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똑같은 사람을 둘 만난 적이 없다.
가짜 황제는 여럿 보았고, 내 얼굴을 흉내 내는 변신 악마도 수십 번 처단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말하는 두 사람이 모두 진짜라고 주장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 쪽을 가짜라고 부르기도 전에 그 이유를 들어야 하니까.
관측소로 온 아르헨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회색 머리칼을 느슨하게 묶었고, 걸을 때 오른쪽 무릎을 조금 절었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문 앞에서 낡은 천 가방을 내려놓았다.
“네가 먼저 왔구나, 영.”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안쪽이 이상했다.
마왕 카르딘은 누구에게나 명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를 영이라고 부르는 아르헨 앞에서는 내가 다시 자라야 할 것만 같았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위험하다는 건 들었어. 하지만 목소리가 날 닮았다면 내가 아는 얘기도 있을지 모르지.”
“듣고 싶지 않은 건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너, 내가 그 말을 어린 너에게 몇 번 했는지 기억하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너무 많았으니까.
***
우리는 회색 유리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의자를 놓았다. 라기스는 통로가 사람의 이름이나 마력에 반응하지 않도록 표식을 분리했다. 음성이 들려도 손으로 유리를 만지지 않는다는 규칙도 다시 확인했다.
나는 마렌에게 기록을 맡기고 아르헨 곁에 앉았다.
“이제 들려 드리겠습니다.”
라기스가 조심스럽게 음성 신호를 열었다.
'영아. 너는…… 이제 집에 왔니?'
아르헨의 손이 떨렸다.
놀란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오래전에 잊었던 노래의 첫 소절을 듣는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그 말을 내가 했던 적이 있어.”
“언제였습니까?”
“네가 아주 어릴 때. 비를 맞고 밖에서 돌아오던 날마다.”
나는 기억을 뒤졌다. 차가운 돌계단, 신발에서 떨어지던 빗물, 낡은 난로. 그 풍경은 있었으나 누가 문을 열어 주었는지는 흐릿했다.
“목소리도 같습니까?”
“비슷해. 하지만 똑같지는 않구나.”
“어디가 다릅니까?”
아르헨이 천천히 말했다.
“마지막 말을 할 때 숨을 한 번 참는 버릇이 있어. 나는 무릎이 아플 때만 그렇게 해. 저 목소리는…… 훨씬 오래 아팠던 사람 같아.”
나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손등에는 세월의 주름이 있었다.
그때 유리 너머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영아?'
아르헨은 고개를 들었다.
“듣고 있어요.”
내가 놀랐다. 그녀는 '나 여기 있다'고 하지 않았다.
'누구세요?'
“나는 아르헨이라고 해요.”
길고 깊은 침묵.
그리고 쉰 목소리가 답했다.
'나도…… 아르헨이에요.'
미아가 현장에 있었다면 반드시 내게 물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저녁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느냐고. 나는 그런 평범한 질문이 절실해졌다.
하지만 통로는 평범한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회색 유리에 글씨가 떠올랐다.
[중복 이름 감지. 병합 후보 존재.]
나는 즉시 손을 들었다.
“라기스. 병합 기능 잠가라.”
“잠겨 있습니다. 알림만 뜬 거예요.”
“알림도 따로 기록해.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둘을 하나로 합치려 했다는 증거다.”
유리 너머의 목소리가 낮게 웃었다.
'그러면 안 돼요. 둘 다 살아야 하니까.'
나는 숨을 삼켰다.
“당신은 누구의 삶을 살았습니까?”
'나도 모르겠어요. 다만 나는 나무문 앞에 남았어요. 그 아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서.'
아르헨은 손끝으로 가방의 끈을 꼬았다.
“어떤 아이요?”
'그때는 이름을 아직 배우지 못했던 아이. 우리는 영이라고 불렀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영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랬다면 다행이에요.'
목소리는 조용했다.
'내 쪽에서는 문이 끝내 열리지 않았거든요.'
유리 앞에 선 아르헨은 자신의 손을 한 번 펼쳐 보았다.
“저 사람에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할까?”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등의 주름을 살피며 다시 말했다.
“어릴 때 영이 아프면 난 물을 데웠어. 그런데 저 사람이 같은 일을 했다고 말한다면,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걸까?”
“아닙니다.”
“너는 어떻게 알아?”
“기억을 같게 가진 사람이 둘 있어도, 각각 선택한 오늘까지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르헨이 웃었다.
“그 말은 내게 하는 말이니, 너 자신에게 하는 말이니?”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돌아온 내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스무 해 뒤 죽은 마왕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그와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법은 없다. 내가 달라질 수 있다면, 같은 기억을 가진 누군가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유리 속 회색 그림자가 잠시 움직였다.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의자에 앉은 아르헨의 그림자와는 다른 방향으로 손이 올라갔다.
마렌이 작게 외쳤다.
“지금 보셨나요?”
“보았다.”
“안쪽의 움직임과 이쪽의 움직임이 달랐어요.”
나는 즉시 적게 했다. 그 한순간이 둘이 독립된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지 아직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한쪽이 다른 쪽의 거울상만은 아니라는 가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헨은 유리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전까지, 당신을 함부로 내 기억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상대에게만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약속처럼 들렸다.
***
우리는 통신을 잠시 멈췄다.
라기스의 설명은 조심스러웠다.
“어떤 날에 선택지가 두 개로 갈라졌다고 가정해 보세요. 한쪽에서는 아이가 돌아왔고, 다른 쪽에서는 길을 기다린 사람이 남았을 수 있어요. 장치가 그 두 결과를 한 기록으로 합치려다가 실패한 거죠.”
“그럼 저쪽의 아르헨은 분신인가?”
“그 단어는 쓰지 않겠습니다. 저분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아직 다 듣지 못했으니까요.”
아르헨이 내게 말했다.
“영. 네가 누군지 알지 못했던 날에도 넌 살아 있었어. 종이에 이름이 없다고 없어지는 아이가 아니었지.”
“압니다.”
“그럼 저 사람도 그렇게 대하렴.”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
옛 신발을 만들다 남은 천이었다. 바느질 선이 불규칙했다. 내가 어린 시절 신던 신발 안쪽에도 같은 실이 쓰였다.
“두 갈래로 잘라 뒀던 천이야. 한 조각은 신발에, 다른 한 조각은 혹시 돌아오지 못할 때를 위해 문 가까이에 묶었지.”
“그 천은 어디 있습니까?”
“문 안에 두고 왔어. 나중에 생각하면 내가 실제로 묶었는지도 자신이 없어.”
아르헨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무슨 결정을 내릴지 기다리는 눈이었다.
그때 마렌이 기록판을 보여 주었다.
[잔류 구역 응답원 2. 이동 경로 2. 이름 병합 대기 1.]
숫자가 가지런할수록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저 안에는 스무 해 뒤의 레온과 또 한 사람의 아르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를 골라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마렌. 오늘부터 기록을 두 권으로 나눠라.”
“같은 이름인데도요?”
“그래. 같은 이름이므로 더더욱.”
나는 아르헨을 보았다.
“한 분이 여기에 오셨다고 해서 다른 분이 돌아올 자리를 없애지는 않겠습니다.”
아르헨은 한동안 내 얼굴을 보다 미소 지었다.
“그 말이라면 내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잘 배웠구나.”
나는 웃지 못했다.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제1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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