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의 목소리는 기억하고 있다.
아르헨이 부르면 "네" 대신 "왜요" 하고 대답하던 버릇도, 겁이 나면 끝말을 삼키던 습관도. 그런데 등대 지하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기억보다 훨씬 작았다.
'이제는…… 나도 나가도 될까요?'
수정판에 떠 있던 글자가 깜빡였다.
[잔류 구역 추가 응답: 1]
[신원 식별: 영]
[기존 귀환자와 이름 중복]
나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조금 전 미래의 레온과 또 다른 아르헨이 나왔던 문이었다. 그들이 나올 때도 문을 대신 열지 않았다. 그런데 내 목소리를 닮은 아이가 나타났다고 해서 원칙을 바꿀 수는 없었다.
“영.”
'……네.'
“나는 카르딘이다. 네 말을 듣고 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카르딘은 마왕 이름인데요.'
“맞다.”
'마왕은 사람을 잡아먹어요?'
뒤에서 바르톨이 숨을 들이켰다. 나는 녀석의 갑옷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고 눈을 감았다.
“아니다. 적어도 나는 사람을 먹지 않는다.”
'그럼 왜 마왕이에요?'
“……설명하려면 좀 길다.”
바르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전하! 제가 전하의 위대한 정복사를 요약하겠습니다. 제1차—”
“입 다물어라.”
바르톨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마왕군이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한 완벽한 통제였다. 다만 정복사 따위보다 지금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거기는 어디지? 무엇이 보이나?”
'방이요. 창문이 있고요. 문도 있어요.'
“창밖은?”
'비가 와요. 그런데 창문에 닿지는 않아요.'
아르헨이 갇혀 있던 공간도 그랬다. 움직이지 않는 날씨. 끝나지 않는 순간. 하지만 같은 구조라는 이유로 같은 장소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
“혼자 있느냐?”
'네. 다른 사람들 발소리가 나다가 오늘 없어졌어요.'
“무섭겠구나.”
아이의 대답은 너무 빨랐다.
'안 무서워요.'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린 내가 그랬다. 무섭다고 말하면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무섭지 않다고 먼저 말하곤 했다.
“그래. 지금은 대답 안 해도 된다. 대신 문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라. 문이 갑자기 움직일 수도 있다.”
'왜요?'
“우리가 아직 이 문을 다 알지 못하니까.”
잠깐 조용해졌다가 아이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갔어요?'
“두 명이 나왔다. 둘 다 안전한 방에서 쉬고 있다.”
'그럼 이제 문 닫아요?'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 아이가 정말 어린 나일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모르던 수많은 귀환자가 저 질문을 하며 문 앞에서 기다렸을 테니까.
“아니. 네가 싫다고 하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들어 볼 생각이다. 하지만 나오겠다고 한다고 당장 문을 열진 않겠다. 밖에도 위험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거짓말 아니죠?'
“마왕이란 놈들은 거짓말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도 기록하고 확인할 사람을 곁에 두겠다.”
바르톨이 얼굴을 들었다.
“전하,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자네는 내 편이지 않나.”
“……아, 그렇군요.”
나는 마렌과 라기스를 불렀다. 독립 기록판을 켜고 아이에게 아직 답변하고 싶지 않은 질문은 거부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음성을 내 기억과 대조하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
해가 뜨기 전에 마왕성으로 짧은 통신을 걸었다.
“미아, 레온은?”
'이안이랑 빵 반죽을 하고 있어요. 전하가 없는 동안 부엌은 안정적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정적이라고?”
'적어도 마왕의 마력으로 발효 시간을 단축하려 하진 않으니까요.'
반박할 수 없었다. 지난번 반죽은 천장을 뚫었다.
“오늘은 늦는다.”
'또 누가 발견됐나요?'
“아이 하나. 아직 어떤 아이인지는 모른다.”
미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아이에게 따뜻한 옷이 필요하겠네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아직 출생 기록과 인과 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아는 먼저 아이가 추울지를 생각했다.
“준비는 하되, 이쪽으로 보내지는 마라. 나올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알겠습니다. 크기를 모르니 옷도 여러 벌 준비할게요.'
통신이 끝났다. 등대 창밖에는 동쪽 바다가 회색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
***
첫 번째 확인은 소리였다. 마렌이 아이에게 아주 쉬운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니?”
'찐 감자요.'
“좋아하는 장소는?”
'아르헨네 부엌.'
“아르헨을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니?”
아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요. 아르헨이 손을 잡고 있었는데, 손이 없어졌어요.'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 기억에 아르헨의 손은 따뜻했다. 어린 시절 시각시의 귀가실에서 누군가 내 손을 놓았던 장면도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다만 그 뒤의 일을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네 발에는 신발이 있었느냐?”
'한 짝이요.'
“어느 쪽?”
'……왼쪽이요.'
나는 오른발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나의 기억에서는 왼쪽 신발이 없었다. 반대로 저 아이의 기억에는 오른쪽이 없었다.
브람이 내 옆에서 작게 말했다.
“대칭 기록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고요.”
“알고 있다.”
다만 이것은 섣불리 동일인이라고 선언할 증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정판 아래에서 새 글자가 떠올랐다.
[중복 신원 처리 필요]
[귀환 승인 방식: 기존 귀환자의 대체 동의]
나는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대체 동의.
그 표현을 보는 순간 손끝에 검은 불꽃이 솟았다. 누군가를 밖으로 보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게 만드는 오래된 절차였다. 아르헨과 레온을 가뒀던 방식이 또다시 나타난 것이다.
“라기스. 자동 승인을 차단해라.”
“이미 수동 모드인데요.”
“그렇다면 이 문장은 제안일 뿐이다. 우리에게 명령할 권리는 없다.”
수정판이 다시 깜빡였다.
[동일 신원 동시 존재 불가]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건 네 계산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법칙이 아니야.”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 또 영이가 있어요?'
나는 대답하기 전에 숨을 고르았다.
“나도 어릴 때 영이라고 불렸다.”
'그러면…… 아저씨가 나예요?'
이 질문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
“모른다. 우리가 같은 사람인지, 서로 다른 시간을 산 두 사람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 저 때문에 아저씨가 없어져요?'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바다 위로 조금 더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 그리고 네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겠다.”
아이의 가벼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뒤, 녀석이 물었다.
'그러면 저한테도 아침이 와요?'
나는 그제야 목이 메었다.
“오게 할 방법을 찾겠다.”
그 약속에 마법의 효력이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했다.
당장 문을 여는 대신, 이 문이 왜 한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제15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