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인의 목에 검을 겨누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
과거의 나라면 내가 모르는 과거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면 검을 뽑고, 진실을 말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했겠지.
그러나 오래된 방의 찻잔 두 개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하나는 차가 식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아직 김이 났다.
“누구와 차를 마셨지?”
노인은 잠깐 머뭇거렸다.
“내 이름은 페룬이오. 그리고 두 번째 잔은 손님을 위해 늘 놓아 두는 거요.”
“언제부터?”
“기다리는 법을 배운 뒤로.”
애매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그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은 있었다.
페룬은 한때 이 섬으로 들어온 배의 승선자를 기록하는 관리인이었다고 했다. 선원들이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돌아올 때, 등대는 안개 속에서 불을 밝혀야 했다. 사람이 제때 돌아오지 못하면 바다에서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해, 섬에 낯선 관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등대 아래의 빈 창고를 개조했다. 시간의 틈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귀환시킨다며 나무문을 설치했다. 처음에는 정말로 몇 사람이 구조되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귀가실을 지나온 사람들의 나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소.”
“얼마나?”
“하루가 지나기도 하고, 열 해가 지나기도 했지. 누구는 멀쩡했고, 누구는 자기 이름을 잊었소.”
페룬은 창밖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소. 누구를 구조했는지보다, 누가 오지 않았는지를.”
***
이브라가 급히 들어온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전하. 만으로 들어오는 물길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밀물이 시작되고 있었다. 만 안쪽의 돌계단에서 물이 한 층씩 올라왔다. 그런데 등대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브라가 해시계를 가리켰다.
“저녁 물때가 아닙니다. 오늘 계산으로는 아직 한 시간 남았습니다.”
브람은 관측 시계를 꺼냈다.
“제 시계는 정상입니다.”
그때 등대 꼭대기에서 종이 울렸다.
땡.
계단을 덮었던 물이 갑자기 빠져나갔다.
물결은 아래로 내려갔지만 젖은 자국은 그대로 남았다.
“이건…….”
라기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전의 물때가 한 번 더 일어났습니다.”
페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같은 밀물이 두 번 올 때가 있소. 첫 번째는 실제 바다. 두 번째는 귀가실이 기억하는 바다.”
나는 곧바로 물었다.
“둘 중 어느 쪽에 사람이 설 수 있지?”
“그걸 모르겠어서 문을 못 열었지.”
페룬의 말에는 가식이 없었다.
나는 이브라를 바라보았다.
“바깥 배는?”
“실제 물길을 따라 안전하게 정박해 있습니다. 다만 두 번째 밀물이 본선까지 퍼지면 닻을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문으로 보내는 대신 해변에 시험용 나무 상자를 놓았다. 하나에는 작은 종을 달았고, 다른 하나에는 붉은 천을 매달았다. 실물 바다의 첫 밀물이 상자들을 적셨다. 두 번째 물결이 왔을 때는 한 상자만 사라졌다.
사라졌던 상자는 곧 등대 창고 안에 나타났다.
“옮겨졌다.”
브람이 기록했다.
“하지만 어디를 거쳤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바닷물이 없었다. 대신 마른 모래가 얇게 쌓여 있었다.
시각시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지 않는 복도.'
두 번째 밀물은 물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모른다. 물론 추측일 뿐이다.
***
그날 밤 우리는 귀가실을 열지 않았다.
섬이 가진 이상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잔류자를 불러내는 것은 구조가 아니라 도박이었다. 라기스는 두 번째 밀물이 반복되는 시각을 측정했고, 이브라는 실제 조류와 다르게 움직이는 구간을 표시했다.
바르톨은 통신석 너머에서 말했다.
“전하. 바다를 통째로 얼리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밀물이 들어오지 않을 텐데요.”
“물이 얼어도 기록은 얼지 않는다.”
“아.”
“그리고 배들이 얼음에 갇힌다.”
“그렇군요.”
나는 통신석을 낮췄다.
잠시 후 마왕성에서 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레온이 바다 그림을 그렸어요.”
“물고기를 그렸나?”
“아뇨. 배를 두 척 그렸어요. 하나에는 아빠, 하나에는 집이라고 썼답니다.”
나는 조금 웃었다.
“왜 두 척인지 물었나?”
“한 척이 집에 못 오면 다른 척이 데리러 간대요.”
말을 잃었다.
아이가 내놓은 생각은 지금 우리의 계획보다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짚고 있었다. 도착지에 안전하게 내리는 것뿐 아니라, 첫 번째 길이 막혔을 때 돌아올 두 번째 길도 있어야 했다.
“미아. 레온에게 잘했다고 전해 줘.”
“직접 이야기하시죠. 아직 안 잤거든요.”
잠시 뒤 레온이 소리쳤다.
“아빠! 배 둘!”
“그래. 배는 둘이다.”
“집 와!”
“가겠다.”
그 약속을 하고 나니 문턱을 시험하기 전에 확인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는 단지 섬으로 들어오는 길만 만들고 있었다.
섬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아직 시험하지 않았다.
***
새벽에 페룬이 내게 오래된 항해 일지를 건넸다.
노란 종이에는 똑같은 날짜가 두 번 적혀 있었다. 두 번째 날짜 옆에는 작은 손글씨가 있었다.
[첫 밀물에 들어온 자는 출항했다.]
[두 번째 밀물에 들어온 자는 기록에 남았다.]
그 아래 한 문장이 더 있었다.
[영은 두 번째 밀물에서 건져졌다.]
나는 침묵했다.
과거의 내가 이 섬에 왔다면, 어느 배를 탔던 걸까.
그리고 누가 나를 건져 냈던 걸까.
제14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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