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는 마왕의 눈도 쓸모가 없었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마안은 적의 마력을 찾아내는 데에는 탁월하다. 그러나 안개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조금씩 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갑판 끝에서 본 파도는 왼쪽으로 흐르는데, 배 밑에서는 오른쪽으로 울렸다.
“닻 내려요!”
선장 이브라의 명령에 선원들이 움직였다. 쇠사슬이 요란하게 풀렸다. 그러나 닻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수심이 지나치게 깊습니다.”
브람이 말했다.
“섬 가까이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니 육지가 먼저인지 확인해야겠지.”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파도를 베어 길을 만드는 일이라면 쉬웠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우리가 찾는 출구가 무너진다면, 안에 갇힌 두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다.
이브라가 작은 보트를 내릴 준비를 했다.
“먼저 줄을 연결한 측량용 부표부터 띄우겠습니다. 사람은 아직 내리지 않습니다.”
“좋다.”
부표에는 독립 시계와 풍향계를 묶었다. 선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에 내리고 줄을 풀었다. 보이지 않던 흐름이 부표를 밀어갔다. 열 걸음, 스무 걸음. 그러다가 뚝 멈췄다.
안개가 부표를 둘러싼 순간, 시계바늘이 반대로 한 칸 움직였다.
나는 턱을 굳혔다.
“라기스.”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부표의 시계만 역행했습니다.”
“줄을 당겨라.”
선원들이 힘을 합쳐 부표를 되돌렸다. 시계는 여전히 한 칸 뒤로 가 있었지만 움직임은 정상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 뒤로 우리는 안개를 뚫는 대신 따라 흐르기로 했다. 배의 속도를 낮추고, 물결의 방향을 작은 표식으로 남겼다. 이브라는 배를 억지로 안쪽으로 밀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물길을 돌았을 때.
안개가 갈라졌다.
***
검은 바위가 드러났다.
섬은 생각보다 작았다. 낮은 절벽이 말굽 모양으로 둘러선 가운데 한쪽만 좁은 만으로 열려 있었다. 바위 위에는 둥근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등대의 꼭대기에서는 불빛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창문 아래에 흰 천이 매달려 있었다.
천에는 매듭 네 개가 있었다.
문을 닫지 마.
아르헨이 남긴 말이었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전하, 상륙할까요?” 바르톨이 물었다.
“우선 바닷길부터 확인한다.”
이브라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마왕이 당장 섬으로 뛰어들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저 만 안쪽은 얕습니다. 하지만 썰물 때 바위가 드러나면 배가 갇힐 수 있어요.”
우리는 대형 선박을 바깥에 정박시키고 작은 보트에 사람 네 명만 태웠다. 나와 이브라, 브람, 라기스. 바르톨은 구조선과 본선 사이의 통신을 맡았다.
“전하 곁에 제가 있어야…….”
“네가 배에 있어야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그 말을 듣고 바르톨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섬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먼저 흙을 밟아 보았다. 젖은 모래. 조개껍데기. 얕은 웅덩이에 고인 빗물. 대부분은 평범했다.
그러나 발자국이 이상했다.
내 것 말고 다른 발자국이 있었다. 그것도 막 찍힌 것처럼 선명했다.
맨발의 작은 발자국이었다.
“아이?”
이브라가 물었다.
나는 무릎을 굽혔다.
발자국 끝에는 발가락 다섯 개가 또렷했다. 그런데 물이 고인 쪽에서 멈춰 있었다. 들어오는 흔적은 있어도 되돌아간 흔적은 없었다.
“사람이 실제로 지나갔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단정하지 말자.”
내가 일어나자 라기스가 물었다.
“전하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물론.”
실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이런 발자국을 알고 있었다.
어린 영의 발 크기와 너무 비슷했다.
***
등대 아래에는 낡은 창고가 붙어 있었다. 문짝은 썩어 가고 있었지만 손잡이만은 새것처럼 닦여 있었다. 문 옆의 나무패에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귀가실 0호.]
[도착자 본인이 문을 엽니다.]
나는 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문이 지금 내게 열리더라도, 그것이 두 잔류자를 위한 안전한 출구라는 보장은 없었다.
브람이 주변을 살폈다.
“입구의 측정값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문 뒤쪽에서 별도 통로 신호가 나옵니다.”
“사람이 있나?”
라기스가 청진석을 댔다.
“발소리가 들립니다.”
바깥쪽의 모래는 촉촉했다. 그런데 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공기는 마른 겨울 냄새가 났다. 시각시의 오래된 방에서 맡았던 것과 비슷했다.
“누구냐?”
나는 문에 대고 말했다.
대답 대신 문 안에서 쇠붙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아주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두드려 주시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열지 말고?”
“그렇소. 그 문은 도착한 사람이 열어야 하니까.”
나는 주먹을 들어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쇠빗장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안에는 늙은 등대지기 하나가 있었다. 오른쪽 다리에는 쇠 보조기가 채워져 있었고, 탁자 위에는 절반쯤 식은 차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나를 아나?”
“아주 오래전에도 그런 눈을 한 아이가 왔지.”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등잔을 들었다.
“그 아이는 나한테 문을 열어 달라고 하지 않았소. 자기가 열어도 되느냐고 물었지.”
나는 숨을 삼켰다.
“이름이 무엇이었나?”
노인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입술을 움직였다.
“영이라고 했소.”
등잔의 불꽃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아이 뒤에는, 문을 닫지 말라고 외치던 여자가 있었소.”
제14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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