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터에서 한 번도 적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어디에 서고 싶은가.'
칼끝이 향하는 곳이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쪽 섬의 귀가실을 조사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질문이었다.
북부 관측소와 연결된 통신석을 켰다. 회색 유리 너머에서 스무 해 뒤의 레온이 대답했다.
'동쪽 바다라고 하셨지요?'
“그렇다. 현재 신호는 이 섬을 도착지로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번의 밀물이 있고, 한쪽 물길에서는 물건이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사람에게 안전하다고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면 아직 열지 말아 주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네 선택으로 기록하겠다.”
'카르딘.'
“왜?”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싫다고 하면 멈춘다는 말.'
그 문장은 내 가슴에 성검보다 깊이 들어왔다.
나는 한참 침묵하다 대답했다.
“예전의 내가 그 말을 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듣습니다.'
그는 짧게 웃었다.
'이번에는…… 저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두 번째 목소리와 연결했을 때는 현재의 아르헨도 곁에 있었다.
나는 먼저 나이 든 여자의 의자에 방석을 하나 더 놓았다. 서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보더니 웃었다.
“영, 네가 어릴 때는 나한테 의자를 안 내줬잖니.”
“그때는 의자가 비싼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서 있으면 아프다는 걸 압니다.”
통신석 너머에서 오래된 아르헨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거기 있니?'
현재의 아르헨이 대답했다.
“아르헨이야. 너도 그 이름을 쓴다고 들었어.”
'그래. 이상한 일이네.'
“나는 네가 가짜라고 말하러 온 게 아니야.”
한참 침묵이 이어졌다.
'고마워.'
나는 마렌에게 기록을 부탁했다. 그러나 두 여자의 말이 같다는 이유로 이름을 병합하지 않았다. 현재의 아르헨은 시각시 외곽에서 살아온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유리 너머의 아르헨은 반복되는 복도에 남아 있었다. 서로에게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이 있었다.
“나오시게 된다면 어디에 가고 싶으십니까?”
내가 물었다.
'바다가 아닌 땅이면 좋겠구나. 그리고 나는…… 그곳의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만나자마자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아.'
현재의 아르헨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럴 생각 없어. 만나면 차를 마시자.”
그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나는 그 두 문장을 따로 적었다.
***
귀환자들이 서게 될 장소를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사람은 성검과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은 현재 살아 있는 아르헨과 같은 이름과 얼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같은 해변에 동시에 나타나게 했다가 두 경로가 얽히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랐다.
브람은 등대 앞 평지를 두 구역으로 나눴다.
첫 번째 구역은 낮은 나무 울타리를 세워 바닷물이 닿지 않게 했다. 두 번째 구역은 등대 뒤의 작은 정원이었다. 서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몸이 부딪치지 않을 거리였다.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겁니까?” 이브라가 물었다.
“아니다. 같은 이름이라고 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위한 조치다. 원한다면 나중에 서로 만날 수 있다.”
“누가 먼저 오나요?”
“아직 누구도.”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는 도착지의 안전을 시험할 뿐이다. 출발을 결정하는 사람은 저쪽에 있다.”
이브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때 표에 도착 예정 시각을 쓰지 않겠습니다.”
“좋다.”
***
밤에는 등대지기 페룬이 오래된 덮개를 열었다.
안에는 세 개의 다이얼이 있었다.
[과거 귀가실]
[현재 북부 관측소]
[해상 귀가실]
세 번째 다이얼에 검은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먼지가 앉은 정도로 보아 몇 년 전에도 손댄 흔적이 있었다.
라기스는 덮개를 연 상태로 필사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은 다이얼의 위치를 표시했다.
“누군가 섬을 도착지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언제?”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도 여기 손댄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 아래층에서 두 번의 노크가 들렸다.
똑. 똑.
페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소리요.”
나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노크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덮개 안쪽의 수정판이 켜졌다.
[관리자 방문 예약 확인.]
[예정 방문자: 검은 장갑.]
나는 다이얼에서 손을 뗐다.
그날 밤 문을 열지 않았다.
손님이 예정돼 있다는 것과, 그 손님을 들여보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제14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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