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기다리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했다.
대군이 진군하면 도시가 문을 열 때까지 포위했고, 사신의 답이 늦으면 기한을 정해 협박했다.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얻지 못하면 적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내가 등대의 문턱 앞에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문 너머에는 스무 해 뒤의 레온이 있었다.
그리고 방금, 그는 성검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되었지?”
통신석 너머의 마렌이 숨을 골랐다.
'성검은 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레온 님의 손목에 있던 빛의 줄이 풀렸어요.'
“다친 곳은?”
'아직 알 수 없어요. 본인에게 직접 묻겠습니다.'
잠시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딘.'
“듣고 있다.”
'손이 움직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믿을 수가 없네요. 스무 해 동안 이렇게 단순한 일이 왜 불가능했는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전쟁의 마지막 날 그가 내 가슴에 꽂았던 검은, 나를 죽인 뒤에도 그를 붙잡고 있었다.
우리가 아르헨을 먼저 내보낸 뒤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아직 몰랐다. 두 잔류자를 한 칸에 묶어 두던 오래된 절차가 풀렸을 수도 있었다. 한 사람의 귀환이 다른 사람의 감옥을 약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원인을 성공이라고 적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지금은 네가 결정할 수 있겠군.”
'……네.'
“나오고 싶으냐?”
긴 침묵 끝에 청년이 답했다.
'나가겠습니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네 검도 데려가고 싶으냐?”
'아니요.'
“그럼 거기에 두어라.”
'놓고 와도 됩니까?'
“네 검은 너를 대신하지 않는다.”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
두 번째 귀환을 준비할 때는 첫 번째보다 더 조심했다.
문턱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구조 대원 둘만 남겼다. 아르헨이 걸어 나왔던 곳에는 젖은 흔적이 남지 않았고, 실제 바다는 평온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무사히 나왔다고 다음 사람도 반드시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브람이 시계 여섯 개를 확인했다.
“현재 시간 모두 정상. 두 번째 밀물 신호 없음.”
라기스는 자동 후보 등록 회선이 차단된 상태를 다시 살폈다.
“어린 레온과 이안의 신호는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말을 두 번 확인했다.
“정말인가?”
“예. 마왕성 보호 구역에서 별도로 확인했습니다.”
그제야 문 앞에 섰다.
이브라는 갑판에서 날씨를 확인하고 있었다. 만에 구조선 한 척을 대기시켰고, 등대 뒤에서는 페룬이 담요를 준비했다.
현재의 아르헨과 돌아온 아르헨은 정원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같은 이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사람이 돌아오면 세계가 당장 무너질 거라고 누가 말했더라.
모든 세계를 합해도, 지금 저 두 사람이 차를 마시는 장면 하나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레온.”
나는 문에 대고 불렀다.
'네.'
“문을 열어라. 네가 원한다면.”
잠시 후 나무문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뭔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손잡이가 덜컥거리다 멈췄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잡았다.
그 순간 미래의 레온이 소리쳤다.
'기다려 주세요!'
나는 손을 떼었다.
“알았다.”
'제가…… 제가 열겠습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곧 손잡이가 다시 돌아갔다.
문틈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왔고, 마른 복도의 냄새가 바다 위로 번졌다. 누군가 맨손으로 문을 잡았다. 검을 쥐던 손이었다. 굳은살과 오래된 상처가 가득한 손.
그리고 청년이 걸어 나왔다.
은빛 눈동자.
검은 머리칼.
왼쪽 어깨의 달 모양 흉터.
나는 마지막 전투의 레온을 그대로 마주한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다.
그의 손에 성검이 없었다.
레온은 두 걸음 걷더니 무릎이 꺾였다. 나는 급히 팔을 뻗었다.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상했다.
스무 해 전 내 가슴에 검을 꽂았던 자의 몸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천천히.”
내가 말했다.
“이제 뛸 필요 없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정말…… 돌아왔습니까?”
“그래. 적어도 지금 여기는 섬이다. 바람도 불고, 바다도 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울었다.
나는 그를 안아 주었다.
한때는 이 청년을 복수해야 할 원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붙잡은 것은 칼을 든 용사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 하나였다.
***
의사가 레온을 살폈다.
맥박과 호흡은 정상이었다. 다만 체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었고, 손목의 빛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이 저절로 사라질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에게 침대와 따뜻한 물을 준비했다.
“쉬어라. 오늘은 질문을 하지 않겠다.”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됩니까?”
“무엇이냐?”
“어린 저는…… 무사합니까?”
나는 웃었다.
“아주 멀쩡하다. 오늘 아침에는 미아의 부엌에 밀가루를 흩뿌렸다더군.”
레온은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그렇다. 지금쯤 미아는 누가 부엌을 제분소로 만들었는지 조사하고 있을 것이다.”
청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미래의 마지막 전투에서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다른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할까요?”
“그건 그 아이에게 물어봐야겠지.”
“당장 만나게 하지는 않으실 겁니까?”
“네가 여기 왔다고 해서,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만남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요.”
“무엇이?”
“당신은 제가 알던 마왕이 아니군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네가 알던 그 마왕이 될 생각은 없다.”
***
밤이 되자 나는 마왕성에 연락했다.
레온은 오늘도 잠을 안 자겠다고 고집했다. 미아가 겨우 침대에 눕혀 놓았더니 이안이 남긴 그림을 다시 꺼내 보고 있었다.
“아빠!”
통신석 너머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래. 아빠다.”
“배 왔어?”
“아직. 곧 돌아간다.”
“곰도?”
“곰은 거기 있잖느냐.”
“아빠 곰!”
나는 그제야 녀석이 보내 준 파란 깃발을 떠올렸다.
“그래. 곰 깃발도 가져가겠다.”
레온이 만족한 듯 웃었다.
“잘 자!”
나는 통신석을 끄고 잠시 앉아 있었다.
이 섬에는 지금 두 아르헨이 있었다. 그리고 스무 해 뒤의 레온도 있었다. 앞으로 그들이 어떤 삶을 선택할지, 서로 다른 시간이 다시 충돌할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누구도 대신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때 등대 아래의 수정판이 스스로 켜졌다.
브람이 달려와 보고했다.
“전하. 귀환자가 모두 나온 뒤에도 동행자 출구의 신호가 꺼지지 않습니다.”
“왜?”
“새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귀환 완료: 2명.]
[잔류 구역 추가 응답 감지: 1명.]
나는 굳어 버렸다.
새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나도 나가도 될까요?'
아이의 목소리였다.
내가 어린 시절에 쓰던 말투.
아르헨이 나를 부르던 이름.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영'이었다.
마왕이 되기 전, 집에 돌아갈 문을 찾고 있던 어린 나.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문이 두 번 열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정말로 누가 남아 있었는지 물어야 할 때가 왔다.
제15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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