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 성문 위에 내 이름을 새겼다.
누가 이 도시를 지배하는지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름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바람에 깃발이 찢어져도 돌에 새긴 글씨는 남아 있었으니까.
오늘 나는 나무문에 이름을 새기려고 왔다.
하지만 내 이름은 아니었다.
“레온과 아르헨.”
내가 말하자 마렌이 펜을 멈췄다.
“두 분을 한 칸에 쓰나요?”
“아니. 각자의 칸에.”
그녀는 기록판에 두 줄을 만들었다.
[귀환 요청자 A: 레온.]
[귀환 요청자 B: 아르헨.]
이름이 같더라도 현재의 레온과 미래의 레온은 같은 자리에 넣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아르헨과 잔류 구역에서 응답한 아르헨 역시 섞지 않았다.
“서명을 받으면 되나요?”
“먼저 위험을 알려야 한다.”
***
그날 회의에는 모두 모였다.
로잘린은 성왕국 신전의 우회선을 임시 봉쇄했다는 서류를 가져왔다. 잠금장치를 부수거나 기록을 없애지 않고 외부 신호만 차단한 조치였다. 조사 끝에 누가 조작했는지 판단할 자료를 남겨 두기 위해서였다.
브람과 라기스는 관측 실험의 결과를 보고했다. 두 잔류 응답원과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고, 바랜 천 조각 하나가 문턱을 넘었다. 그 외의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테란은 통신석 너머에서 조용히 말했다.
'먼저 길을 만들고, 그다음에 종을 울리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이번에는 종이 길을 결정하게 하지 않을 것이오.”
마렌은 아홉 번째 의자에 이름표를 두 개 올려놓았다.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자는 충분하다. 문제는 누가 어디에 앉을지 우리가 정하려 한다는 거다.”
아르헨이 웃었다.
“그러면 그냥 둘 다 오게 해. 자리가 모자라면 내가 서 있을게.”
“그건 안 됩니다. 무릎이 아프시잖습니까.”
“영. 넌 이제 내 무릎까지 명령하려 드니?”
나는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이런 순간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
우리는 두 사람에게 따로 설명했다.
먼저 미래의 레온에게 말했다.
“문턱에서 물건이 돌아왔지만 사람이 안전하게 나올 수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우리가 이동을 시험하면 너는 기억을 잃거나 다른 시간에 도착할 가능성이 있다.”
'알겠습니다.'
“현재의 레온을 대신 넣는 기능은 막았다. 그래도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아이는 안전한가요?'
“그래.”
'그럼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다릴 수 있다는 말과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 네가 원하면 계획을 바꾸자.”
레온이 조용히 웃었다.
'당신은 정말 달라졌군요.'
“내가 원래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알아요.'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나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농담입니다.'
“농담을 배우기에는 그곳이 좋은 환경은 아닌 모양이다.”
유리 너머에서 청년이 웃었다.
그 소리를 듣자 오래전 왕좌 앞의 마지막 표정이 조금 다르게 떠올랐다.
나는 적을 한 명 더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미처 돌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을 한 조각 본 것 같았다.
***
두 번째 아르헨에게는 현재의 아르헨이 직접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죠.'
“당신이 돌아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직 모릅니다. 나는 내 삶을 지우고 싶지 않아요.”
'나도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지우고 싶지 않아요.”
유리 너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그 아이는 집에 왔나요?'
“왔어요.”
아르헨은 내 쪽을 바라보았다.
“키가 이렇게 컸고, 말도 잘 안 듣고, 이제는 아기를 돌보고 있어요.”
나는 헛기침했다.
“아르헨.”
“왜? 사실이잖니.”
유리 너머에서 웃음과 울음이 뒤섞였다.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잠시 뒤 그녀가 말했다.
'나도 돌아가고 싶어요. 다만 누구도 내 대신 사라지지 않는다면요.'
마렌이 그 말을 적었다.
우리는 새 동의서를 만들었다. 한 장의 종이에 두 사람을 함께 묶어 서명시키는 방식이 아니었다. 각자가 따로 위험을 설명받고,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 절차였다.
그리고 아직 이동할지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기록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나는 한참 남아 두 장의 기록을 읽었다.
한 장은 미래의 레온에게 건넬 설명서였다. 생존 여부를 아직 몸으로 확인하지 못했고, 이동 과정에서 기억이나 몸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적었다. 다른 한 장은 잔류 구역의 아르헨에게 건넬 것이었다. 현재의 아르헨과 같은 장소에 도착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아직 모른다고 썼다.
“이런 걸 받으면 겁부터 나겠군.”
내가 중얼거리자 로잘린이 말했다.
“겁이 나야 할 일이니까요. 설명서를 친절하게 쓴다고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자네는 가끔 나보다 더 냉정하군.”
“그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나는 두 장의 문서 맨 아래에 같은 문장을 적었다.
[당신이 오늘 나가고 싶지 않다면 절차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중단해도 당신의 귀환 요청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렌이 그 문장을 보며 물었다.
“전하, 만약 한 분만 먼저 나오고 싶어 한다면요?”
“두 분이 모두 동의했다는 이유로 함께 끌어내지 않는다. 따로 확인하고 따로 준비해야 한다.”
“그럼 시간이 더 걸리겠네요.”
“그렇겠지.”
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옛날의 나는 빨리 끝나는 전쟁을 좋은 전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만 줄이려다 누군가를 두고 온 적이 많았다.
이번에는 늦어도 좋다. 다만 기다린 사람이 스스로 멈추기로 한 것과 우리가 그를 버린 것을 똑같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유리 안쪽에서 아주 작은 울림이 들렸다.
땡.
오늘의 종소리는 위협처럼 들리지 않았다. 바깥의 시계들이 각자의 시간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소리 같았다.
***
그날 밤, 나는 마왕성으로 돌아왔다.
레온은 침대 위에서 내게 종이 한 장을 흔들었다.
“아빠, 그림!”
그림에는 집 한 채와 작은 동그라미 셋이 있었다.
“이건 누구냐?”
“나!”
“이건?”
“아빠!”
“그러면 마지막은?”
레온은 푸른 곰을 내밀었다.
“곰!”
나는 그림을 보고 웃었다.
집에 돌아오는 사람을 그리는 데 얼마나 많은 장치와 서명이 필요한지 고민하던 하루였다. 그런데 아이는 집을 그려 놓고 그 안에 원하는 사람을 넣었다.
아무도 대신 사라지지 않았다.
“잘 그렸다.”
나는 그림을 벽에 붙였다.
잠시 뒤 레온이 잠들었을 때, 북부 관측소에서 마지막 보고가 도착했다.
[귀환 경로 개별 분리 준비 완료.]
[응답원 A, B의 독립 응답 확인.]
[이동 기능: 여전히 잠금 상태.]
그리고 그 아래에 처음 보는 문장이 하나 더 나타났다.
[안전한 도착지 확인 필요. 과거 귀가실 주소와 현 관측소 주소가 불일치합니다.]
나는 지도를 펼쳤다.
과거 귀가실은 북쪽 산기슭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도착지는 거기서 수백 리 떨어진 곳으로 표시됐다.
마왕성도, 성왕국도, 시각시도 아니었다.
동쪽 바다 한가운데였다.
이름조차 없는 작은 섬.
나는 새벽까지 그 점을 바라보았다.
문을 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누구나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밖에 바다가 있다면, 먼저 배를 준비해야 한다.
제14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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