도 계속 시도할 수 있다고 믿는 얼굴.
내 어린 시절에는 흔하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
식사 뒤, 나는 레온에게 종이와 붓을 내밀었다.
“오늘 영이라는 아이와 이야기했다.”
레온은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영?”
“그래. 나도 어릴 때 그렇게 불렸지.”
“아빠 이름 두 개야?”
나는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구나.”
“영이 친구?”
“아직 만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필요할지도 모르지.”
레온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 둘이 손을 잡은 그림이었다. 한 명은 아주 큰 왕관을 썼고, 다른 한 명은 붉은 신발을 신었다.
“이건 나냐?”
“아빠!”
“그럼 작은 쪽은?”
“영!”
이안이 옆에서 종이를 들여다봤다.
“왕관 그린 사람 너무 커.”
“내가 마왕이니까 그 정도는 돼야 한다.”
“왕관은 머리 위에 있어야지. 왜 얼굴까지 덮었어?”
나는 레온이 그린 그림을 다시 봤다. 왕관이 내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훌륭한 방어구로군.”
미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나까지 웃었다.
***
나는 아이들의 그림을 등대로 보냈다.
영에게 보여 주기 전에 그가 원치 않는 그림은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녀석은 그림을 보겠다고 했다.
'큰 사람이 아저씨예요?'
“그렇다.”
'왜 얼굴이 없어요?'
“우리 아들이 왕관을 너무 크게 그렸다.”
아이가 처음으로 웃었다.
조용하고 짧은 소리였다. 하지만 통신석의 잡음 사이에서도 분명하게 들렸다.
'저도 그림 그려도 돼요?'
“물론이다.”
그림은 곧 돌아왔다.
이번에는 작은 문이 그려져 있었다. 문 안에는 아이 한 명과 의자 한 개. 의자 위에는 컵이 있었다.
컵 밑에 서툰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영]
나는 한동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그 아이는 자기 이름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 이름을 미등재라고 써 놓았어도, 스스로를 부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잘 그렸다.”
'글씨도요?'
“글씨도.”
'아르헨이 가르쳐 줬어요.'
나는 웃었다.
내 기억 속 아르헨도 내 손가락을 잡고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같은 기억이 어느 순간 둘로 갈라졌다고 해서 한쪽의 배움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
그날 밤, 미래의 레온이 섬에서 통신을 걸어 왔다.
“카르딘. 어린 영에 대해 들었습니다.”
“듣기 원치 않으면 지금은 묻지 않아도 된다.”
“아니요. 제가 말할 것이 있습니다.”
청년은 손목을 문질렀다. 성검이 붙잡았던 자리에는 여전히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가 마지막 전투 뒤 복도에서 봤던 아이가 그 아이인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그 아이가 의자 하나를 지키고 있었어요. 거기에 누가 앉아야 하는지 몰라서요. 자기가 앉으면 다른 사람이 못 돌아올까 봐 겁냈습니다.”
나는 종이 위의 의자를 내려다봤다.
“그 아이를 직접 만나 본 적 있나?”
“말을 걸었습니다. '왜 앉지 않니' 하고요.”
“그래서?”
“그 아이가 대답했어요. '다른 영이가 먼저 나갔으니까요.'”
청년은 시선을 내렸다.
“그때 저는 아이에게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집에 보내 주겠다고요.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못했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 탓만은 아니다. 그 방을 만든 자와 지켜 본 자의 책임도 있다.”
“그렇다고 제 말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그래. 네 말도 남는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레온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아이에게 전해 주세요. 지금 빈 의자가 있다면, 앉아도 된다고.”
나는 그림을 다시 접었다.
등대의 작은 문 안에 그려진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내가 나가면 누군가 남아야 한다는 거짓말을, 아이가 아직도 믿고 있는 자리였다.
내일은 그 의자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제1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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